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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Dec 13. 2019

편의점에 겨울이 찾아 왔다.

#6. 겨울 나그네들이 쉬어가는 따뜻한 도시 오두막, 편의점




 편의점에 겨울이 찾아오면, 새로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반짝이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호빵기계와 온장고, 지점마다 다르지만 군고구마나 오뎅기계가 들어오는 곳도 있다. 편의점을 찾은 손님들은 호빵을 보며, “벌써 호빵이 나왔네!”라며 반갑게 겨울을 맞이하기도 한다.


 일하는 입장에서 보는 편의점의 겨울은 조금 고즈넉하다. 얼음컵 커피나 차가운 음료를 찾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 여름보다 여유롭다. 책을 한 줄 더 읽을 수 있고, 매일 보충해야하는 물품의 양도 적어지는 겨울이 여름보다 좋은 건 당연하다. 물론 겨울 편의점을 더 좋아하는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출근길 커피 손님을 한바탕 치루고 한가해진 오전 시간, 아저씨 손님 한분이 들어온다. 문이 열리며 함께 들어온 차가운 칼바람에 나까지 얼어붙는 기분이다.



“옆 기사식당은 혼자 가니까 안 받네요?”



 우리 편의점 옆에는 기사식당이 있다. 특이한 점은 기사식당이지만 1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 식당에서 쫓겨난 외톨이 손님들은 우리 편의점으로 온다. 그들은 편의점의 도시락이나 김밥, 컵라면을 고르며 내게 투덜거린다.



“기사가 혼자오지. 둘이 와? 이상하네 정말.”

“뭔 기사식당이 저래? 배가 불렀네.”



 배가고파 까칠해진 상태로 나에게 감정을 토해내는 손님들은 생각보다 많다. 사실 식당주인아줌마와는 그간 쌓아온 얕은 우정이 있다. 우연히 몇 번인가 혼밥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식당 아줌마는 이미 돈을 대고 밥을 먹는 팀들도 여럿이고, 종종 발인(發靷)을 마치고 지나는 길에 들리는 단체 손님들도 잦아서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는 혼밥 족은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가게 주인의 결정이 그러하니 나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처럼 추운 날 식당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보면 식당 아줌마가 좀 야박하다는 생각도 든다.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끼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아무리 장사라지만 돈으로만 계산하는 모습이 마음까지 곯게 한다.







 식당에서 쫓겨나 편의점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괜히 시큰해진다. 한 화물차 기사 아저씨도 그 중 하나였다. 빠싹 마른 모습과 대비되는 두툼한 패딩 점퍼가 따뜻해 보이기보다는 더 추워 보였다. 배차를 기다리는지 한 손에 들린 휴대폰에서는 연신 띠링띠링- 알림음이 울린다.



“옆 기사식당은 혼자 가니까 안 받네요?”

“네. 혼자 가면 밥을 안 주시더라구요.”

“기사식당인데, 이상하네..”



 식당 아줌마와의 얕은 우정 때문에 아저씨의 말에 쉽게 동의하지도 못했다. 내가 데면데면하게 서있으니, 아저씨도 금방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온다.



부드럽지만 목이 멜 것 같은 보름달 빵

200ml 흰우유 하나.



“여기서 먹고 가도 되죠?”

“그럼요. 편하게 드세요.”


 ‘날도 추운데, 따뜻한 걸 드시지..’라며 오지랖을 부릴까 싶다가 그냥 입을 닫았다. 대신 아무렇지 않은 척 줄여둔 히터 온도를 높이고, 바람 세기를 강하게 틀었다. 추위로 얼은 몸에 차갑고 팍팍한 빵을 먹으면 체할지도 모르니까. 가끔은 티내지 않는 호의가 진짜 배려라고 생각한다.








 편의점 밖은 영하 5도. 시리도록 춥다. 히터의 바람이 추운만큼 더디게 데워진다.

겨울이 점점 깊어질수록 편의점에 들리는 손님들도 늘어간다. 그들은 따뜻한 음식이나 음료를 먹으며 잠시 머물다 간다. 빈속을 채우고, 몸을 녹이는 모습을 볼때면 편의점이 단지 물품을 사는 곳이 아닌, 따뜻함을 충전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겨울 편의점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꽁꽁 언 겨울 나그네들이 따뜻한 공간에 들어와 부드럽게 녹아든다. 따뜻함을 품고 나가며 새삼 고마워 한다. 평범한 일상의 공간인 편의점이 사용자들에 의해 특별한 의미가 부여될 때, 나는 왠지 모를 사명감 마저 들고 만다.



 부디 편의점이 잠시나마 사람들의 얼어버린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좀더 편안히 쉬었다 가기를 바라며 오늘도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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