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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pr 08. 2020

책 <총,균,쇠> 를 읽고.

자기 계발적 독서 같은.

 ‘사피엔스’는 인간 종에 대한 환상을 깨주었다면, ‘총균쇠’는 폭력적인 인간 종이 폭력적으로 만들어낸 인종 차별에 대해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싸워주는 책이였다.

 나는 ‘사피엔스’를 먼저 읽었다. 그 후에 ‘총균쇠’를 집어 들었을 때 다시 한 번 더 책 두께에 압도 당했다. 첫 장부터 읽는 용기를 버려야 했다. 책을 펼쳤을 때의 균형을 생각하여 책의 중간 어디쯤을 먼저 읽어 나갔다. 그에 따라 내 독서 감상문은 상당히 뒤죽박죽이 된다.


 ‘총균쇠’가 너무 두꺼워서 집어 들기 무섭다는 친구에게 지적 장식용으로라도 일단 사보라고 꼬드겼다. 책을 산 친구는 정말 장식용으로 그것을 모셔뒀다. 나는 친구에게 이 책의 스무 페이지만 읽는다면 어디가서 ‘총균쇠’를 읽은 척할 수 있을지도 모를 거라고 귀뜸했다. 책의 제목이’ 총균쇠’인 이유를 가장 재밌게 설명한 장이 제 3장,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피사로는 교활하고, 아타우알파는 멍청해도 그렇게 멍청할 수 있나 싶다. 피사로의 아타우알파 생포 사건은 ‘문자’를 가지고 있었던 스페인인들에 의해서 기록되어 있다(유럽인들이 후에 이 사건에 대한 책을 만들어서 출판하는데에는 9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사건을 문학 작품으로 읽어본다면 단지 등장 인물의 특징을 분석함으로써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인물은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고, 두 인물의 대결은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실제 사건이다. 1532년에 있었던 잉카 제국의 몰락의 배경을 살펴보면 역사에서 단순히 인물의 특징을 탓하는 것이 얼마나 좁은 식견인지 깨닫게 된다.

 피사로가 이끈 168명의 오합지졸 군대는 약 8만명의 아타우알파 대군을 이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잉카족은 ‘천연두(병원균 또한 유럽인들이 신세계에 가져와 퍼트렸다)’로 빚어진 내전으로 제국이 제대로 단합되지 못한 상황이였고,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무너뜨린 작전을 모방해서 피사로는 때맞춰 잉카 제국을 침략하기로 한다. 피사로 군대는 배를 타고 페루로 넘어왔는데, 그것은 그 당시 유럽의 ‘해양 기술’ 과 항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선원을 고용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 조직’없이는 불가능 했다. 정복자들은 ‘쇠칼과 총’을 썼고(물론 당시 아직 총의 역할은 미미했으나), 원주민들은 돌을 들었다. 정복자들이 ‘말’을 타고 기습/퇴각하는 동안 원주민들은 재빨리 뛰어다녀도 말보다 빠를 수 없어 죽어나갔다.

 유럽 정복자들이 원주민을 이길 수 박에 없었던 여러 가지 요인들(병원균, 기술, 쇠, 총, 말 등등)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문자’다. ‘문자 덕분에 유럽인들은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었고(‘흥,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이런 식으로 무너뜨릴 수 있었군.’ 혹은 ‘오 우리나라도 스페인처럼 신세계 정복에 나서야 겠군’식의)’, 반대로 문자 체계가 없었던 신세계의 원주민들은 아무런 정보도 가질 수 없었다(‘당시 글을 쓰는 일은 멕시코 인근 지역의 몇몇 민족의 소수 엘리트 계급에 국한되어 있었다’). 

 만약 잉카 제국이 문자를 통한 정보 습득에 능했더라면, 아타우알파를 비롯한 뒤이은 원주민 지도자들은 몰락을 피하는 대안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라고 잠시 희망적인 질문도 해봤으나, 아무래도 피사로 같은 유럽의 정복자들에게는 평화적인 결말을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많은 총과 균과 쇠가 있었던 덕택에 피를 보는 일은 불가피했을 거라는 절망적인 결론을 예상한다.

 이후로 유럽은 본격적인 침략에 성공하여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한다. 이것은 똑똑한 피사로 민족과 멍청한 아타우알파 민족의 당연한 결과인가?  왜 똑똑한 아타우알파 민족과 멍청한 피사로 민족 간의 대결이 될 수는 없었나?


 이 책의 독자는 유럽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잡아 먹을 수 있었던 무기가 되었던 것들-병원균, 기술, 쇠, 총, 말, 문자, 제국-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주목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무기들은 어떻게 유럽에서 탄생될 수 있었나?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유라시아라는 대륙의 환경적인 특징 때문이다. 유라시아에 사는 인종의 특징이 아니라.

 유라시아는 5대륙 중 가장 큰 대륙이며, 생태적으로 다양하여 각양각색의 생식지가 있고, 여러 부류의 동식물이 가장 다양하다. 거기다 길쭉한 동서축으로 눈에 띄는 장애물이 없어 식물과 동물의 전파도 가장 용이했다. 작물화와 가축화를 통해 ‘식량 생산’이 가장 많은 대륙이 될 수 있었고, 오랫동안 이뤄진 가축화로 병원균에 대한 내성도 길렀다 . 식량 생산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에서 ‘문자’도 고안되었고, 문자는 후에 경제적 전문화와 정치적 계급화를 도울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정보 전파력에 기여한다.  밥을 많이 먹은 유라시아 대륙의 민족들은 ‘인구 증가’도 빠르게 이뤄낸다. 많아진 인구는 ‘정치와 종교’를 만들고,  많아진 인구만큼이나 많은 ‘기술(쇠와 총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을 만들 수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은 유라시아 대륙에 비해 훨씬 열악한 환경적 토대에서 출발했다. 생태적으로 가축화 및 작물화 할 수 있었던 야생 후보종이 훨씬 뒤떨어졌고, 지리적으로도 주요 축이 남북 방향(위도가 크게 달라져서 기후가 크게 달라지고 그것은 가축화와 작물화에 불리하다)이고, 그 사이에 장애물들(하나의 예로써 면적이 확 줄어드는 중앙 아메리카를 든다)도 많았기 때문에 인류 증가와 기술 전파에 훨씬 불리했다. 내가 졸지 않고 이 책을 읽었던 게 맞다면 위의 요약은 맞는 말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유라시아 대륙은 참 운이 좋다고 생각된다. 동물의 가축화에 성공한 가축들마저 거의 대부분 유라시아산이다. 가축화에 성공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가축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기가 되어 단백질을 주고 운송 수단인 되어주고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비료를 주고 죽으면 가죽이 되어주고 쟁기를 끌어주고 털을 뽑아 옷까지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다른 민족들을 죽일 수 있는 병원균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가축화에 성공하면 할수록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므로, 가축화는 인구 증가에 절대적인 요소다.   

 이 책의 9장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안나 카레리나의 한 구절을 빌려와서 가축화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들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의 가축화할 수 없는 6가지 이유들을 읽으면서 각각의 동물들이 가진 의외의 특징들에 대해서 감탄했다.

 예를 들면 치타는 감금 상태에서는 섹스를 할 수 없다. 암컷 치타가 배란을 하기 위해서는 수컷 치타들의 ‘난폭한 장거리 구애 과정’이 필요한데 우리에 갇힌 치타들은 그 게임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가젤은 겁을 너무 잘 먹어서 탈이다. 가젤을 가두게 되면 충격을 받아 자살하거나 울타리를 들이받다 머리가 깨진 채 죽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진다고 한다. 가장 늠름한 예는 사슴류 및 영양류다. 그들은 누굴 모시지 않는다. 친구 사슴은 물론 인간에게도 복종할 줄 모르는 꼿꼿함 덕분에 가축화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궁금해졌다. 과연 인간들을 가축화하고자 하는 외계인이 있다면 나는 가축화되어 살 운명일지 가축화될 수 없는 쪽일지. 가축화될 수 없다면 이유는 무엇일지. 나는 배가 고프면 복종하고야 마는 동물이겠지만, 아무데서나(특히 누가 보고 있는 곳에서는 절대)  섹스할 수 있는 인간은 못될 것 같아서, 어떻게 될지.


 ‘제13장,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에서는 인류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 역사에 대한 서술이다. 나는 이 장에서 자기계발 서적에 들어가면 인기가 많을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자가 촉매 작용이란 스스로 촉매 작용을 일으켜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 되는 현상을 말한다.'''''''기술이 스스로 촉매 작용을 일으키는 한 가지 이유는 먼저 간단한 문제들부터 차근차근 해결해야만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자가 촉매 작용이 일어나는 또 다른 주된 이유는 새로운 기술과 재료들이 재결합되어 다시 새로운 기술의 탄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라고 요약되는 이 작용의 원리로, 철물은 약 2000년에 걸친 청동 야금술의 경험이 쌓인 후에야 일반화 되었고, 쿠텐베르크의 인쇄기는 (기원전 1700년의 크레타 섬의 파이스토스 원판과는 달리) 종이, 활자, 야금술, 압착기, 잉크, 문자 등등 다른 기술 및 재료들과의 결합을 통해서 발전 가능해졌다. 또 그것이 인쇄술을 폭발적으로 전파할 수도 있었다.

 유라시아는 지리적 요건이 탁월했기 때문에 이미 다른 대륙에 비해 기술 발전이 가장 유리한 입장이었다. 기술은 자가 촉매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유라시아와 다른 대륙들의 기술 발전 격차는 점차 더 벌어지고 중세에 와서는 좁힐 수 없게 월등한 기술을 갖게 된다. 유럽인들이 원래부터 똑똑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이 갖는 환경적 요인 덕분에 더 나은 입장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계속해서 증명해 나간다.


 ‘총균쇠’는 두꺼워서 무서운 책이 결국 두껍고 무섭기만 한 책으로 낙인 당하는 운명을 적어도 한 독자로부터는 피했다. 반은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필력 덕분이고 나머지 반은 가까스로 다 읽고 멋대로 요약해버리는 내 뻔뻔한 덕분이다.

 그래서 결국 유라시아에 한정된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저자는 흥미로운 동시에 인간으로서 알아두면 좋을 인간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지치지 않고 들려준다. 유라시아의 초승달 지대가 현재는 불모지가 되고 서유럽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유럽이 실세가 된 이유, 초승달 지대 만큼은 아니더라도 환경적으로 상당히 유리해서 한때 앞서 나갔던 중국이 정체하기 시작했던 이유, 중국과는 달리 만성적으로 분열을 지향하는 유럽이 아직까지 정치/기술/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이유,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벌어졌던 민족들의 이동과 충돌에 대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 같은 역사 문외한에게 특히 놀라운 이야기들이였다.   


 이 책은 나에게 앞으로 하면 좋을 두 가지 일을 알려줬다.

  내게는 아시아 문화는 너무 뒤떨어졌고 그것이 아시아인들의 인종적인 후진성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한국인 친구 한 명과, 자신이 프랑스인이라는 것에 과도한 우월감을 드러내며 알게 모르게 나를 가르치고 싶은 유럽인 친구 한명이 있다. 나는 특히 그 두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어졌다(물론 그 외에도 내가 마추친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많다).


 ‘상황은 변하는 것이며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p609)’라는 교훈에 따르면 앞으로의 인류 역사가 또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물론 저자에 따르면 앞으로의 역사도 ‘종전 규칙의 변형(p609)’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그 변형이 어떤 식일지는 역사학자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저 ‘자가 촉매 현상’이나 따를 생각이다. 내 개인 기술의 역사를 좀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걸려도 차근차근 해야할 것들은 먼저 해가며, 흡수/통합해야 할 기술이 있다면 그것들을 배우고 재결합해 가면서 내가 내 자신의 촉매가 될 수 있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도 발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의 용도를 찾아낼 수 있을까.(제13장,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과연 인류 역사책을 자기 계발적으로 읽다니, 나는 이 책을 정말 멋대로 읽은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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