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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Oct 19. 2019

달콤한 작은 위로

입맛의 취향#4. 달콤한 디저트 하나에 금방 기분이 사르르 녹는다.




 대학교 3학년, 호기심에 소개팅 앱을 깔아본 적이 있었다. 소개팅 앱은 나이와 직업, 취미, 이상형, 좋아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과 같은 취향에 관한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면, 비슷한 답변을 한 사람들끼리 연결해주었다.


 한 달 간의 탐색 끝에, 한 신문사 디지털 사업부 웹디자이너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이차가 크지 않고 관심사가 비슷해서 이야기도 잘 통했다. 게다가 디자이너라는 직업 때문인지 나를 섬세하게 잘 챙겨주는 모습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날씨가 유독 좋아서 전공수업임에도 출석체크만 하고 자체휴강을 한 날이었다. 딱히 약속이 있거나 갈 곳도 없어서 학교 도서관이나 가볼까 하는데, 때마침 그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뭐해요? 수업?]

[아뇨. 날씨 좋은데 왠지 우울해서, 자체휴강. 근데 갈 데가 없네요ㅠ_ㅠ]

[아아, 그럼 우리 회사 근처로 놀러올래요?]

[충무로요? 왜여?]

[네. 오늘 좀 일찍 끝나서요. 우울할 땐 맛있는 거 먹어야죠.]

[맛있는 거요? 그럼 갈까요?ㅎㅎ]

[와요. 저번 네스카페 알죠? 거기서 기다릴래요? 도착하면 다시 톡주세요!]

.

.

.

[저 네스카페 도착했어요~ 끝나면 연락주세요.]

[엇, 벌써요? 주문 아직이죠? 카운터 가서 이름 말해보세요.]

[제 이름이요? 왜여? 제 이름으로 뭔짓을 한거에여ㅠ]

[가보면 알아요. 그럼 전 다시 일하러. 꼭 말해요. 꼭꼭]


 부끄럽지만 신신당부를 하기에, 계산대로 가서 이름을 말했다.

“저 시..에나인데요..?”  

“네? 아!! 잠시만요~. 금방 준비해 드릴께요.”

“네?! 뭘요?”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 잠시 웃은 점원은 이내 커피샷을 내리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나서야 그가 미리 메뉴를 주문해두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점원이 내려놓은 쟁반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스쿱이 곁들어진 브라우니 한 조각이 있었다.


 연락을 주고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하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었다.

‘음..브라우니 한 조각이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셔요.’

‘그럼 풀려요?’

‘그건 건 아닌데, 그냥 마음이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고단한 일이 있어도, 달콤한 디저트 하나에도 금방 기분이 사르르 녹는다. 그 시절에는 끈적하게 달달한 브라우니와 쓰디쓰지만 시원한 커피를 번갈아 먹고 마시면, 엉켰던 마음이 풀렸다. 열심히 사는 나에게 주던 포상이었다. (물론 현재의 케이크 취향은 변했다.)



 평소에는 주야장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다가, 이따금씩 지칠 때면 브라우니를 사먹었다. 이를 테면 공모전에 떨어졌을 때, 좋아하는 남자가 내 친구에게 관심을 보여서 질투가 날 때 브라우니와 커피를 조지며(박살내며) 분을 삭혔다.


 그때의 나는 스물다섯이었는데, 더운 여름에 목이 말라도 맥주보다 콜라를 더 좋아했을 정도로 순진했었다. 그러니 분을 풀기위해서 술을 진탕 마신다던지, 상대에게 가서 분탕질을 치는 등의 일은 상상도 못했다. 그저 귀여운 소품이나 문구용품, 예쁜 쓰레기 등을 사거나 브라우니+커피를 먹으며 분을 풀었다.


 왜 브라우니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조합이었을까?

사실 지금의 최애 커피, 아메리카노는 처음부터 쓴 맛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다른 커피에 비해서 칼로리가 거의 없고 가격이 제일 싸서 마시기 시작했다. 계속 마시다보니 우유나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 뒷맛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서 습관이 들었다. 커피는 이성적인 계산에 의한 선택이 입맛을 만들고 취향이 되었다. 여기에 브라우니가 끼어들은 것이다.


 ‘브라우니’의 경우, 한국 디저트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쯤 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은 지금의 디저트 종류에 비하면 원시시대였다. 카페에 가면 거의 음료 메뉴만 있었다. 음료 메뉴도 몇 가지 종류의 커피, 레몬에이드 정도가 전부였다. 요즘같이 푸라프치노니 각종 시즌메뉴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기본 메뉴인 음료가 이정도인데, 디저트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나마 디저트 메뉴가 구비된 곳에는 베이글이나 치즈 케이크, 브라우니 정도가 다였다. 이 중에서 베이글은 밥 대신 사먹는 개념이었고 치즈 케이크는 브라우니보다 조금 더 비싸고, 느끼해서 별로였다. 게다가 이때 팔던 치즈 케이크는 대부분  필라델피아 냉동 치즈케이크에 냉동 블루베리를 한 두개 곁들여서 내는 곳이 대부분이라, 사먹기가 돈 아까웠다. 이 모든 걸 따졌을 때 내게는 맞는 것은 브라우니였다. 게다가 초코초코한 맛이 유아틱한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기분이 우울할 때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카페에 앉아, 다이어리를 끄적이며 브라우니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씩 번갈아 먹으며 나를 달랬다. 특별히 다이어리에 내 기분을 망친 사람이나 일들을 적었던 건 아니다.

 단지 부끄러움을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일행 없이 혼자 커피숍에 앉아 여유롭게 디저트를 즐기기에는 수줍음이 지나치게 많았던 어린 날이었다. 다이어리를 끄적이거나 책을 읽는 척을 했던 건, 타인의 시선에서 보다 편안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었다. 사실 다이어리나 책을 펼쳐만 두고 디저트 맛보기에만 집중했던 날이 더 많았다.




 이 여유로웠던 혼자만의 시간이 나의 ‘소확행’이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그 시간 속에서 위로받으며 행복했었다.

 작은 위로들의 방법을 잊고 지내서 일까? 아니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일까? 예전보다 사사로운 것에는 더 잘 섭섭해 하면서, 사소한 감동에는 점점 더 무뎌지는 내가 되어버렸다.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말이다.


 그때처럼 다시 달콤한 작은 위로의 시간을 보내면, 이제라도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나를 시험하는 듯한 버거운 하루에도 흔들리지 않고 웃으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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