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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May 04. 2020

있어야 할 자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파킨슨병과 정신 지체를 가진 남성, 마틴의 사례가 소개된다. 마틴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학교를 오래 다니지도 못했고 접시닦는 일로부터도 쫓겨나면서 어렵게 살아 왔지만, 음악에 관해서만큼은 놀라운 기억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유일하게 즐거움을 발견하는 곳은 교회 성가대의 일원으로 노래를 부를 때였다.

  마틴은 의료원에 들어온 이후로 한동안 적응을 하지 못한다. 심술 궂은 행동과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그를 피했다. 초조해진 그는 말했다. "노래를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의료원의 도움으로 마틴은 다시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고, 정열적으로 바흐에 몰두한다. 노래를 하는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올리버 색스에 따르면, '그는 자신감을 되찾고 우뚝 일어나 다시 한 번 진실한 존재가 되었다.' 


 마틴의 사례를 가져와서 내가 꺼내고 싶은 이야기는 '있어야 할 자리'에 관한 것이다. 

 마틴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지만, 바흐를 부르면서 자신의 존재를 직관할 줄 안다.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의미를 음악이 있는 곳에서 찾는다. 그는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즐겁고, 자신의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게 되었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바로 그가 있어야 했던 자리인 것이다.


 유투브 '라이브 아카데미'의 빨간 모자 선생님을 좋아한다. 며칠 전 'Driven'에 대해 말하는 그의 영상을 봤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주어진 환경과 시간에서 정말 열심히 했지만, 그게 만족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저는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았고, 그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고,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게 정말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마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빨간모자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에도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마틴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빨간모자 선생님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어 수업이 그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강의가 좋았던 이유가 어쩌면 그가 멋진 사람이여서 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자기 방식대로 만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끌어내고자 노력하고 그로부터 의미를 발견하는 마음을 가졌다.    


 나의 욕구를 아는 일은 언제나 나의 가장 큰 화두였다.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있어야할 자리가 어디인지 명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누군가 내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누가 누굴 도와? 해나 안 끼치면 다행이지.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하는 본인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가? 이 사람은 어쩌면 자기가 대단히 우열하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인간인지도 몰라. 나는 '돕다'라는 동사에 냉소적이고, 그 단어를 머뭇거리지 않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속이 조금 뒤틀리는 경향이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누굴 돕고 싶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서 다른 이들에게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국종 교수는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세바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다. 

'문제는 중증 외상 환자들 대부분은 노동하시는 분들이 많다고요. 사회적 영향력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분들이요. 이런 분들은 어디서 다치고 길바닥에서 죽어나가도 사회적 여론을 형성할 수 없죠 .'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병실을 잡고자 전화 몇 통을 돌리고 병원 고위 관계자들이 그것에 복종하여 차별을 만들어나갈 때, 아무런 빽도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어디서 다치거나 길바닥에서 죽어나가도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그 현실을 목격할 때마다 그는 '이게 나라냐.'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환자들을 살리는 일을 계속 해야 한다.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그의 동료들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그와 함께하는 한 동료 의사는 일 년에 4번 집으로 퇴근한다), 어떤 힘없는 사람들이 도움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의사들은 안위를 위해서 외면했을지도 모를 일을 그는 외면하지 않았고, 그 일에 자신이 쓰이는 것을 마다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사람 같다.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외면할 수 있는 것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 시니컬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이 살고 있는 의료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세상이 뭐 이런가 싶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고맙고 놀랍다.


 여전히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주 개인적으로 소망하는 인간이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내 맞은 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소망의 경계선은 내 주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기에는 내 이기심이 너무 깊어서다.


  교회 성악대에서 마크가 노래를 부를 때 청중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노래는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실제로 마크가 이것을 인식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노래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래서 그가 노래와 함께 살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빨간 모자 선생님은 자신의 강의가 다른 이들에게 쓸모있게 쓰이는 일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소중히 여긴다. 

 이국종 교수에게 '있어야할 자리'란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쏟는 자리다. 조금 더 어렸다면 '이국종 교수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식으로 내 심정을 마무리 지어도 별 탈이 없었을 텐데. 지금은 그를 닮고 싶다는 말을 할 염치가 없다. 다만 그가 하는 일, 그 일에 대한 그의 태도와 마음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 따름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시작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는 일이 나 자신만을 즐겁게 해준다면 그것의 의미 또한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위하여 내가 잘 쓰이는 것에 있지 않을까. 내가 잘 쓰여서 내가 만들어낸 해(害)를 조금 차감할 수 있다면.    

개인적인 소망이 개인만을 기쁘게 한다면 그것은 부드럽고 공허할 것이다. 개인적인 소망에서 시작된 일이라도 맞은 편에 있는 상대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을 때, 그것은 공허하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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