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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pr 16. 2020

[일기]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겪으면서.

부제; 대구 사람에게 선거란?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대구 토박이다. 정치? 아빠는 정치하는 인간들은 선거할 때만 고개 숙이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신문은 꼬박꼬박 읽었는데, 중앙 일보를 읽었고, 유독 찬양하는 정치인이 있었는데, 박정희였다. 아직까지도 아빠는 ‘박정희만큼 경제를 성장시킨 대통령이 없다’며 목울대를 치켜세우며 소리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대구가 온통 빨간색인 걸 보면 말이다.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그 날의 선거는 나와 내 친구의 생애 첫 투표를 자축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우리는 각자 투표를 마치고 밤늦게 동네 치킨 집에서 만났다. 개표 결과를 함께 지켜봤다. 합리적으로 따져본다면 아무래도 우리가 뽑은 후보가 곧 대통령이 되어야 마땅했던 날이다. 불안해하는 친구에게 나는 걱정 말라는 위로를 보내면서, 설레고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바베큐 치킨을 시켰다. 

 그날 우리는 치킨을 남겼다. 평소 우리 두 사람에게 언제나 조금 모자라던 치킨이었는데. 허탈한 마음에 목구멍으로 그게 넘어가질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은 눈물까지(왜 흘렸지?) 찔끔거리며 다짐했다. 한국은 이제 미래가 없을 거라고. 어서 우리는 이 곳을 떠나자고. 투표 결과는 합리적이지 않았다. 그때도 대구는 온통 빨간색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정말 대구를, 한국을 떠나 먼 나라에 살고 있다. 미래가 없을 곳을 떠나서 새 미래가 생겼나.

 오히려 나는 한국을 떠난 이후로 내 정체성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그 나라가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곳이란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애국심을 가질 바에야 나라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종류의 인간이고, 이러한 인식은 애국심과는 다른 것이다.

 내 나라는 이제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어떤 한 부분이다.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이 전혀 좋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내 나라를 좋아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 부모와 친구들이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건강하지 못하면, 그래서 그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나도 건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나라를 받아들인 것처럼 내 고향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엄마(대구 사람)는 미래 통합당을 찍지 않을 거라고 내게 말했다. 지금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대처하는 데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고, 뭐 딱히 잘못한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갑작스럽고 낯선 발언에 크게 놀랐다. 조금 흥분해서, 엄마에게 이런 요청을 해봤다. ‘엄마 친구들한테도 엄마 생각 변화에 대해서 얘기 좀 해줘봐.’

 엄마의 답변은, ‘그랬다간 여기서 맞아 죽는다.’ 였다. 엄마는 동서는 누굴 뽑을 거냐고 묻는 고모(대구 사람)에게  ‘1로 5세요.’라고 상큼하게 대답했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 경험 이후로 잔뜩 겁을 먹어서 말 그대로 남몰래 ‘비밀 투표’를 하고 왔단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의 조언’ 이라는 책의 ‘무지’ 파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 관점들의 대부분은 개개인의 합리성(individual rationality)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집단 생각(gruopthink)으로 형성된다. 우리는 집단에 대한 의리(royalty)로 그러한 관점들을 유지해 나간다. 사람들에게 팩트를 가득 모아 퍼부어주거나, 사람들 개개인의 무지를 노출시키는 것은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많은 팩트들을 달가워하지 않을  뿐더러, 바보처럼 취급 당하는 것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를 보고, 남자 친구가 도대체 대구는 왜 그런 거냐고 물었다.(나도 묻고 싶은데!) 인터넷 댓글 창에서 사람들은 대구를 일본에 떼어주자고, 대구를 독립시켜주자고 말한다.


경상도 사람들이 경상도라는 한 집단에 대해서 지켜내고 싶은 의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하라리가 지적한 것처럼, 사피엔스는 합리적인 개개인이라기 보다는 의리를 지키고 싶은 집단적인 종족이다. 그리고 대구는 사피엔스 집단 충성의 가장 적극적인 예다. 나는 대구 사람들의 지치지 않는 집단적 충성심을 내 첫 투표 이래 지금까지 매번 섬뜩해하며 바라보고 있다. 그것의 역사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겠지. 해결책이 뭘까. 해결책이 있기나 할까.


엄마랑 통화가 끝나고 친구들(대구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한 통씩 돌렸다. 누굴 뽑을 거냐는 내 물음에 한 친구가 비밀 투표 아니냐고 따진다. 그러면서 친구는 뽑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뒤이어 문재인이 뭘 잘했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와 한 시간을 옥신각신 통화했다.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일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이고 강력한 힘이 정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1%의 부자와 99% 가난한 자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땅값을 올려주고 지켜주는 것이 정치일지 모르지만, 가장 취약한 계층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의 없는 정책들이 그들의 목숨줄을 앗아가기도 한다.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계층 역시 가난한 흑인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국가 의료 체계에 도움을 기대하는 대신 교회에 나가서 도움을 요청한다. 아플 때 병원이 아니라 교회에 가야 하는 나라를 만든 것은 미국 시민들의 투표가 만들어낸 결과다. 시민들은 의료 민영화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트럼프를 세웠다. 그것은 그들이 '뽑을 사람이 없어서' 투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들이 처한(혹은 처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을 보지 않는 무지의 표를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친구가 뽑을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데에 주목한다.

우리는 정치를 곧잘 이상화하기 좋아하고, 내 아빠가 말했던 것과 같이 정치인은 ‘선거할 때만 고개 숙이는 것들’이라고 매도하며 탈정치를 선언하길 즐기는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무엇이 옳으냐, 무엇을 해야 하느냐’하는 원리 원칙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판단하되, 이를 실천하는데 있어서는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돈벌이 하는데 지혜를 발휘하듯이 능숙한 실천을 해 나가야 합니다.”

현실이 아등바등 사는 삶이라면 정치는 아등바등 지켜내야 하는 현실의 최전선이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은 선거 때라도 고개를 굽신굽신 숙여가면서 최대한 장사치가 되어야 한다. 법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법 하나는 잠시 뒤로 미뤄두는 장사를 해야 하고, 영원히 타협할 수 없는 상대 정당의 의원과 만나서 한 번 잘해보자고 억지로 밥 먹는 일도 해야 한다.


정말 일부(?) 정치인들은 매도 당해도 쌀 만큼 그저 자기 배 채우는 장사꾼인 게 맞다. 그러나 다행히 한국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는 정치인들도 있다. 우리의 에너지는 그러한 ‘문제 의식’을 가진 정치인들을 자기 배 채우려는 진정한 장사치들로부터 간추려 내는데 써야 한다.

  한 정치인이 어떤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그가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척도는 그가 살아온 삶의 행적들이다. 그 행적이란 건 급변화를 타기도 해서 업데이트 된 최신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누가 잘했고, 그가 지금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바로 언론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국민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제때에 잘 전달해줬으면 소원이 없겠다. 가짜 뉴스나 퍼트리면서 여론을 조작하거나 탈정치를 도울 게 아니라면.


 친구가 투표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했다면 누구한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비밀 투표란 것은 국가 권력의 감시로부터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친구와 친구가 정치적인 얘기를 하지 않기 위한 방어막이 아니다. 선거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에 대해서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현재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말하기에는 너무 경직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도 시위를 하고 프랑스에서는 과일 가게 아줌마도 가입된 정당이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에도 정치가 좀 더 곳곳에 들어와 앉았으면 좋겠다.


 정치가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는, 김어준의 말처럼, 어렸을 때부터 투표가 권리가 아닌 의무로 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아직 ‘집단에 대한 의리’가 습관화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구름 위에 떠있는 정치인들을 시장 바닥으로 내려놓고, 그들의 정부와 정책에 대해서 까놓고 얘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 정치인들과 함께 까놓고 얘기할 수 있는 터가 있다면 더 좋고. 


  나는 현 정부를 지지하고,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 민주당이 꼭 이기길 바랬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현 정부에 대한 ‘의리’마저 갖고 있다. (우리 나라처럼 양당 체제의 정당 구조에서, 미래 통합당 같은 도저히 어떤 ‘서생적 문제 의식’을 가지기는 했는지 의심되는 정당이 맞은 편에 있다면 현 정부에 대한 의리를 져버리지 않는 게 합리적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정치는 더불어 민주당이 미래 통합당과 맞붙는 양상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정치는 노동권을, 동물권을, 환경권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정치다. 싸울 만한 상대와 상대가 싸우는 정치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래 통합당은 아니야,라고 말했던 엄마와 몇몇 친구들의 표는 사표가 되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기대했던 내 마음에는 대구는 정말 안되겠다는 지역 혐오가 스멀거린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분노와 실망은 하루면 됐다. 대구와 경상도가 바뀔 때 내가 꿈꾸는 한국 정치도 가능해질 것이다. 

 언젠가 대구에도 다른 색깔이 용인되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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