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ren Sep 30. 2019

[일기] 습관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하도 뚱뚱하다고 놀리고, 살만 빠지면 정말 예쁘겠다는 그러니까 지금은 네가 좀 못났다는 말을 애둘러 표현하는 사람들 때문이였던 것 같다.

중학생 때는 평험한 고등학교는 안된다는 아빠의 말에 복종해서 외고 시험을 봐야했고, 고등학생 때는 또 다시 고대 정도는 가야하지 않겠냐는 턱없는 그의 기대에 나는 매번 독서실에서 공부 대신 빵을 우걱우걱 먹었다. 외고도 고대도 떨어졌다 물론.


나는 초등학생 4학년 때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20대 초반까지 식이장애를 겪어왔다. 내가 가진 식이장애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해지면 음식을 찾는, 그 먹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는 병이였다. 음식을 먹을 때는 내가 얼마나 먹는지 잊으려고 애쓰며 먹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다음으로 먹을 음식을 마음 속으로 정하며 먹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였다. 내게 음식을 먹는 시간은 내 마음이 가장 무감각하고, 단순히 혀가 행복해서 뇌가 행복해져 버리는 순간들이였다. 먹고 싶은 것들을 계속해서 계속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은 그 먹음의 상황만큼은 내가 장악해버릴 수 있는 행복한 괴물이 되는 순간이였다.

극심한 다이어트와 무절제한 폭식을 꽤 오랫동안 해왔던 것 같다. 수능이 끝나면 집을 떠나면 한국을 떠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고 그들과 멀리 떨어져서도 내 속엔 아직 폭식의 잔재가 남아있다.


일자리를 계속 바꾸면서 새로운 곳들에서 트레이닝을 겹쳐해야했고, 마침내 일하기로 마음먹은 카페에서는 처음부터 풀타임 쉬프트를 줬다. 그래서 2주 동안 쉬는 날이 없었다. 일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마음먹은대로 해야하는데, 뭐가 또 마음에 안 든다. 사장도 마음에 안들고 내 라떼아트도 마음에 안들고 내 영어 악센트도 마음에 안들고 적은 팁도 마음에 안 든다. ppr은 언제 copr이 되어 날아올지도 미정이라서, 혹시 잘못될 일을 없을지 걱정이 된다. 영주권이 나오면 뭐라도 배우러 학교에 가야할지, 어찌됐건 한바탕 여행을 떠나도 좋을지, 영주권이 나온다고 영어가 입에서 줄줄 터져나오는 것도 아니구나 하면서 복에 겨워 꼴보기 싫은 울상을 하고 있다. 그렇게 초콜릿을 생각한다. 초콜릿 생각만 한다. 초콜릿을 먹고 나니 냉면이 먹고 싶다. 냉면을 먹고 나면 뭘 먹어서 이 불안한 내 마음을 틀어막을까.


아빠는 화가 나면 술을 찾았다. 술을 마시면서 화낼 용기를 북돋는다. 자신이 제압가능한 약한 자들을 향해 술주정을 빌미로 분노를 표출한다. 입과 몸의 폭력으로써.

남자친구는 눈을 뜨면 담배 하나, 밥을 먹고 담배 하나, 쉬는 시간 담배 하나, 잠자기 전 담배 하나. 이번에는 정말 끊어야하는데 말하면서 담배 다시 하나.

같이 일하는 친구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어요, 하고 5분 지각, 빨래를 다 널고 온다고요 하고 10분 지각, 비가 갑자기 와서, 5분 지각. 각양각색의 이유로 5분과 10분쯤은 시간도 아니라는 듯이 웃어넘기기.


나와 그들의 나쁜 습관을 보고 있으면,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미 뇌에 입력되어버린 어떤 부호체계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a가 발생했을 때 b를 행동하는 것을 오래동안 수행해온 내 뇌가 a가 발생했을 때 z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새로운 부호체계를 입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a-> z를 입력할 사람이 필요하다. 근데 문제는 내가 z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z 자체가 내 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 게, 뇌는 생각보다 유연하다고 들었다. a-> wexr 혹은 a-> werr 등등 다른 아이들의 도움을 빌려 결국에는 z와 비스무리한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번 반복해내면서 내가 원하는 a->z'가 가능할 수도 있는 일.

결국 습관을 바꾸기 위해는 a->z를 해내기로 마음먹는 주체와, 이후로 a->wexr 혹은 ㅁ->werr등등 실험해내가는 주체, 결국 a->z'를 반복해내어 정착시키는 주체가 계속해서 필요하다.


4년 전 4월에 나는 한달동안 고기를 안먹기로 마음먹었다. 이후로 고기 대신 계란을 먹거나 생선을 먹으면서 30일을 채웠다. 고기를 안 먹는 것을 다시 3개월 더 시도하기로 했다. 3개월 고기 먹지 않기를 지켰다. 그것이 6개월이 되었고 1년이 다 되어갔을 때, 나는 비건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계란 대신 콩을 먹고 생선 대신에도 콩을 먹었는데, 역시나 캔 콩은 너무 맛이 없어서 얼마가지 못해 내 비건 시도는 실패했다. 다시 계란을 먹고 연어회를 먹었다. 다른 전략을 짜야했다. 나는 주구창창 캔 콩을 따 먹는 대신, 유투브에 나오는 비건 요리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기로 했다. 내 콩요리를 내가 좋아하게 되었다. 요리를 하면서 비건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속해서 콩요리를 했다. 1달이 흐르고 3개월이 흐르고 6개월이 흘렀다. 그렇게 비건이 된지 2년 2개월 째. 내 요리는 맛없을 때와 먹어줄만할 때의 사이를 오가며 큰 진전은 없으나, 내 비건행은 다행히 안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양념치킨을 먹을 수 있다면 새벽 2시에도 입맛을 다실  알았던 나는 이제는 고기를 먹으라고 해도 더는 입이 열리디 않는다. 커피라면 라떼만 마셨던 나는 이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가끔 가다 소이라떼를 마신다. 참치회에 영혼을 팔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참치스시를 먹는 남자친구 앞에서 아보카도롤을 먹으면서 딱 10초, 부러워할 뿐 그 이후로는 내 롤을 잘 즐길 줄 안다. (10초가 지나서야 이성적일 수 있는데, 그럼 내 입을 만족시키기 위해 좁아터진 양식장의 화학 처리된 물 속에서 뻐끔뻐끔 영문없이 살아남아야 했던 참치 한 마리를 상상한다.)

고기, 생선, 우유, 계란, 허니, 등등 내가 20년 넘는 세월동안 먹어왔던 것들, 여전히 내 주변을 점령하고 있는 것들을 내 생활에서 배척해나가는 일이 이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나는 내가 갖고 싶었던 좋은 습관 하나를 안정적으로 장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완전히 배척해내지 못한 나쁜 습관은 내가 빨간불일 때마다 찾아오는 폭식증이다. 내 폭식은 아주 나쁜 심리 습관이기도 하다. 나는 불안을 핑계로 입 속에 음식을 털어넣는다. 불안(a)-> 음식(b). 이 견고한, 혹은 내가 견고하다고 믿는 부호 체계를 부수는 것이 내게 필요하다.

불안은 인간인 이상 언제까지나 나를 방문할 것이고, 그 때마다 폭식을 한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러닝머신 위에서 달려야한단 말인가. 얼마나 지대한 시간낭비란 말인가. 그게 얼마나 숨찬데.


폭식의 연쇄성을 끊기 위한 내 해결책은 1)카페에 가는 것이다. 사람이 많은 카페에 가서, 머그잔에 담긴 아메리카노와 그릇에 담겨나오는 디저트를 맛있게 먹는 것이다. 집에서 혼자 눈에 보이는 잡 것들을 잡스럽게 먹고 나면 나마저도 너무 잡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것같아 더 잡스럽게 다음 음식을 해치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2) 팟캐스트를 듣는다. 폭식을 할만큼 마음이 붕떠있을 때는 아무리 좋은 영어 팟캐스트를 들어봤자 귀에 닿기마저 힘들다. 한국말로 된 책 팟캐스트를 몇시간째 이어듣는다. 실험 결과 유일하게 효과적인 것이 책 팟캐스트 뿐이였는데, 신기하게도 팟캐스트를 듣고 있으면 불안의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날 힘이 차곡차곡 쌓인다. 말의 힘일까. 사람들이 하는 말 속에 담긴 그들의 고유한 에너지가 파동을 일으키며 내 마음을 친다. 내 심리가 초록불일 때는 귓등도 치지 못할 말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빨간불일 때는 누군가의 작은 말 속에 작은 힘들을 훨씬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빨래를 개거나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러다보면 괜찮아진다. 괜찮아도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고 차분히, 먹을 것들을 생각하는 대신 머릿 속에서 해야할 일들을 하나씩 정해간다.

그 외에도 e-book을 읽는다던지, 그저 잠을 퍼잔다던지, 친구를 만난다던지 등등 시도해본 것들이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저 두 가지였다.


불안이 와도 찬찬히 심호흡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앞에 해야할 일들을 천천히 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 z가 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카페에 왔고 아메리카노와 비건 초콜렛바를 시켜서 야금야금 먹으면서 오은의 옹기종기, 장강명편을 듣고 있다. 그리고 내 불안과 습관을 기록하기로 한다.



*엄마는 나를 뚱뚱하다고 놀려서는 안되었고, 사람들은 그저 내게 예쁘다고 말해줬어야 했다. 나쁜 사람들.

작가의 이전글 [편지] 정확하게 실패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