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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un 11. 2016

알바를 그만두면서

 다시 한 번 더 일을 그만뒀다. 세번째 일터를 찾아야 한다. 누군가 오래도록 직장을 다니는 데는 분명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드는 귀찮음과 마뜩잖음이 한 몫할 것 같다. 다시 알바몬을 뒤적여야 한다니. 안녕하세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최고의 성실함을 갖춘, 어쩌고 저쩌고. 다시 눈웃음을 지어야 할테지.

 영원히 알바나 하며 살 수 있다면. 그나마 튼튼하지 않은(풀 수 있는 가능성의) 매듭인생인 알바인생을 찬양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일을 그만 둔 이 시점에, 나는 눈웃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알바생의 비애에 대해서 오버액션을 취하고 싶다.


 '요즘 애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조금만 일해보고 자기랑 안 맞는다 싶으면 그만둔다니까. 너 내가 어떻게 살아온 줄 아냐. 내가 안해 본 게 없어. (어쩌고 저쩌고, 흥미롭지 않은 인생사가 흘러가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아봐.'

 내가 그만두겠다는 말을 전했을 때 실장이 했던 말이다. 실장은 그만두는 사람들을 향해 참을성 없음을 이유로 비난하기 이전에 무엇이 알바생들을 계속하여 그만두게 만들까 생각하기에는 뇌신경이 한참 짧은 사람이거나, 그 이유를 알면서도 사람을 착취하고 회유하기를 능력쯤으로 알고 사는 사람 같았다.


 '무엇이 알바생들을 계속하여 그만두게 만들까?'

 

 나는 목례인사가 아니라 눈인사를 했다는 이유로 팀장에게 제대로 인사하라는 '꾸중'을 들어야 했고,  남자친구가 돈은 좀 있니? 야 그래도 돈이든 뭐든 좀 있는 사람을 만나야지 미래도 없는 남자만나서 뭐할래? 라는 아주아주 개인적이라서 건들여서는 안될 부분들까지 지적받아야 했다.

 

 8시 30분이 근무 시간의 시작이였다. 매니저는 내게 10분 일찍 출근하기를 요구했다. 아, 옷 갈아입을 시간 정도야 당연히 생각해서 일찍 가야지, 생각했고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도 25분이였으니까 나는 매니저가 내게 가영씨 앞으로 조금 더 일찍 와요,라고 했을 때 왜요?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매니저 본인이 20분 일찍 출근하고, 다른 직원 한 명도 15분 일찍 출근하니까, 너도 이 분위기를 타서 좀 더 빨리 출근하고 좀 더 빨리 일을 시작해서 좀 더 빨리 홀청소를 마감하자는 식이였다.

 10분 일찍 출근했을 때 그 10분치의 임금도 제게 주나요?

 그래, 10분정도야 일찍 출근해서 일을 시작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은 내 선택이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일찍 오고 싶을 만큼 일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란 말인가? 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더 빨리 와서 더 빨리 일을 시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는 없고 노동자를 사용하는 고용자의 입장만을 지독히 생각하는 독단적인 요구였다.


 8시 30분에 근무를 시작하면 2시간짜리 청소를 했다. 3층짜리 건물이였다. 6월의 날씨에 홀과 복도, 화장실을 쓸고 닦고 나면 땀이 줄줄 났다. 직원언니가 나오지 않는 날에는 나 혼자 그 모든 청소를 도맡아 해야 했는데, 내가 그렇게 땀이 나는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실장은 테이블에 앉아 카톡 게임질에 열중했다. 무엇이 알바생들을 계속하여 그만두게 만들까. 알바생들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닌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카페에서 제일 꼴불견이였던 사람은 당연 실장이였는데, 그는 근무시간에 사무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카톡 게임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고, 점심시간 일이 바쁠 때 테이커웨이 컵 하나 정리해주지 않았다. 그건 알바생이 할 일이야, 내가 실장인데 그깟 컵정리를 하겠냐, 말할 사람.


 팀장은 내가 일을 마침내 그만두겠다 말했을 때 이틀 더 일하고 그만두라고 말했다(그것은 부탁이 아니였다). 되려 왜 한달 전에 말하지 않고 2주 전에 말해주냐고 내게 타박을 줬다. 그리고서는 가영씨가 토,일까지 일해줘야지 우리한테도 좋죠,라는 말을 했다. 나는 '우리한테 좋아요'라는 팀장의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멀쩡해보이는 그의 얼굴에다 토바가지를 해주고 싶었다. 그는 농협통장을 가진 내게 국민은행 통장을 하나 만들라 말하며 '그래야 우리가 편해요'라고 말했고, 나 대신 새로 일할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주고 가라는 말을 전하면서도 '그래야 우리가 좋아요'라고 말했다. 도대체 '그의 우리'가 좋은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람! 그 '우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좋음을 위하여 내가 왜 애써야한단 말인가. '그의 우리'는 나의 좋음을 위하여 무엇을 애써줬길래.  니가 나에게 좋음을 주지 않으면서 너는 왜 나에게 무턱대고 좋음을 요구하나. 너와 나는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데. 너와 나는 애정어린 친구가 아닌데. 너와 내가 자본주의에서 만났다면 내가 주는 좋음만큼의 자본을 부디 에누리없이 받는 것을 나는 바랄 뿐이다. 그러니 너도 네가 주는 좋음만큼의 노동을 내게 바라야지 오버하지 마시길.   


 사람 셋이 모였을 때, 둘이 그게 맞다 말하면 그건 맞는 것이 되기 너무나도 쉽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머지 한 명은 두 사람의 맞다 맞다 맞다 속에서 점차 아닌 것을 맞다고 생각해나가기 쉬어진다. 혹은 두 사람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닌 것도 맞구나, 하고 끄덕일 수 밖에 없을지도.    


 음.. 아무래도 다시 구할 내 새로운 일터에서도 나는 이같은 고전을 면치 못할 확률이 크다.

'쫄지마시바'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그냥 미친 년이 되겠다. 두 사람이 세 사람이 되고, 자꾸만 나는 더욱 더 미친 년이 되더라도 그냥 내게 좋음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 걷고 싶다.




덧. 근 한 달만에 또렷한 눈을 뜨고 카페에 앉아 심정을 옮겨적자니 아이스라떼도 너무나 맛이 나고 마음이랄 것도 단정히 개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들어올 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바깥구경을 조금 하사야할 것들을 조금 사고 점심으로 키작은요리사네에 가서 파스타를 먹고 싶다.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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