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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Dec 12. 2019

단골 노부부의 숨겨진 사정 (上)

#5. 편의점에는 백화점보다 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온다.




“혹시 이 할아버지 누군지 아시겠어요?”

“한번 볼께요.”


 CCTV를 보는 건 편의점 알바 중 처음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른 침이 넘어갔다. 사장님이 가리 켠 화면을 잠시 봤다. 익숙한 외제차 한 대가 편의점 앞 주차장에 멈춰 선다. 이어서 낯익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다.


“아. 네. 누군지 알아요! 두 분 단골이신데. 무슨 일이에요?”

“그래요? 이 할아버지가....”








 이 사건을 말하려면, 2018년 9월 쯤으로 돌아간다. 출퇴근 단골손님들과 오전 물류 정리를 다 마치고 잠시 한숨 돌릴 때였다.

 편의점 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서는 외제차에 시선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차는 스무살 초반부터 언젠가 성공을 하면 꼭 타고 싶어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불매 운동과 변심으로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는 중형 세단, 혼다 어코드였다.


 물 흐르듯 유려하게 멈춰선 은빛 세단의 문이 열린다. 포멀한 화이트 셔츠와 붉은색 펜슬스커트를 입고 스틸레토 힐을 신은 30대의 내가 차에서 내린다. 지난 날 수도 없이 상상해본 모습이다. 어린 날 내가 꿈꾸던 성공의 단편이었다.


 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세단 운전석의 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사람은 내가 기대했던 슈트빨을 자랑하는 섹시한 젊은 남자가 아니라, 부엉이를 닮은 듯 부리부리한 눈매의 할머니셨다. 이어서 따라 내리는 할아버지.


에잇. 편의점안으로 들어 오시는 두 분을 보며, 괜히 찔려서 더욱 밝게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할머니는 내 인사를 스쳐지나 ATM 기계 앞으로 가셨다. 뒷짐을 짚고 느리게 따라오시던 할아버지가 계산대 앞으로 서자마자 찌든 담배냄새가 났다.


“담배 주쇼. 담배.”

“어떤 걸로 드릴까요?”

“한.라.산”

“네-.”


‘아. 이 할아버지 엄청 꼬장꼬장하다. 감이 좋지 않아. 빨리 응대하고, 보내야겠어.’ 신속한 움직임으로 담배 바코드를 찍고 할아버지께 건넸다. 담배를 낚아채듯 받고 바로 돌아서 포장을 뜯으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어르신. 결제는 어떻게 할까요?”

“기다려. 우리 마누라가 할 거야.”

할아버지는 고갯짓으로 할머니를 가리켰다. 할머니가 돈을 안주시지는 않겠지?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초조하게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사이,


퉤-퉤-


할아버지는 담배의 겉 비닐 포장을 이로 뜯다가 입안에 남은 얇고 긴 비닐 조각을 바닥에 뱉었다.


“할아버지! 그걸 바닥에 뱉으시면 어떻게 해요?”

“이 영감이 왜 이래..더럽게.”


 할머니는 대답을 하시며 계산대 앞 바닥에 떨어진 비닐조각을 주웠다. 그 모습을 보는 사이, 할아버지는 벌써 담배의 종이 포장까지 뜯어서 한 개피를 입에 물고 라이터의 불을 붙였다. 차마 말릴 수도 없는 아주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내뿜는 담배 연기가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헐!!! 할아버지!!”

“이 영감이 미쳤나봐!! 빨리 나가요. 나가. 어디 안에서 불을 붙여?!”

“여기서 담배를 피시면...”

“어우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아가씨.”


 등살을 떠 밀어 할아버지를 편의점 밖으로 쫒아버리고 사과하는 할머니의 모습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민망함과 미안함을 물리치기 위해 더 과장되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쫓겨난 할아버지가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할머니는 사과를 이어서 할 수 있었다.  


“저 영감이 좀 아파서 그래. 정말 미안해요.”

“아...어쩔 수 없죠.”

“미안해요. 얼마?”

“사 천원입니다.”

“자 여기. 그리고 한 만 원만 천원짜리로 바꿔줄 수 있나?”

“네, 바꿔 드릴께요.”

“응. 고마워요.”


 그 후로 매일 비슷한 시간이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찾아오셨다. 며칠을 하루 같이 할머니는 ATM에서 돈을 뽑아 할아버지의 담뱃값을 치루고, 잔돈을 바꿔가셨다.



한 달쯤, 이 모습을 보니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할머니- 이 근처에서 가게 하세요?”

“아니. 웬 가게?”

잔돈을 거의 매일 바꿔 가셔서, 장사하시나.. 했어요.”

“아냐, 우리 영감 용돈 주느라.”

“아, 용돈!”

“만원을 주면, 그걸로 노인정 가서 오후에 담배를 두 갑 더 사. 그리고 줄 담배 피는거야.”

어휴.. 지금도 사셨는데,  사신다고요?”

“그래. 하루에 세 갑! 미쳤지. 그래서 천원 짜리로 바꿔서 나눠서 줘.”

잘하셨네. 잘하셨어요.”

“...우리 영감. 치매야.”

? 정말? 저렇게 멀쩡하신대요?”

“겉보기만 그래..”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할머니의 고백에 시선을 돌려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가게 밖 테라스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고 있는 할아버지. 영락없이 맛있는 과자 먹는 아이의 모습이다. 아...


어휴.. 힘드시겠어요.”

“힘들지.. 같은 치매여도 사람마다 꽂히는 게 다 다르대. 근데 저 영감은 담배야 담배.”





 그 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 편의점을 찾을 때마다, 왜인지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며 담배만 줄곧 피워대는 할아버지. 그를 돌보는 늙은 아내. 안쓰러운 마음에 두 어르신이 오시면, 더 반갑게 인사하고 시덥잖은 한마디라도 더 꺼내게 되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담배피면 안돼요. 제가 혼낼꺼에요!”

“어이구! 깜짝이야! 소리지르지 말어!”

알겠어요. 줘보셔. 뜯어드릴게요. 오늘은 어디 가셔요? 노인정?”


손에 힘이 마음대로 들어가지 않는 할아버지의 담배곽 포장을 대신 뜯어드리는 것도 자처했다. 할아버지를 돌보다 지친 할머니의 푸념을 잠시나마 듣기도 했다.


“노인네, 노인정 데려다 놓고, 동물병원 가야지.”

동물병원은 왜요? 할머니네 강아지 키우세요?”

“아니이. 고양이. 할아버지가 노인정 앞마당에 구르던 걸 귀엽다고 데려왔는데, 아파.”

어디가요? 심각해요?”

“할아버지가 자기가 데려온 걸 잊고, 자꾸 고양이한테 소리 지르고 역정내서 애가 스트레스를 받는 지.. 사료도 안먹고, 설사만 하고 그래..”

아이구..큰일이네요.”

“그러니까. 영감 담배 다 태운 것 같은데, 간다. 잘 있어!”

“으응. 또 오셔!”




 이렇게 노부부의 숨겨진 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에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겉보기에 아쉬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편의점에는 백화점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온다. 그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수만 가지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노부부가 치매를 앓고 있을 줄이야. 예상도 못했다.



 편의점은 나에게 알바를 하는 곳 이상, 삶의 배움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며 확실히 사람을 보는 시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내가 보는 부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그동안 내가 일부만 보면서 전체를 본다고 착각해왔던 어리석음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을 볼 때, 한번에 그 사람을 다봤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의도나 상황, 상대에 따라 모습을 감출수도 있다. 


전부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 내 전부를 보여줬다고 이해를 바라지 않는 것. 이 두분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지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하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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