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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pr 08. 2020

책 <인간의 조건>을 읽고

zcrew 를 그만두면서

아니, 생각해봐. 우린 시급제잖아. 시간당 임금을 받는다고. 그럼 30분은 굉장히 유의미한 시간인거야 내가 30분 초과업무에 대한 급여를 요구하는 건 전혀 비정상이 아니라는 말이지.


Huy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너야 그것 좀 안 받아도 되겠지. 일할 때도 노는 애니까. 나는 가끔씩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로 바쁜데, 그럴 때에도 너는 빳빳이 다린 것 같은 얼굴로 앞 짐을 지고 천하태평이잖아. 고작 30분 가지고 뭘 그리 예민하냐고 네가 내게 되물어도, Huy야, 나는 너를 이해할게. 어쨌든 너나 나나 비천한 노동자니까.


Zack은 다시는 초과근무 같은 걸로 얼굴 붉히며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마감을 하는 데에 30분은 충분한 시간이고, front staff들은 대부분 4시 30보다 일찍 마치는 날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설사 우리가 좀 일찍 마칠 때에도 자신은 치사하게 시간을 문제삼지 않고 4시 30분까지 일한 것으로 언제나 계산해왔다는 것이었다. Zack, 나는 돈을 더 받고 싶지도 덜 받고 싶지도 않아. 단지 내가 일한 만큼의 노동에 대해서 그 값을 제대로 받고 싶다는 것뿐이야, 라고 말했지만 그는 한마디의 말로 내 항변을 일축했다. Anyway, Karen, you remember I always pay you more than you actually  work. I’m not a bad person who doesn’t pay you.

사장들은 말해봐야 소용없는 사람들이다. ‘회장님, 사장님, 부장님들은 실제로도 장님’이라고,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며 먹고 사는지만 고집스럽게 보지 못하는 선택적 시각 장애인’이라고 한승태는 말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이 선택적으로 보는 것은 자기 이익 뿐이다.


Zack은 내게 자기를 좀 이해해달라는 멘트를 많이 해왔다. 그러면서 내가 Vegan인 건 이해가 안됐던 건지 한동안 내게 밥을 주지 않았다. 다행히 몇 주가 흐른 뒤에는 내가 Hard worker인 게 마음에 든다면서 빵과 샐러드를 줬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먹기에는 배가 너무 고파서 ‘씨에씨에’ 하면서 받아먹었다. 언젠가 한번은 몰상식한 쉐프에게서 바나나 한 개만을 점심으로 받은 날도 있었다. 그는 Vegan은 바나나나 먹는 거라고 말했다. 그 날 나는 바나나 한 개를 먹고 9시간을 일했다. 그 사건은 의외의 변곡점이 되었고, Zack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내 말에 내가 먹고 싶은 건 다 먹어도 좋다는 문화정책을 썼다. 나는 항상 먹는 것에 약하다. 그 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어디서든3개월은 일해봐야 한다는 근거 없는 오기는 어디에서 왔나.

내 입에 좀 더 단 걸 넣어준 이후로 잭은 내게 와서 ‘I’m disappointed’를 남발했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구사하는 현명한 조련사였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같잖아서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응시했다. 그는 내 눈빛 공격에 개의치 않고 내 업무 처리의 불완전함에 대해서 침을 튀기며 말했다. 나는 그의 침을 맞으면서 매번 져야 했다.

 그는 나를 ‘ 아시아인 이민자’의 범주에 묶길 좋아했다. ‘이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여기 캐네디언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해야 해. 그래야 자리잡고 성공할 수 있거든.’ 혹은  ‘우리 아시아인들은 쟤들이랑 달라도 너무 달라. 쟤네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너는 알잖아 충성심을.’ 같은 식으로.

나를 제외한 front의 모든 스텝들은 케네디언 혹은 오지였다. 나는 잭이 그들에게 보이는 태도와 내게 취하는 태도가 어떤 식으로 다른지 잘 안다.  예를 들면, 나 아직 시저 만들 줄 모르는데? 같은 말을 Huy나 Sabrina나 Jack이 했다 해도 잭은 그들에게 절대로 아이 엠 디써포인티드! 같은 말을 잔뜩 찡그린 미간과 입술로 내뱉지 못했을 거란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는 정말로 크게 보면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한국 여자애인 나를 전체주의적인 얼굴을 하고서 가르치려 들었지도 모른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세상에는 이것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 많으니까, 나를 스스로 위로하면서 3개월을 버텼다.


‘조롱을 감수하면서 맞지 않는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 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참을성 좋은 사람들은 체면이니, 부모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명분에 충성을 다하는데,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건 여지없이 이런 부류다.’ 

                                                                     <인간이 조건, 과자의 집의 기록/ 아산, 돼지 농장> 중에서


나는 용기를 가진 사람 쪽은 아니다. 그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굉장히 삐뚤어진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한 가장 힘든 일은 경기장이나 가정집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호주에서 했던 청소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3개월만에 겨우 쉬는 날을 받아냈는데, 오른쪽 사지 마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 날은 일요일이라 문을 여는 병원도 없었다. 감각 없는 팔 다리를 뒤흔들면서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청소 같은 거, 변기 같은 건 안 닦겠다고. 2년 뒤 캐나다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했던 일도 청소였다. 역시 함부로 다짐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함부로 자신의 앞날을 예견할 수가 없다. 캐나다에서 청소부의 시급은 보통 30불인데 나는 한국인 고용인 밑에서 일하면서 13불을 받았다. 30불을 다 받을 것을 기대하는 바보는 아니지만, 그래도 13불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노동을 도둑 당한 채 집에 돌아 와서는 대 자로 거실 한 폭에 누웠다. 먼지 쌓인 몸을 씻을 여력도 없이 잠에 드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승태씨가 했던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꽃게잡이 일이나, 따까리가 되어가는 돼지 똥을 퍼내는 ‘비육사’에서의 일에 비하면 내 것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유치원생의 투정 같다.  

지금까지 오래도록 하고 있는 일은 손님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드는 서비스 업종이다.  이 일이 물론 힘들고 고되지만 인간 존엄성에 대해서 고민할 정도는 아니다.  대신 인간들이 조금씩 더 싫어진다. 같이 일을 하면서도 막내는 바쁘면 밥을 먹지 못하고 쉐프는 참치 회가 가득한 밥을 쳐먹는다. 신참의 작은 잘못에는 불같이 욕을 퍼부으면서 사장한테는 끽소리도 못하고 시시배배 배꼽 꼬는 웃음을 흘린다.  손님한테 고개를 가득 숙여 인사하는 친절한 미소 뒤에  누가누가 게으르나 감시하는 눈초리를 한 사장의 매서운 얼굴이 뒤따른다. 돈이 되는 것들, 손님 같은 것들이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될 때 돈이 안 되는 것들, 돈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못하는 것들은 강력하게 탈락 당한다. 그래서 나 같은 인간들은 쎄빠지게 몸을 굴리고 굴리고 굴리고 굴리고 굴리다가 다 소진되어 버릴 까봐 겁이 난다.

나는 정말 조금 겁이 난다. 노동자들의 쉼 없을 노동으로 만들어진 잉여 자본을 먹고 쉼 없이 몸집을 불려가는 자본가들의 탐욕이 겁이 나고, 그들 탐욕의 담요 안에서 푹푹 찌는 숨을 내쉬어가며 요리조리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 연료를 만들어내야 하는 노동의 끝없음이 겁이 나고, 결국 나는 실패할 자본주의를 객관적으로 떠드는 대신 그 자본주의의 가장 아래에서 노동의 재생산만을 강요당하는 시지프스가 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암시에 겁이 난다.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조건, 퀴닝 queening> 중에서 


방법은 뭘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노동에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나.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와 엮이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혼자서 맥주를 마신다. Zcrew 일이 끝나면 한동안 아무것과도 엮이고 싶지 않다. 오직 삐뚤어진 내 몸과 정신을 좀 더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에만 최선을 다해 구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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