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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Dec 03. 2019

세상에 이런 사장님이

#2. "배고프면 폐기 먹어도 돼"





“식사는 금액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걸로 드세요. 폐기가 되는 건 폐기 찍고, 폐기가 안 되는 건 근무일지에 써 놓으시면 제가 결제할게요.”

“아..! 감사합니다.”


순간 속으로 ‘아니! 세상에 이런 사장님이?!’하는 놀라움이 들었지만, 짐짓 놀라지 않은 척하며 대답했다.(이미 좋아하는 거 티 다남)  




 근로기준법에 근무자에게 식사를 꼭 제공해야한다는 의무는 없다. 일반적으로 8시간 이상 근무시 식사를 제공하는 회사가 많아서 법적 의무로 느껴지지만, 복리후생의 하나일 뿐이다. 일반 회사도 이런 상황인데, 편의점 알바생에게 식사 요구권은 당연하게 없어 보인다. 시급 자체가 최저시급인데, 어떻게 밥까지 달라고 할까?




 한때 잠시 일했던 다른 편의점에서는 “배고프면 폐기 먹어도 돼.”라는 말을 들었었다.

‘나 짬타이거 아닌데.’ 하지만 이 폐기조차 아쉬웠다. 우연인지 폐기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 출근하시는 사장님은 폐기 음식을 자신의 코스트코 장바구니에 따로 담아 놨다.

 폐기조차도 아까운 걸까? 왠지 비참한 기분이었다. 가끔 사장님이 없어도 눈치가 보여 워크인 음료 냉장고 안에 숨어 폐기 된 샌드위치를 먹은 적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있는 나에게 밥을 준다는 사장님의 말은 감격 그 자체였다.



 밥뿐만 아니라 사장님은 최저시급 준수 및 주휴수당 지급, 4대 보험 가입 등 고용노동법을 철저히 지키신다. 가장 기본적인 의무임에도 안 지키는 편의점 고용주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대다수가 그런 흐름이니, 기본만 지켜도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사장님은 매년 명절 선물까지 챙겨주신다. 작년에는 견과류 선물세트를 받았고, 올 추석에는 떡값을 받았다. 기대하지도 않은 선물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평일 직원은 나, 사장님, 저녁 아저씨 이렇게 셋이다. 저녁아저씨는 신장투석을 받으시는데 간혹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예상치 못한 결근을 하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3년 이상을 근무 중이다. 사람마다 다 다른 사정을 모두 감안하고 고용하기기란 얼마나 큰 마음씀씀이인지. 그 크기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알바생을 아랫사람, 부리는 직원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받은 것도 지금 사장님이 처음이었다. 1년 5개월여의 근무 기간 동안 항상 존댓말을 써주시고, 간혹 실수를 해도 걱정부터 해주신다.


“사장님. 저 소주박스 옮기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한 병이 깨졌어요.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근데 어디 다치지는 않으셨어요?”



 이런 사장님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정이 들고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 이상으로 잘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사장님께 내가 갚을 수 있는 은혜는 그저 열심히 쓸고 닦고, 손님에게 친절함으로 보답하는 것이었다.



 처음 출근했을 때, 가게는 폐업을 앞둔 것처럼 보였다. 면접을 볼 때, 사장님이 리뉴얼 공사를 하거나 브랜드를 아예 바꿀 예정이라고 하셨으니 어느 정도 맞다. 매장의 물건도 점점 빠지고 있어 진열대 위에는 물건보다 뽀얗게 쌓인 먼지가 더 많았다.


 사장님은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스타일도 아니고, 지켜보시는 타입이다. 할 걸 다 해놓고 남는 시간에는 내가 무엇을 해도 뭐라 하지 않으신다. 근무 환경이 매우 프리하다. 너무 자유롭다보니 가끔 이를 악용하는 직원도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나에게 인수인계를 한 전임자는 대놓고 열심히 하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 태도에서 매장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전임자가 떠나고 본격적으로 홀로 출근한 날, 난 아무리 리뉴얼을 한다 해도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일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요일별로 구역을 나눠 청소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매장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사장님 바뀌었어요?”


 리뉴얼이 예정된 두 달이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없기에 궁금했던 찰나, 한 아주머니가 매장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 제가 새로 왔는데. 더러워서 청소 좀 했어요.”

“아 그렇구나. 여기 관리도 안 되고, 물건이 점점 없어져서 문 닫는 줄 알았어요. 이제 여기로 와도 되겠네.”

“아..네! 자주 오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손님의 말에 다시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쓸고 닦았다.   매장 리뉴얼은 취소되었다.



 사람이든 가게든, 관심으로 보살피면 마음이 가고 정이 들 수밖에 없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받는 티가 난다. 반짝거릴 수밖에 없다.


 취업을 준비하며 떠밀리듯 알바를 시작한 내게 사장님이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은 불안함에 흔들리던 내게 안정을 제공하며 믿는 구석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 믿는 구석 아래서 일하며, 돈도 벌고 틈틈히 내가 진짜 원하는 일과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며 내 안의 숨겨진 빛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도 빛바랜 매장에 빛을 되찾아준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머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사장님과 나, 서로에게 좋은 인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싶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부터는 편의점의 빼놓을 수 없는 등장 인물들,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손님들의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3번 이상을 만나는 시골 편의점의 아주 특별한 단골 손님들을 소개합니다.

 따뜻하고 맛있는 점심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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