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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Nov 12. 2019

생쥐에게도 양보할 수 없었던 오징어 다리

#1. 그 시절에도 지금도 오징어는 양보하기 힘들다.

 




 엄마 피셜에 따르면 내가 4살? 5살 쯤에 있던 일이다. 지금도 나이에 비해 가끔 턱없이 엉뚱한 편이지만, 나의 엉뚱미(美)가 하늘까지 치솟았던 때는 바로 이 꼬꼬마 시절이다.


 나 역시 다른 보통의 꼬꼬마들처럼 궁금한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꼬마였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얌전한 편이었지만, 가끔 턱없이 엉뚱한 일을 저질러서 엄마는 나를 키움에 있어 심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 시절 나의 소일거리는 외삼촌이 운영하던 옷가게(겸 집)에 놀러가는 것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주 그 곳에 머물렀다. 일단 가게에 도착하면 외숙모와 근황 스몰톡을 나눈 뒤, 그녀가 해주는 맛있는 밥과 간식을 먹고 사촌동생과 신나게 놀았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집안 온 식구들이 외삼촌 가게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엄마와 도착해 외숙모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와 연결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외삼촌의 옷가게와 살림집은 가게 안쪽의 동굴 같은 입구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컴컴하고 습한 입구는 매번 지나다니면서도 도무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인, 쥐가 가끔 출몰했고 나도 한번쯤 그분을 뵀기 때문에 후다닥- 달려가기에 바빴다.


 어둠 속에서 서둘러 신발을 벗고 방으로 향하는 복도에 발을 올리려는 데, 널부러진 신발 옆에 쥐끈끈이가 놓여있었다. 평소라면 ‘으-’ 하며 지나쳤을 텐데.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날 밤 엄마와 나눠 먹었던 오징어가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어? 오징어네?’


 순간 쥐 끈끈이 위에 붙어있는 작은 오징어다리가 100배 쯤 확대돼서 보였다. 아까웠다. 건어물러버인 엄마 옆에서 나는 일찌감치 건어물의 짭짤한 매력에 눈을 떴고 특히 오징어를 사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손이 쭉 뻗어졌다. 순식간에 철썩-!하고 새까만 끈끈이에 손이 붙잡혔다.

어린 나는 순수 할 정도로 무지했다. 오징어 다리만 보였지. 끈끈이가 손에 붙을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다. 아무리 어려도 보고 배운 눈치는 있었다. 이대로 나가면 엄마에게 혼날 것이 뻔했다. 혼자 끈끈이를 떼어보려고 좌우로 열심히 흔들었지만 오히려 더 붙었다. 어쩔 수 없었다.


 쭈뼛쭈뼛 소심하게 가게로 나갔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엄마에게 혼날까봐 울 수도 없었다. 작은 손에 붙은 쥐끈끈이를 보자마자 엄마와 외숙모는 난리였다.



“으이구!! 이 화상!!”

“어머! 형님 어떻게 해요.”



“괜찮아? 안 아파?”

“아휴...시에나. 오징어 다리 생쥐 주기 아까웠구나?”

‘끄덕끄덕-’



 작은 오징어 다리 하나 떼어 먹으려다 이 지경이 되어 울지도 못하고 풀죽은 나의 모습에 엄마와 외숙모는 웃음이 터졌다. 속속 도착한 어른들의 대책회의가 시작되었다. 끈끈이 판은 삼촌이 힘으로 제거해줬지만, 손에 남은 접착제가 문제였다.


 비누와 바디워시, 퐁퐁이, 세탁 세제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끈끈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끈질겼다. 가까운 약국에서 사온 아세톤도, 껌을 떼는 데 사용되었던 콜드크림도 소용없었다. 아빠가 카센터에서 타르를 지울 때 사용하는 약을 가져왔지만 애기 손에 바를 수는 없었다.


 알갱이가 작은 모래에 손을 비비면 끈끈이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며 외할아버지가 한마디 거드셨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가게 화단의 흙바닥에 살살 문질렀다. 따가웠지만, 효과가 있는 것도 같았다. 다양한 방법을 번갈아 적용해보는 가운데 새까맣던 작은 손이 다시 조금씩 하얀 빛을 찾기 시작했다. 원래의 손으로 돌아오기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연한 손 살갗이 조금 붉어지긴 했지만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끈끈이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고, 무사히 아무런 트러블 없이 잘 자랐다. 지금도 이 글을 쓰고있는 손도 바로 그 손이다.


 그 후로 한참동안 식구들 사이에 오징어 다리를 씹을 때면, 사실 요즘도 아주 가끔씩 이 일이 회자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대책 없이 순수했던 나의 식탐이 아니라, 생쥐에게도 양보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맛있는 오징어 다리 때문이다.


 서른둘이 된 지금도 여전히 오징어다리는 맛있다. 조리법의 장르를 불문하고 정말 맛있다. 부드럽지만 탱글한 물오징어와 알싸하게 매운 청양고추를 팍팍 썰어 넣고 매콤하게 볶은 오징어볶음 속에서도 MSG를 첨가한 양념을 발라 살짝 구워서 말린 숏다리 속 오징어다리도 말이다.(이 두 음식이 나의 오징어요리 최애라는 건 안비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이를 꽉 무는 습관 때문에 약해진 턱관절 덕분에 자주 즐기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오징어는 내게 최고의 해산물 겸 건어물이다. 오징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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