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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Dec 17. 2019

단골 노부부의 숨겨진 사정 (下)

#7. 할머니, 할아버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두 분 단골이신데.. 무슨 일이에요?”

“그래요? 이 할아버지가.. 담배를 훔치셨어요.”

“네?”



 CCTV에 며칠전 모습이 띄워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게로 들어오신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담배를 한 갑 받아 주머니에 넣으셨다. 그리고는 잠시 계산대 광고판 위의 담배를 살펴보신다.



“이것도 담배야?”

“네. 이번에 새로 나온 담배예요. 광고한다고 여기에 놨어요.”

그래? 이것도 맛있나?”



 할아버지는 새로 나온 담배 갑을 만지작 거리셨다. 담배를 가져다 눈앞에서 한참 들여다보기도 하신다. 잠시 할아버지를 보다가 나는 돈을 정리하려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내가 지폐를 세는 사이 눈치를 슬며시 본다. 나를 확인하자 만지작거리던 담배를 재빨리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한번 더 나를 살핀 뒤, 유유히 가게 밖으로 나가셨다.



“오늘은 은행 일이 오래 걸렸네. 자-”



 내가 사건의 발생을 눈치도 못 챈 사이, ATM에서 볼일을 마친 할머니가 계산대로 오신다. 이어서 오 만원 권 지폐를 내미신다.



“잔돈 얼마나 바꿔드려요?”

“응. 오늘은 이만원. 내일 못 올 것 같아서.”

“아, 내일 어디 가세요?”

“병원 가야돼. 할아버지 정기검진 날이라. 가서 검사받고 치매 약타와야지.”

“아.. 할머니. 근데 약 먹으면, 진짜 진행이 더뎌요?”

“아무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지. 그리고 사람이 좀 순해져.”

“순해진다고요?”

“응. 저 영감. 약 먹고 많이 순해졌어. 약해진 건지. 순해진 건지. 암튼 간다!”

~ 조심히 가세요!”



가게 출입문을 열어드리며 배웅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저. 저랬지.’








그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니의 세단이 편의점 주차장에 선다. 마른기침을 하며 내게 해맑게 다가오는 할아버지. 왠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담배값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잘 말하면 돼. 잘.’



“담배 주쇼.”

“할아버지.”

“왜?”


 내 나름대로 의미심장하게 할아버지를 불렸지만, 나를 보는 할아버지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에 꺼내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1차 실패!


“여기요-.”


내게 담배를 받고 할아버지는 계산대 위 광고판에 손을 뻗으려 하셨다. 지레 놀란 내가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손을 저지하며 급하게 말했다.


“헉!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번에 담배 가져가셨죠?”

“저번에? 언제?”

“CCTV에 다 찍혔어요. 그걸 그냥 집어 가시면 어떻게 해요?!”

“......”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내 얼굴을 보던 할아버지는 그대로 돌아서 가게 밖으로 나가셨다.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보는데 금방 할머니가 내게로 오셨다.


“무슨 일이야? 영감이 왜?”

“할머니.. 드릴 말씀 있어요.”

“응?”

“사장님이 CCTV를 보여주셨는데, 할아버지가 저번에 여기 있던 담배를 갖고 가셨어요..”


계산대에 놓인 담배 광고판을 가리키며,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담배를 훔쳤다고?”

“네에...”


 순식간에 할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건지.


“저 영감이!! 정말! 이제 담배까지 훔쳐?!”

“할머니.. 진정하세요! 진정하셔요.”

“으휴...정말!! 미쳐, 내가. 어휴...,

"........"

"내가 단도리 할 테니까, 너도 내일 한번 더 우리 영감한테 한마디 해줘.”

“아..네. 알겠어요. 할께요.”

 여전히 할아버지는 테라스에서 담배만 뻐끔뻐끔 피고 계실 뿐이었다. 훔친 담배 값까지 계산을 마친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투로 물어보신다.


“영감땜에 사장한테 혼난 거 아냐?”

“아뇨. 혼나지는 않았어요. 우리 사장님 사람이 좋으셔서.”

“그래? 그래도 미안하다. 영감한테는 내가 말 잘 할게.”

“네. 알겠어요. 가셔요.”




- 다음날 -

앞장서 가게로 들어오는 할머니는 내게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할아버지에게 으름장을 놓으신다.


“빨리 사과해. 영감 땜에 사장한테 혼났대!”

“........거, 미안하게 됐소.”


마지못해 내 얼굴도 못 보며 사과를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내가 더 머쓱해졌다.


“사과가 그게 뭐야. 제대로 해야지. 영감 땜에 잘릴 뻔 했대.”

“그래?.... 정말 미안허우. 미안해.”

“... 괜찮아요. 할아버지 다시 또 그러시면 안 돼요! 알겠죠?”

“네에!!!! 이제 담배 줘.”

“잠시만요- 자.”


“아이고 정말. 그 놈의 담배는..쯧”


할아버지가 담배를 들고 가게 문 밖으로 나간걸 확인한 할머니는 돈을 내밀며 내게 다시 한번 사과하신다.


“미안해. 정말 우리 영감 땜에 곤란한건 아니지?”

“그럼요. 진짜 괜찮아요.”

“그렇담 다행이구. 내가 어제 집에 가서 아주 혼구녕을 내줬어.”

“에구..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또 올께!”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또 나름의 일(?)도 함께 겪으며 두 분은 내게 마음이 가고, 걱정이 되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두 분이 가게에 오실 시간이 되면,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가게 밖을 틈틈이 돌아볼 정도로 마음이 갔다. 때때로 할아버지가 다시 계산대 광고판에 진열된 담배에 손을 뻗는다 싶으면 매의 눈으로 할아버지를 감시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매일 편의점에 오시던 두 분을 볼 수 없었다. 할머니의 차가 가게 주차장으로 들어오면, 반가운 마음에 가게 문 밖으로 마중 나갈 정도로 친해졌는데.. 통 오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걱정이 들고, 한편으로는 한 순간에 발걸음을 뚝 끊은 두 분이 야속할 만큼 섭섭했다.



 그 후로 육개월이 지났을까? 늦은 오후까지 연장근무를 하고 있는데, 익숙한 차가 들어온다. 설마, 하고 지켜보니 할머니가 내리신다. 반가움에 흥분하고 말았다.


“할머니! 어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그냥 그냥...”

“할아버지는요? 왜 혼자 오셨어요?”

“우리 영감..요양원 들어갔어.”

“요양원? 갑자기 왜요?”

“왜긴 왜야. 식구들 다 힘든데. 들어가야지.”

“에휴...어디 아프신 건 아니에요?”

“아픈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됐어. 식구들을 너무 힘들게 해서.”

“아.. 할아버지 나온다고 안하셔요?”

“처음에는 집에 온다고 난리 치더니, 이젠 안 그래.. 안 그래도 사장한테 너 아직도 다니냐고 몇번 물어봤어.”

“진짜요? 저 일 계속하고 있었어요.. 이렇게라도 보니까 반갑네요.”

“나도 반갑다 야.”

“자주 좀 오셔요. 할아버지 소식도 알려주시고요.”

“알겠어. 또 올게.”



 편의점 볼일을 다 보고 주차장 밖으로 나가는 할머니 차를 보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보지 못했던 사이, 할머니는 마음고생이 심하셨나 보다. 할머니의 작아진 목소리와 그늘 진 표정에 반갑다는 말을 하다가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그래도 다행히 할머니 앞에서 주책맞게 울지는 않았다.


 요즘도 가끔 할머니가 오신다. 할머니를 통해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기도 한다. 최근 할머니 피셜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이제 요양원에 친구도 생기셨단다. 적응을 완벽히 마치고 그 좋아하시던 담배도 끊는 데 성공하셨다고 한다.



 가끔 참 신기하다. 손님으로 만나 이름도 모르는 어르신들이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든다는 게. 편의점에 오시는 단골 어르신들이 부디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도난 사건이라면, 도난 사건일텐데 용의자(?)가 치매에 걸린 것을 알고, 무던하게 넘어가주신 사장님의 인품에 다시금 놀라며 편의점에서의 에피소드가 하나 추가되었다. 이제 계산대 위에 담배는 매의 눈 알바생이 지켜보고있으니 도난사건 따위 어림도 없다!





+) 다음화 예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진상, 너도 그렇다.  


천태만상, 편의점 진상에서 절친이 되기까지.

왜 나는 공사장 인부 아저씨들과 친해지는가? 에 대한 고찰.



/ 언제나 부족한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번거로움에도 라이킷 눌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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