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나 Jan 03. 2020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편의점에도 새해가 찾아왔다. 12월 31일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며, 1월 1일부로 부점장이 되었다. 2018년 여름 알바생으로 와서 부점장이 되다니. 잠시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내 모습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마음 붙이고 일할 곳을 찾지 못했다. 발길이 향하는 어디서든 열심히 일하고 싶었지만, 내 열정을 탈곡기처럼 아낌없이 수탈당하거나 내게 다른 의도가 있는 거라며 고깝게 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완전히 위축되어있었다.


 잘 섞이지 못하고, 겉돌며 ‘완전 잘못 살았어.’ 혹은 ‘내가 다른 사람들이랑 좀 다르고 이상한가봐.’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부터는 정말 이상해져갔다. 그 어디에도 소속지 못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타인의 비위를 맞추거나 줄을 서고, 아니어도 ‘척’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




 편의점에서는 나답게 일할 수 있었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내 성에 차게 열심히 일하고, 또 남는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 할 수 있었다. 외항사 취업이 목표였던 시절에는 매장음악을 끄고, 영어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들. 이미 할 일은 다 해놨고, 손님 응대를 하면서 하다 보니 찔릴 것이 없었다. 일에 대한 만족도 당연히 높았다. 활기찬 나의 아침 인사를 받는 걸 기분 좋게 여기는 손님도 여럿 생길정도로 즐겁게 일했다.


“아침에 네 인사 받으면, 기분이 좋아~ 오늘도 많이 웃는 하루!”

“아가씨는 많이 웃어야겠네. 웃으면서 인사하는 게 너무 예쁘다.”



 진심어린 칭찬이 자신감을 주니 표정도 밝아졌다.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선순환을 제대로 타며, 매장과 손님에 대한 애정으로 단골들이 담배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꺼내드리니 아주 물건이라며 귀여움도 많이 받게 되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하며 나를 그대로 드러내도 괜찮은 곳. 난 이곳에서 드디어 마음놓고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올해는 첫 출근을 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손님에게 새해인사를 받았다. 새해 첫날이니까 자주 뵌 분들에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새해 인사를 하던 찰나였다.


자주 뵌 손님은 아닌데,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챙기시며 나에게 먼저 새해덕담을 해주셨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아..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보통은 먼저 말을 해야, “고마워요.”혹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메아리처럼 받았는데.. 이렇게 먼저 건네주시는 손님도 계셨다. 여유로운 인품에 감동받았다. 순간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다시 한번 내가 편의점에서 받았던 많은 애정과 마음이 떠올랐다.





언제나 나는 이곳에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우선 한결같은 사장님의 믿음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쓸모가 없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면, 도망칠 생각부터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마음이 쉽게 들지 않았다. 때때로 감정의 기복에 따라 친절도가 좌지우지 되거나 반말을 했던 반말을 하던 진상손님에게 똑같이 반말을 하다 결국 서로 쌍욕으로 인사하며 끝났던 사건이 있었음에도 변함없이 대해주셨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한참이 지나고  손님이 다시 왔을 때는 나에게 존댓말을 하며 아주 정중하게 행동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이따금씩 온다. 분명 사장님에게 따졌을  같은데, 사장님이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넘어가주셨다. 다만 계산대 주변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습니다.’ 등의 고객응대근로자 보호 표어가 붙기 시작했다.


오늘 받은 더덕즙, 블루베리 잼, 귤까지!



 자주 뵙는 단골손님들도 햇살처럼 따뜻한 사랑을 주셨다. ‘예쁜 아가씨~’라는 조금 민망하지만 기분 좋은 별명도, 무나 배추 같은 농작물이나 붕어빵, 핫도그는 물론이요. 지방이나 해외로 출장을 다녀오시며 사다주시는 낯선 간식거리들.. 참 많이 받았다. 칭찬이나 간식거리도 좋지만, 그 행동의 기저에 자신이 경험한 좋은 기분을 나에게도 주고 싶어 하는 그 예쁜 마음이 참 고맙다.



 이 애정들에 보듬어지며 내가 그래도 쓸모 있는 인간임을 깨달아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익숙해진 사랑과 관심에 자만했거나 때때로 편안함을 가장한 무례함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차갑게 반성해야겠다.


그리고 올 한해는 나도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낯선 곳에서 일하는 것처럼, 바짝 정신 차리고 다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모두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 적게 일하고 많이 버시길 바래요!

매거진의 이전글 단골 노부부의 숨겨진 사정 (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