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늘어만 간다. 나이를 먹는 건 정말 쉬운데,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세상이 정말 빠른 게 바뀌어가서 적응은 둘째 치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처음 터질 때만 해도, 근시안적으로 당장 내 취업길이 막히는 것만 생각했었다. 당장 처해진 고용한파. 왜 하필 내가 취업준비를 할 때 이런 일이 터진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위대했다. 단기간에 백신을 만들고, 몇 년간 마스크를 써야만 할 것 같았던 삶도 다시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사이에 기업문화도 정말 많은 게 변했다. AI동료, 재택근무, 온라인회의 등등.. 생각지도 않았던 시스템들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음'을 고민하는 시점이 되었다. 아? 이게 되는 거였구나? 가능한 거였구나!
나의 일터는 이런 변화와 정확히 역행하는 곳이다. 바로, 나의 회사는 순환근무제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순환근무가 뭐냐고? 순환근무가 낯선 이들에게 설명하자면, 근무지와 직무를 돌려서 여러 업무 환경에 처하고, 혹시나 있을 사고를 방지하도록 만든 제도이다.
흠, 표면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한 예시를 들자면, 어떤 대리님은 입사한 지 5년간 직무가 1년마다 계속 바뀌었었다. 본인 역량에 따른 문제라기보다는 윗사람들의 인사배치 후 자연스럽게 짜임새를 맞추는 식으로 껴버릇한 결과다.
처음 입사했을 때까지만 해도, 순환근무에 대한 악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회사 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였다.(아마도 고일대로 고여서 인 것 같지만)
원석아, 차라리 이렇게 로테이션하는 게 나아. 저 또라이 팀장님 어차피 1년 있으면 발령 날 거야 참아. 그리고 네가 근무하면서 다시 볼 수 없을 수도 있어. 실제로 근무하시는 차장님, 팀장님 얘기를 들어보면 근무 20년간 두 번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의 장점은 전혀 찾을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첫째, 연차가 쌓여도 직무가 바뀐다는 스트레스는 여전히 존재한다. 내가 이 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인사팀에 요청해 정기인사발령 때 바꿀 수는 있으나 어디 내가 원하는 데로만 보내주던가? 뭔가 하나가 또 삐끗하면 원하지 않은 곳에서 다시 처음부터 일을 배워서 해내야 나간다는 스트레스가 만연한 곳이었다. 그래서 매번 1년마다 이 시즌이 오면 뭔가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사 빠진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오면? BOOM!! 마치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우왕좌왕하며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나도 받고, 일주일 뒤에 새로운 일터에서 난생처음 하는 일을 해내야 하고.. 마치 경력직이 새로운 직장을 들어가 일을 하는 것 같달까.
이어서 나의 커리어가 온전히 쌓이는 메리트가 없다는 점이 제일 최악이다. 입사하고 운이 좋으면 꾸준히 같은 부서 내에서 동일한 일을 하며 이것저것 확장을 할 수 있으나, 쉽지 않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어떤 큰 업무를 맡긴단 말인가? 막내들이 할법한 잔챙이들을 하고 나면, 1년이 후딱 지나간다. 이건 이렇다 치지만, 1년이 지나도 나는 다른 부서에서 여전히 막내다. 그러다 3년, 4년이 지나면 갑자기 댕그러니 다른 곳에서 업무는 처음이지만 연차가 쌓였다고 어떤 퍼포먼스를 바라는 식이다. 과거 심부름 및 자잘한 민원들을 처리하던 시절과 지금의 일을 연계해 성장하지 못한다면 과의 나의 잘못일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에 게으름이 자리 잡았다. 물론 특정 팀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보여 오래오래 계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 외 다수는 어차피 이러다 발령 날건대 뭐. 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곳이 맘에 들지 않고 잘 해내지 못한다면? 발령 나면 그만! 나의 똥처리는 누가? 바로 내 후임으로 들어올 사람이!
나는 언제까지 어리지 않다. 왜 사람들이 초반 어릴 때 힘들지언정 불경력을 가지라는지 이 길을 가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힘든 길만 있는 법은 아니니, 내가 열심히 해서 쌓아간 나의 경력서로 다른 곳을 갈 수 있다. 하다 못해 나만의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물경력에게는 그런 환희에 찬 희망이 다소 낮다. 이 기업을 나가면 경력이라고도 말하기 애매한 경력만이 남을 뿐이다. 애매하게 나이는 먹어 새파란 친구들과 싸워야 하고, 경력기술서를 쓰기조차 애매해 경력직으로도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당장 코앞이 무섭다고 으레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보다 더 빠르고 많이 바뀌는 세상에서 그 격차만이 늘어날 뿐이니 말이다.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 격차를 최선을 다해 줄이는 것뿐. 당장 몇 년간 불같은 물경력 사이에서 편했지만, 이젠 그 안락함을 벗어 불속으로 스스로 들어갈 때가 아닌가 싶다.
번외로, 도대체 인간은 언제쯤 편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 직장을 들어오면 끝인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요새는 평생직장이 없단다. 이직을 하며 연봉을 높이고, 더 좋은 복지를 누리고, 더 번쩍번쩍한 동료들과 일하며 배우고.. 오늘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씁쓸함만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