DAY2 - (3)
일행들을 입구에서 다시 만나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들은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는지 주변에 가득했던 차들은 상당히 빠져나가 주변이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오늘 저녁은 첫날 저녁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자랑, 맥주와 곁들이는 식사다. 오늘 방문하게 될 곳은 원래 왕성에 맥주를 납품하던 세계에서 가장 컸던 브루어리의 가게라고 했다. 실내는 식사를 하거나 식사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내부는 굉장히 넓었는데 그 넓은 공간이,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차 엄청난 공간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는 내부를 통과해 건물 중심의 야외 테이블이 모여있는 곳으로 나갔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고 소음도 실내보다는 덜한 편이어서 딱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곳도 자리가 문제였다. 어딜 가나 인기 있고 유명한 곳은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겠지. 우리는 미국인 가족으로 보이는 분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가, 붙어있는 테이블을 써도 되냐고 물었다.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을 해주긴 했지만 어쨌든 답은 “No problem”, 그럼 거절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다. 독일에서는 한국과는 다르게 손님이 을, 직원이 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아서 손을 들고 웨이터를 불러도 못 본 척 고개를 홱 하고 돌려 자기 할 일만 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 말을 듣자마자 일행 중 한 분이 손을 들고 바로 근처 테이블에 서있던 웨이터 한 분을 불렀지만, 정말 한치의 거짓 없이 잠깐 우리 쪽을 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본인 갈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겠나. 무슨 콩트 속에 들어온 것 같이 이렇게 찰떡같이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당황스러우면서 웃긴 경험이었다. 우리는 결국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아주길 한참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정석의 메뉴를 주문했다. 슈니첼, 학센 그리고 독일의 자랑 맥주. 이번엔 거절하지 않고 나도 맥주를 주문했다. 맥주를 즐기진 않지만 이곳에서 마시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왕실에 납품하던 맥주라고 하니 호기심도 생겼다. 거기다 이런 곳에서까지 거절하기에는 너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알베르 까뮈의 명언 중에 “원칙은 큰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이면 충분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의 맥주와 여기 앉아있는 나에게는 연민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렇게 해석하는 것도 연민이라고 하면 틀린 해석은 아니겠지.
식사를 다하고 돌아가는 길에, 숙소와 가까운 마트에 내려달라고 부탁드렸다. 이번 일정이 빠듯해서 따로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있는 건 지금과 같이 저녁식사를 마친 이후뿐이었다. 내가 찾아본 마트는 아니었지만 근처의 비슷한 마트에 내려주셔서 편하게 목적지로 향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이곳 독일의 마트는 8시가 되면 영업을 종료하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대충 둘러보다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을 몇 가지 구매했다. 그리고 내가 원래 가려던 마트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트가 있었고,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갔던 마트보다 규모도 더 커서 구경할 것들이 더 많았다. 체크인할 때 받았던 물도 거의 다 마셨기 때문에 물도 필요했고 부탁받은 물품들이 이곳에서 팔고 있었기 때문에 꼭 사야 하는 것들도 몇 있었다. 한참 구경과 쇼핑을 즐기고 있는데 직원분이 날 보고 8시가 다되어 간다고 구매할 게 있으면 지금 결제해야 된다고 얘기했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8시 5분 전이었다. 나는 서둘러 살 것들을 챙겨 매대로 향했다. 아까 나 때문에 전시장 한 바퀴를 같이한 분이 물이 다 떨어져 간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나, 그분과 다른 분들 것들까지 해서 물을 넉넉히 장바구니에 담았다. 장바구니는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 결제를 하고 무사히 마트를 나섰다. 이번 일정을 위해 큰 백팩을 구매했는데 물건을 다 넣고 보니 꽉 차서 터질 것 같았다. 뭘 많이 사거나 그런 건 아니라 생각했는데, 물을 너무 넉넉히 산 게 그 이유였다. 어깨는 처지고 다리와 발도 아팠지만 보부상이다 생각하고 숙소로 바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일행들에게 물을 돌렸다. 뿌듯했다. 보부상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가방과 하루일과를 정리한 뒤, 이불 위로 누워 오늘 본 것들과 먹은 것들 그리고 사람들과 나눈 얘기들에 대해 떠올렸다. 시간순서는 아니었지만 기분 좋았던 순간, 미안했던 순간, 웃겼던 순간들이 열심히 흔든 콜라병처럼 약간의 자극만으로 터질 듯이 새어 나왔다. 멈추고 싶지 않은 청량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한참을 누워 즐기다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해 보니 02:00. 나는 그대로 기절했었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8시 즈음에 마트를 나와 30분 정도를 걸어 숙소로 왔고, 짐을 정리하고 씻은 다음, 한참을 엎드려 독일과 관련한 여행 글들과 영상을 보고 누었으니 그 시간이 대충 11시가 넘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잘 생각으로 누운 게 아니라 이불 위로 잠깐 기댄 것뿐이었는데, 콜라 어쩌고 한 느낌이 꿈나라 직행 티켓을 끊는 감각이었을 줄이야. 앞으로 콜라 금지다.
웃프게도 콜라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시차적응을 못하고 있는지 한국시간으로 기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대략 9시. 그럼 기상시간이라는 뜻인데, 그래서인지 불을 모두 끄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 식사시간까지 4시간이 넘게 남았고, 지금부터 깨어있으면 당장 내일 일정에도 지장이 생기는 건 두말할 필요 없는 상황이다. 어제 일찍 일어난 것이, 지금 같은 상황을 경계하라는 몸의 알람신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를, 불 꺼진 방 창문 귀퉁이서 세어 들어오는 불빛을 멍하니 응시하며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