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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Dec 04. 2019

중신부터 망년회까지, 단골 손님과 할 수 있는 모든 것

#3. 마담뚜 트리오의 참새방앗간





내.단.소(일명, 내 단골손님을 소개합니다)의 첫 테이프를 끊을 손님들의 별명은 ‘마담뚜 트리오’다.


 마땀뚜 트리오의 구성은 아저씨 두 분, 아줌마 한 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세 분은 직장 동료이자 고향동문들로 3-40분 거리의 다른 지역에서 각자 차를 타고 출퇴근하신다. 아침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하면서 회사 내 정보 공유나 뒷담화를 신나게 떨다가 가신다.



이른바 이 곳 편의점이 세분에게는 출근 전 들리는 참새 방앗간이다. 이제는 맨 먼저 도착하는 멤버가 “시에나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며 커피를 한잔 내리시면, 나도 자연스럽게 “오셨어요?”하면서 낱개로 판매하는 작은 종이컵 두개를 꺼내드린다.  




 우리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 1,200원짜리 커피를 한 잔을 뽑으며 너무 당연하게 일회용 커피 컵을 세 개나 쓰는 모습에 내가 제재를 걸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니. 손님! 커피를 한 잔만 드시면서, 컵을 세 개씩이나 쓰시면 어떻게 해요?!!”

“아니이.. 우리가 커피를 찐하게 못 마셔. 그래서 나눠마시느라 그러지.”

“맞아. 여기 커피가 너무 찐한 걸 어째. 우리 이거 그대로 마시면 오늘 밤에 잠 못 자.”


 ‘어휴.’ 지난번 글, 전국 사장님 자랑(https://brunch.co.kr/@theonlymoment/40)에서 본 것처럼 사장님과 가게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알바생으로 속이 터졌다.


“이 컵이 공짜 같아 보여도 저희는 돈 주고 시키는 건데. 1,200원짜리 커피 한잔에 세잔을 쓰시면 어떻게 해요...”

“미안해. 미안~. 근데 아가씨는 칼 같네.  깔끔한데, 아주 칼 같아. 냉정해.”

“네?”

“아니 전에 있던 애기엄마는 컵 갖고 뭐라고 안해도, 커피 머신이고 뭐고, 너무 더러워서 우리가 욕했거덩. 근데 아가씨 오고는 아주 깨끗해졌어. 그래서 우리끼리 칭찬했잖앙.”



윙크 찡긋-.


 단 한번의 윙크와 칭찬 콤보에 어이없는 웃음이 팟-하고 터지면서 이들에 대한 경계심은 허물어졌다. 커피머신과 주변을 더 열심히 닦게 된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근데 자기 몇 살이야? 남자친구는 있어?”

윙크로 무장해제 된 후로 매일 보며 친해진 오자이모가 나에게 물었다.


"있었는데, 쓸모없어서 그냥 갖다버렸어. 없어요.”

“갖다 버렸어? 왜에 쓸모가 없대? 그럼 우리가 중신 한 번 서줘야겠네.”

“중신? 중신이 뭐에요?”

“뭐긴 뭐야. 중매지. 결혼 안 할꺼야?”

“아아.. 누구 괜찮은 사람 있어요?”

“그럼 있으니까 말 꺼내지. 우리가 시에나씨 좋게 봤잖아.”


내가 웃으며 반응을 보이니 막간을 치고 들어온 정부장님이 신나서 거든다. 기대감에 찬 두사람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재밌어서 차마 거절은 하지 못했다.


“그래요? 그럼 한번 받아 볼까?”

“그래. 받아봐. 가만히 있으면 뭐해.”


못이기는 척 대답하니, 환하게 휘어지는 웃음에 나도 덩달아 웃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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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의 그 날이 다가왔다. 나름 어른이 소개해주는 자리라. 하얀 블라우스에 단정한 미디스커트를 입었다. 소개팅과 달리 전번교환도 하지 않아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장소에 도착하니 나를 반갑게 부르는 정부장님..


“여어. 시에나씨! 여기야!”

“아...아....”


‘역시. 어른들이 보는 괜찮은 기준.... 그럼 그렇지.’ 어른이 소개해주신 자리라고 차려입고 가라고 했던 엄마 말을 들은 내 노력이 아까웠다. 상대방은 늘어진 청바지에 잠바떼기를 입고 나왔다.

 아무리 번화가에 빌딩이 있고, 돈이 많으면 뭐하나. 오타쿠는 내 타입이 아닌 것을. 다시 한 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반성하는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애프터를 받았지만, 유학을 간다는 핑계(이때 까지만 해도 외항사 취업을 원하던 나였으니)로 잘 돌려서 거절했다.


 그 후에도 틈틈이 친구 아들이나 회사의 건실한 청년을 소개시켜 주신다고 하셨지만 절대 거절하고 있다. 사실 정부장님 외에도 소개팅을 주선해주고 싶어 하는 단골들은 많았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기억하고 인사해드리는 나를 예쁘게 봐주시는 단골손님들은 주변의 총각들을 수소문해 나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어 하셨다. 복숭아 과수원 연 매출이 억 단위라는 농부총각이나 건설 회사를 운영 중이라는 친구아들. 직업과 나이의 종목과 장르도 참 다양했다.





 하지만 인연은 따로 있었으니. 친구였던 지금의 남자친구와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장님에게 포기란 없었다.


“에이. 남자친구 있어도, 일단 한번 만나 봐요.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네?”

도대체 이런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내가 우리 시에나씨. 조카 메느리 삼고 싶어서 그래. 진짜로. 진짜.”


 바야흐로 작년 12월, 마담뚜 트리오의 망년회에 초대된 나는 소고기라는 매복에 걸렸다. 자리는 망년회였지만 알고 보니 조카와의 소개팅 자리를 만들어보려는 정부장님의 의도도 깔려있었다. 세 분의 고향 친구 라는 생전 처음 만나는 승화 이모와 고기를 구워먹으며 계속되는 소개팅 푸쉬로 어색함과 부담스러움을 온몸으로 느끼다 ‘엄마가 오래있으면 민폐니까 일찍 들어오랬어요.’를 시전하며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망년회 이야기를 들은 남자친구는 '시에나 빨리 커플링 껴줘야겠네.’라며 서두르더니 기념일에 커플링을 맞추러 가자고 했다.

 커플링을 끼고 다니니, 정부장님은 이제 태세를 전환하여, 언제 국수 먹여  거냐며 다시 극성이시다. , 정말 피곤한 사람..




 극성맞은 정부장님 못지않게 센 캐릭터는 바로 ‘오자이모’다. 곰도 때려잡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숏커트 머리에 10cm는 되는 하이힐을 주로 신고, 새빨간 소형SUV를 뽕짝이 꽝꽝 울리도록 틀고 다니시며, 다이어트 한약을 자주 지어 드시지만, 외형의 변화는 거의 없다. 이도 참 이해가 되는 것이. 다이어트 한약을 드시고, 속이 쓰리다며 편의점에 와서 샌드위치를 사 드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말릴까 싶다가도 어른이 속이 쓰리고 아파서 어지럽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말리겠는가. 바코드를 찍을 수 밖에. 오자이모는 무서우면서도 어딘지 모를 귀여움이 느껴지는 어른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시는 분은 ‘임차장님’이다. 임차장님은 세분 중 내가 가장 잘 따르는 분이기도 하다. 임차장님은 드라마에 나오는 지혜로운 중년아저씨 같다. 가끔 내가 고민상담을 하거나 하소연을 하면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주신다. 틀에 박힌 바른 말이 아닌, 삶과 경험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운 조언들.. 그리고 또 남자친구가 사는 지역에서 출퇴근을 하셔서 가끔 남자친구를 만나러 차장님 퇴근시간에 맞춰 차를 얻어 타고 가기도 한다.







“시에나. 네가 여기 인수해라.”

?!  무슨말을 하시는 거에요?”


 개인적인 일로 하루 건너 뛰고 출근 했더니, 밑도 끝도 없이 날아오는 오자이모의 말.


“아니. 어제 너 대신 사장님 앉아있는데, 손님 없더라. 니가 여기 인수해. 너 있을 때만 장사 잘돼.”

. 진짜 웃기다. 없기는 뭐가 없어요. 사장님한테 돈이 붙으니까 여기가 잘되는 거지. 그리고   없어요. 무슨 돈으로 내가 여기를 인수해요.”

“하긴 그건 그렇지. 그래도 우리는 니가 여기 인수했으면 좋겠어. ”

그건 저도 그래요. 저도 인수하고 싶어요.”

“그치? 껄껄껄.”


 이런 시덥지 않은 농담 덕분에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알바하는 편의점의 단골 손님들과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친해진다는 것.

또 그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넘어 카톡 친구가 되고, 망년회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디서나 진심은 통하고, 또 마음을 열면 그 진심은 서로에게 가 닿을 수밖에 없다.

이 편의점은 나에게 참 이상한 곳이다.

신기하고 재밌는 곳, 사람과 삶에 대해 용기 잃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을 수 있도록 해준 곳이다.


 더이상 손님을 손님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보게 된 것은 이러한 경험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다시 떠나가겠지만, 그들이 나에게 남긴 기억은 쉽게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편의점의 딸랑거리는 문소리를 듣고 반갑게 일어선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편의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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