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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Oct 08. 2019

외할머니와 임연수 구이

입맛의 취향 #1. 그리움의 맛



 외할머니는 단단하고 질긴 고기보다는 부드럽고 담백한 생선을 더 좋아하셨다. 외할머니의 밥을 먹고 자라는 동안 나는 꽤 다양한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고등어, 임연수, 조기, 굴비 등을 구운 것이나 칼칼한 갈치조림이나 시원한 국물에 겨울 추위를 녹이는 동태찌개 까지 자주 먹었다. 생선에 관한 나의 취향은 외할머니를 닮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생선요리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임연수 구이’다. 임연수는 도톰하고 보드라운 속살을 가졌지만 고등어처럼 쉽게 비린내가 나지 않아 비위가 약한 나에게는 최고의 생선이다.






 임연수는 1990년대 중반 시장의 생선 좌판에 나가 보면 바로 1열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로 다른 생선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유통량도 많았다. 또한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생선이라는 이유로 우리집 저녁 밥상에 자주 올라왔었다.



 임연수 구이를 먹을 때는 바삭한 생선껍데기는 껍데기대로 벗겨 먹고,  폭신하고 짭짤한 속살은 속살대로 발라서 흰 쌀밥에 얹어 먹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비린내가 거의 안 나기 때문에 특별한 양념 없이 소금으로만 간을 해도 충분했다. 다른 생선에 비해 잔가시가 거의 없어서 먹기에도 편했다.


 직접 임연수를 구워 먹어보기도 했지만, 외할머니가 구워주시던 맛이 나지 않는다. 부지런히 요리를 하던 외할머니의 굽은 뒷모습을 볼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 임연수를 굽던 외할머니의 손길을 그려본다면 그 시절의 맛이 떠오를 것만 같다.




 외할머니만의 비법은 따로 없었다. 시내에서 열린 7일장에서 외할아버지가 비늘과 내장 손질이 다 된 물 좋은 임연수를 사오신다. 바통터치를 받은 외할머니가 흐르는 물에 임연수를 앞뒤로 꼼꼼하게 헹궈주면 준비는 끝난다.
 

 임연수가 흡수한 수돗물이 빠지도록 잠시 채반에 얹어두었다가 소금을 살짝 뿌린 뒤 평평하고 넓은 접시에 밀가루 이불을 깔아준다.  깨끗하게 씻은 임연수를 앞으로 뒤로 번갈아 뒤집어 뽀얗고 하얀 밀가루 이불을 덮어준다. 이때, 밀가루 튀김 옷이 너무 두꺼워지지 않도록 서너번 무심하게 툭툭 털어주는 것이 포인트!


 그 사이 달궈놨던 후라이팬에 임연수를 구워주기만 하면 된다.


 참고로 팬을 달굴 때 미리 기름까지 자작하게 둘러 달궈야한다. 충분히 달궈지지 않은 기름과 팬 위에 생선을 올리면, 생선살이 팬에 들러붙거나 기름만 잡아먹어 본연의 맛을 해친다.


 생선은 고기보다도 더욱 불 조절에 유의해야한다. 고기를 구울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 높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적지근한 온도도 안 된다. 수분이 많고 연한 생선의 가죽은 불이 너무 세면 새까맣게 타버린다.

 충분히 달궈진 온도로 생선의 껍질을 바삭하게 구워야 어즙이 최소한으로 나오기 때문에 팬의 온도가 중요하다.


 임연수를 껍질부터 팬에 올리고, 바로 신문지를 재빠르게 덮어준다. 생선 껍질이 치이익 하며 기름에 익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대략 30초에서 1분정도 지나면 속살이 하얀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때 생선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반대로 뒤집어준다.


 굳이 외할머니’s 팁이라면 밀가루 튀김 옷, 신문지 정도이다. 얇은 밀가루 튀김옷을 입혀 구워내면
 고등어와 달리 부서지기 쉬울 만큼 연한 살을 가진 임연수의 살을 온전히 보호하면서 좀 더 바삭하게 즐길 수 있다.
 살짝 뿌린 소금 간으로 생선 본연의 맛을 더 살려내는 것 역시 잊지 말 것! 임연수 구이는 간이 심심할수록 더 맛있는 음식이다.


 글로 나마 임연수를 굽고 있으니, 꼭 외할머니의 부엌으로 돌아가서 요리를 하는 기분이다. 이 글을 쓰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내 모습을 외할머니가 봤다면 보나마나 “생선 탄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라고 말하셨을 것이다. 쨍쨍한 잔소리마저 다시 듣고 싶을 만큼 외할머니와 그녀가 구워준 임연수 구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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