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나 Nov 04. 2019

숨기고 싶은 취향

경험의 취향 #6. 나에게는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비밀같은 취향이 있다.

 


나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모퉁이를 찾는 취향이 있다. 

이 취향은 물을 마시는 컵에서, 밥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 버릇의 시작점은 개인 컵을 사용하지 않던 외할머니의 밥상에서 시작된 것 같다. 다섯 살 무렵부터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게 되었다. 저녁은 항상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나. 우리 셋이서 먹었다.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혼자 컵을 쓰셨고 나와 외할머니는 한 개의 컵을 함께 사용했었다. 

 찜찜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새 컵을 하나 더 꺼냈을 수도 있지만, 그건 굽은 등의 할머니에게 설거지거리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이므로 스스로 허락할 수 없었다.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이 돌아왔다. 그 때마다 나는 서울 이모네서 이 주씩 머물며 놀다 왔다. 

 외할머니의 밥상과 달리, 이모의 식탁 위에서는 개인 컵을 사용했다. 이 주의 시간 동안, 혼자 컵을 쓰다가 다시 외할머니 집으로 돌아오면 낯설었다. 내 것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원래 처음부터 네 것은 없었어.’ 


 누군가 듣고 싶지 않은 아픈 말을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다시 처음부터 적응해야 했다. 나만의 컵이 없다는 것에 대해. 없는 가운데 내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 때, 할머니와 함께 쓰는 컵에서 모퉁이를 발견했다. 누구도 입을 대지 않는 손잡이 바로 윗자리나 매듭 선 위의 자리였다. 주의하지 않으면 물을 엎지를 수 있어 불편하고 피하게 되는 자리였다. 


 그 시절 나에게 없던 것은 컵만이 아니었다.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컵에서도 내 자리가 필요했던 만큼 외할머니와 함께 쓰던 방에서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가족들의 손길이 닿지 않던 책장 구석을 꾸미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와 뜻을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에 적으며 비밀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서서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모퉁이가 더 편해졌다. 눈에 띄지 않고, 누구도 탐내지 않는 자리였다. 경쟁자가 없는 온전한 내 것이었다. 모든 모퉁이에서 안심하고 마음 놓을 수 있었다. 모두가 가운데 앉고 싶어할 때 모퉁이에 앉았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안심했다. 


 지금껏 모퉁이가 편안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취향이었다. 의도적으로 중앙을 찾기도 했다. 중앙에 앉아서 계속 모퉁이를 돌아봤다. 무의식중에 드러나는 비밀이었다. 결핍이 만든 흔적이었다. 






 나만 이런 줄 알았다. 중앙에 앉아 비어있는 모퉁이를 돌아보다 다른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야 알았다. 이런 자신을 창피해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말이다. 더 이상 흉터 같은 취향을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만든 취향과 습관 일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한 최선이었다고 위로하며, 다독인다. 모퉁이를 당당하게 찾는다. 


 혹시 모퉁이를 찾으며 불안하거나 자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여기 있으니 혼자가 아니라고 기죽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취향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밤의 택시 드라이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