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ren Nov 03. 2020

판단하는 자

 70만원짜리 셔츠를 일상적으로 입고 사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서 돈을 아주 많이 벌어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톡 페이스 채팅창 너머에 있는 친구가 진지했기 때문에 나도 진심을 담아 네가 꼭 그런 셔츠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에 딱 맞게 입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그의 부유할 디데이를 바라는 내 마음은 진심이였다. 전날 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다 읽었기 때문이였다.  '우주적 눈깔을 끼고 인간 세상을 들여다볼 때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얼마나 옳을까. 그들이 틀렸다고 말할 때 그건 얼마나 틀린 걸까.' 코스모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이런 클리셰적인 생각에 빠졌다.

     

 새로운 동료와 일을 시작했다.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난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넌 뭘 잘하고 싶어? 그녀는 한참 생각하더니, fit해지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간 탄력있는 몸, 그게 바로 그녀가 잘하고 싶은 거였다. 코스모스 덕분이였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네가 잘하고 싶은 거라면 그런 거지. 나는 내 몸을 한 번 쳐다보고 그 애의 몸을 한 번 스캔했다. 그리고 말했다. 근데 있잖아, 너 충분히 (나보다) 핏해보여. 에린은 고개를 저었다. 닭가슴살과 채소를 먹으면서 운동을 더하는 체계적인 루트를 밟지 못하는 자신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슨 말하는지 알지. 나도 요즘 체계적인 루트를 찾고 있으니까.

 그녀는 배우 일을 계속하고 싶어했다. 한 때 아이돌 연습생이였고 극단에서 일했던 그녀에게 외적인 아름다움이란 내게 있어 잘 짜여진 글의 문단 같은 것 아닐까. 내가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위안을 얻을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폴댄스를 추고 있는 자신을 확인하면서 기쁨을 얻는다. 우리는 우리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방법은 무한 개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은근하게 되묻곤 했다. 돈이 다가 아니지 않냐고. 

 다이어트에 사활은 건 여자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싫어서 좀 더 예뻐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넌 지금도 너무 예뻐. 근데 아무리 네가 예뻐도 예쁜 게 다는 아니잖아?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잘하는 여자들이 훨씬 매력적이지 않아? 그녀들에게 샌님같은 조언을 했더랬다.   

 책을 많이 읽고 싶고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 내가 아주 떳떳하게 말할 때 아무도 내게 책이 다가 아니지 않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친구와 예뻐져야겠다는 친구를 훈계하려고 했을까. 


 정말 코스모스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기는 생각의 변화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가치 판단을 내리고 싶지 않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게 과연 언제까지나 옳을까, 옳아봤자 얼만큼 옳을까 싶다. 옳은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싶다. 무엇보다 내가 믿는 가치의 우월함을 뽐내고 싶은 내 안의 얄팍한 마음이 가소롭고 쪽팔린다. 


 그가 70만원짜리 셔츠를 입는다고 내가 거기 베이는 것도 아니고, 그녀에게 fit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내가 함께 뛰고 굶어야하는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굳이 나의 좋음과 옮음을 설파할 필요가 있나. 나한테 그래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게 옳다고 믿어지는 것을 할 뿐이고 내가 아닌 타자들은 그들 각자의 좋음과 옳음을 추구할 뿐이다. 내가 일으키는 먼지와 소음이 그의 그것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여도 좋겠다. 


Everything must be equal in your eyes, good and evil, beautiful and ugly, foolish and wise..

                                                                                               <Neverending story by Michael Ende>

 옳고 그른 것, 선하고 나쁜 것, 멍청하고 똑똑한 것, 아름답고 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능력을 갖고 싶다. 물론 그것이 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글 안 써도 밥만 잘 먹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