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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May 01. 2021

가난1

픽션

  바닥에 떡하니 놓여 있는 매트리스가 먼저 보였다. 옷장 하나, 비닐이 벗겨지지 않은 흰 테이블과 흰 의자가 하나씩 있었다. 하나인 사물들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매트리스가 싱글 사이즈가 아니라는 데에 위안을 얻어야 했을까.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녹슬어서 얼룩덜룩한 변기 이음새가 눈에 띄었다. 쓰레기통에는 흰 휴지 뭉텅이들이 뭉게지고 펼쳐진 채 버려져 있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내가 지낼 곳이다.

 밖은 3월인데 원룸은 해를 비켜선 곳에 있다. 창너머에 노란 빛줄기가 정비소의 파란 간판을 비추는 게 보인다. 발바닥에서부터 한기가 올라온다. 신을 만한 슬리퍼를 찾아보려고 잠깐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슬리퍼라니, 이내 사치스러운 생각이란 걸 깨달았다. 슬라이드문 너머가 주방일 것이다.

 문을 밀어내자마자 냉장고와 그 옆에 나란히 자리한 세탁기가 있다. 맞은 편에는 2개 짜리 화구의 가스레인지가 있다. '가스밸브를 잠그시오.' 노란 포스트잍이 가스 밸브 아래에 붙어 있다. 도마를 올려둘 수 있는 공간도 없구나. 내가 챙겨온 시즈닝들의 쓸모없음은 물론이고 식사나 요리라는 단어도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다. 두 사람이 들어서면 꽉 찰만큼 비좁은 슬라이드문 안의 세상은 있는 그대로 조잡하다. 초록색 비닐 봉투에 쌓여 있는 홍삼즙, 취사 버튼에서 '-ㅏ'만 살아남아 40시간째 밥을 품고 있는 압력 밥솥, 작동한다는 게 무서울 정도로 녹슨 믹서기 같은 걸 발견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바닥에는 라면 알갱이들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스러기들이 흩어져 굴러 다닌다.


 '최악의 숙소 탐험 쿠폰' 같은 것이 있다고 해보자. 커피 열 잔을 마시면 한 잔을 공짜로 주는 커피 쿠폰처럼 거지같은 숙소 열 곳에서 살아남았을 때 공짜 숙소 하나를 제공해주는 쿠폰 같은 것 말이다. 나와 그는 그런 쿠폰에 열 번 도장을 찍고 공짜 숙소를 얻어 즐길 자격이 충분할 만큼 가난하고 악착 같은 여행 동지였다. 쥐 두마리가 밤새 찍찍거렸던 농장 숙소에서 코를 골며 잠든 적 있고, 덥고 습하기로 유명한 방콕에서는 창문없는 백팩커에서 먼지낀 선풍기팬의 소음을 들이 마시며 하룻밤을 견뎌냈다. 로드 트립 중에는 자갈밭 위에 텐트를 치고 등이 베겨도, 때마침 폭우가 내려서 몸이 젖고 턱이 떨려와도 견뎌냈다. 16인실 백팩커에서 이웃 남자와 여자가 옷을 벗고 숨을 헐떡여도 우리에겐 평정을 잃지 않은 채 다시 잠들 수 있는 무심함이 있었다.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친구는 왜 그렇게 사냐고 물었고, 우리 둘은 최악을 갱신해 나가면서 다음 번엔 좋은 곳에서 한 번 살아보자고 약속했었다. 좋은 곳은 어딜까.

 

 언젠가 그가 내가 사는 곳에 왔을 때 나는 하룻밤 칠만원짜리 모텔에서 그를 맞았다.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욕조와 두툼하고 푹신한 침대를 마주했을 때 우리 둘은 감탄했다. 잘 놀라지 않는 그가 우와,하고 눈을 크게 떴던 게 기억난다. 이런 부르주아적인 곳에서 잠드는 건 조금 어색한 일이라면서 두 사람은 침대 위에서 컵라면을 나눠 먹었고 널찍한 욕조(바닥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욕조였다!)에서 물섹스를 했다. 나와 그는 깨끗하고 따뜻한 공간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았다.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게는 잠깐의 사치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법이다. 누가 가난해서 좋은 점을 말해보라면 이 점을 말해줘야지. 더 찾기는 힘들다.


 칠만원짜리 모텔은 예외적인 행사였고 보통의 우리는 싼 공간과 실용적인 물건들 옆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부류다. 북킹 닷컴에서 숙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언제나 가격이였고, 한 명이 조금이라도 사치를 부리려고 들면(6인실 말고 4인실은 어때?) 다른 한 명이 예의바르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종용했다. 집을 렌트하는 계약서를 쓸 때마다 곧바로 룸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올렸고, 매번 바뀌는 룸메이트들과 함께 렌트비를 절약하면서 살았다. 우리 둘이서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 번은 그가 다른 한 번은 내가 조용히 한 마디 꺼내볼 뿐 둘 다 금세 형편을 고려할 줄 알았기 때문에 룸메이트들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자고 다짐했다. 우박이 떨어지거나 천둥 번개가 치는 날에는 이렇게 살 집이라도 있는 건 정말 운 좋은 일이라고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은 진정 그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이였다. 좋은 곳은 저 멀리 있었지만 우리 두 사람은 그 거리감에 슬프기보다는 꿋꿋했고 잘 버텨낸다는 것에 자부심까지 있었던 것 같다. 좋은 곳이 어디에 있든 그가 내 옆에 있기만 하면 여기 머무르면서 맛볼 수 있는 좋은 것들에 애정을 쏟고 싶었다. 나는 그랬다.


 가난한 남자와 사는 방법에 대한 책을 써봐도 좋을 것 같다. 읽을 여자는 없겠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나도 항상 가난해왔기 때문에 나는 우리 둘을 공평하게 가난이라는 테두리 속에 묶어둘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위안을 얻었다. 우리는 세상의 값비싼 거품들에 한 때 분개했고 대부분 심드렁해하며 5불짜리 파인트 맥주 한 잔을 나눠 마셨다. 내 기억이 믿을 만하다면 우리 둘은 곧잘 웃음을 흘리는 생활 속에 살았다.

 이런 책 제목은 어떨까. 가난한 여자로 사는 방법. 여전히 읽을 여자는 없겠지만.

 돈이 많아서 부릴 수 있는 사치에 마음이 쓰인 적이 드물었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재수없어 한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명품 가방에 집착하거나 돈 많은 남자를 물색하는 그들이 멍청해 보였었는데, 이젠 그런 것들에 판단을 덧붙이는 일에도 무덤덤해졌다. 돈을 쫒는 편리함이 개개인들의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게으름 때문은 아니고, 거품 가득한 세상에서 오히려 한 줌의 거품도 받아먹지 않겠다는 쪽이 이상한 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남자라면 나처럼 정신적인 사치가 심한 쪽에 공들이는 게 명품을 눈여겨 보는 여자 편에 돈쓰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조금 더 피곤해지는 일은 감수해야 할테지만 일단 돈은 안 드니까.

 

 문제는 정신적인 사치가 지켜지기 위해서도 때때로 돈이 필요한데, 백만원이 안되는 돈을 벌며 지난달 전기세가 3만원이 나와서 좀 더 아껴야 한다고 말하는 남자의 원룸에서는 내 욕구가 불만인 상태에 자주 놓이고 만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전기세를 아껴야 해서 보일러가 항시 '예약'에 맞춰져 있어야 하는 곳에서는 추운 공기에 목이 부은 채로 눈을 떠야 한다. 타자기를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이 봄에도, 나는 겨울 파카를 입고 있는데 두툼한 소매 부분을 팔꿈치까지 걷어올려야지만 자판기를 두드리는 일에 자유로울 수 있다. 그는 쓰레기봉투를 아끼자는 명목하에 냄새나는 쓰레기도 함부러 갖다버리지 않는다. 주방 문을 열면 엊그제 먹은 카레 냄새가 쓰레기통에서 올라와 공간을 점령해있다. 봉투가 가득 찼다고 말하자 그는 소매를 한 번 걷더니 2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10리터짜리를 사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싫었던 건 바닥이 다 뜯겨진 밥솥에 밥을 해먹는 일이였다. 밥을 짓는 걸 보면 아직은 멀쩡한 밥솥이라고 그가 말했고 나는 밥을 먹을 때마다 밥알 사이에 이물질이 낀 건 아닌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봤다.

 집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식의 억지 긍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던 그가 내 소중한 프렌치 프레스를 박살냈다. 모닝 재즈를 틀어놓고 프렌치 프레스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아침 루틴은 척박한 이곳 생활에서의 내 정신적 보루였다. 그가 미안해하며 새 것을 하나 사주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깨져버린 건 되돌릴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사랑의 마법이 효력을 다했을 때 내가 속한 현실이 활활 되살아나서 나는 그 열기에 데일 것만 같았다.


 그가 살고 있는 이곳과 이곳에 살고 있는 그에게는 여유가 없고 가난만 있다. 나 또한 이 둘을 참아낼 수 있는 여유를 불러내지 못한 채 가난한 사람이 되어간다. 변한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최악의 숙소 모음집 같은 책을 한 권 내고 싶을 정도로 여전히 나는 불편함에 자발적일 수 있단 말이다. 나는 최악을 마주하고도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였고 내 자신이 여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명심하기 위해서 가슴 깊이 심호흡 중인 사람이라고. 변한 것은 뭘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똑같이 가난한데 더 이상 똑같이 사랑하지 않는 게 문제일까. 사랑할 수 없게 가난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빠는 술에 취할 때마다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물론 그 대상이 엄마일 리는 없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내 손을 잡고 내 눈에 대고 말했다. 물질적으로 충분히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사실 그가 내게 주지 못한 것은 정신적인 안락함 뿐이였다. 그의 술주정이 지겨움을 건너 분노를 자아낼 때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악을 쓰며 대들었다. 내가 울었다면 그건 돈 때문에 운 게 아니라 당신의 폭력 때문에 울었던 거야! 

 좀 더 가난해도 다정한 부모 아래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었다.

 그러나 요즘 나는 정말 궁금하다. 만약에 내 아버지가 엄마를 때릴 줄 모르고 잘 웃어주고 욕을 할 줄 모르는 다정한 사람인 대가로 아주 가난하고 말았을 때,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겪어보지 않은 일은 상상하여 생각해볼 수 밖에 없고, 상상 속의 나란 인간을 현실의 그것보다 선하게 그리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현실의 나는 아주 폭력적인 아버지를 혐오했던 것만큼이나 아주 가난한 아버지도 최대한 멀리 밀어낼 것 같다. 가난이 폭력과 잘 어울려 다니는 일을 목격했고, 폭력이 아니더라도 내가 멀리하고 싶은 여러 장면들에서 가난은 주춧돌처럼 서 있었다. 나는 아빠가 조금 더 가난했더라면 조금 더 자주 엄마를 때렸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남자친구에게 돌아온 이유는 그의 몇마디 말 때문이였다. 그는 술에 취해서 너없이는 못살겠다고 말했다. 술 취한 인간들의 말은 믿을 게 못된다는 걸 알면서 모른척 그에게 왔다.  

 그는 나를 때릴 줄 모르고 큰소리를 내지르지 않는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딸들은 남자를 고를 때 까다로울 수 없는 법이다.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몇 가지 주의 사항만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는 남자라면 나같은 여자애는 냅다 따먹고 내다버릴 수 있다. 그는 그러지 않았고,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었다. 만약에 내 아버지가 '아주' 가난한 아버지여서 내가 물질적 궁핍에 대한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가졌었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가난한 남자는 피해갔을 텐데, 그럼 이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뭐든 그런 식이다.

 그의 취중진담은 두 시간동안 이어졌다. 그는 나없이는 못살겠다는 말 다음으로 가진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진부하고 지루한 술주정이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그가 귀여워 보였는데. '나도 없는데, 뭘. 우리 둘 다 없으니까 괜찮아.'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가 가진 게 없다는 말은 팩트였고-그의 원룸에는 숟가락과 젓가락 마저 하나 뿐이였다- 내 대답은 좀 착각이였나보다. 괜찮지가 않다.

 

 이불에서는 퀘퀘한 냄새가 나고 그의 날숨에서는 고기 냄새가 난다. 오늘 술자리에서는 무슨 고기를 먹었을까. 이불 빨래를 언제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자고 있는 그를 깨워서 냄새가 난다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의 원룸에 도착한 첫 날부터 많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참아낼 수 있었던 건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이다. 화장실 대청소를 하고 나니까 녹슨 이음새가 그다지 마음에 걸리지 않았고 밥솥을 바꾸고 나자 밥알이 안전하고 맛있게 느껴지는 식으로 나는 이곳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이불까지 빨고 나면 상쾌한 기분 덕에 이 작은 공간이 내 집이라는 것을 더 잘 인식할 수 있을 것이였다.

 근데 이 남자에게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그가 내 프렌치 프레스를 깨버린 시점부터였을까. 나는 우리 사이가 계속해서 어긋날 것임을, 부서져가는 무엇을 회복시킬 힘이 우리 두 사람에게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를 쳐다보는 내 눈은 몇달 동안 쌓여버린 물음표들로 인해 포화 상태고,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은 차가운 회색이다. 내가 아닌 다른 걸 쳐다볼 때도 그는 정신의 반쯤을 다른 곳에 두고 온 사람처럼 흐릿한 눈알을 뻐끔거린다. 그런 사람이 내 몸을 더듬을 때 나는 그가 원하는 사람이 굳이 내가 아니라 아무 여자라도 상관없을 거란 사실을 눈치채고 소름이 돋는다.  


 그는 지금이 힘든 시기일 뿐이라고 나를 설득해왔고 나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질문들을 삼켜왔다.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돈 많은 부모를 만나 남 밑에서 일하지 않을 자유? 매일 밤 불행을 달고오는 너라도 기꺼이 포용할 줄 아는 이해심 가득한 여자친구? 주식에 잿팟이 터져서 돈걱정없이 먹고 놀 수 있을 미래?

 사업을 시작하면서 빚 안지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면서 그는 어마어마한 돈을 대출받았다. 술자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면서 하루 걸러 하루씩으로 술에 취에 집에 돌아왔다. 술 덕에 피식하고 웃을 때가 있었지만,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그는 갖은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속이 많이 아프냐고 물으면 선심쓰듯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삼갔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할까봐, 혹여나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수다 떠는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두려운 얼굴로 허겁저겁 식사를 마쳤다. 갈게,하고 집을 떠났다.  

 그는 우리가 더 이상 히피처럼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한 번도 히피처럼 살아보지 못했는데 그는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돈이 없는 이유는 주식을 할 줄 모르고 투자란 게 뭔지도 몰라서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stage 2에 들어설 때가 되었고, 그 말인즉 판을 벌려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겪는 불행이란 잠깐 스쳐지나갈 작은 대가라고 말이다.

 우리라니. 나는 스테이지 투에 들어서서 돈을 한 번 벌어보자고 생각해본 적 없고 지금 겪는 불행이 잠깐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뇌가 고장났다고 생각했고 그는 내가 세상 물정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탁기 안에 이불을 집어넣고 세재를 넣었다. 그는 이불에서 냄새가 난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일자리를 지원했지만 하나같이 1년 이상 근무를 요구하는 바람에 나는 실컷 인터뷰를 하고 나서 까이는 일을에 시달리던 중이였다. 잦은 거절 당함에 지쳤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대신 청소와 빨래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불과 이불 빨래를 열심히 하고 싶은 나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곳에서 지낸지 두 달이 지나갈 무렵 나는 솟아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전화했다. 너 행복하지 않지 않아? 행복까지 가지도 말자. 지금 충분히 불행하지 않아? 꼭 이렇게 살아야 겠어? 뭘 위해? 두 달 전에는 나 없이 못살겠다던 사람이 이번에는 나 때문에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내게 사람을 살렸다가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견디기 힘든 것이 돈 없는 생활인지, 웃을 형편이 되지 못하는 그인지, 돈이 없는 가난과 정신이 없는 가난은 정말 별개의 것인지, 헷갈렸다. 세탁기의 동작 버튼을 누르는 대신 내 케리어 가방을 찾아 열고 눈에 보이는 내 옷가지들을 집어서 가방에 던져 넣었다. 누군가의 숨을 막는 존재가 되는 것은 슬픈 일이라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지만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사람 옆에서 그를 쳐다보는 일은 희망을 죽이는 일이라서 나는 그를 떠나기로 했다. 원룸은 괜찮을 것이다. 원래부터 싱글 사이즈였으니까. 그도 괜찮을 것이다. 우리가 쪼개어 원래대로 '너'와 '나'로 되돌아갈 시간이 찾아온 것 뿐이니까.


 돈이 없어서 살게 되는 가난은 더럽지만 적응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믿었다. 웃음과 시간이 함께 사라지는 가난함에서야말로 질식하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두 가난은 정녕 별개인가. 칼로 잘라 나눠지는 것들인가.

 

 돈이 많아야지만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주의적 오류라면, 돈이 없어도 마음은 부자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도덕주의적 오류다.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은 더 이상 불쾌감을 자아내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의 끝장을 맛보라고 진심으로 기도해주고 싶다. 나는 그가 그의 몫의 행복을 어서 찾길 바란다.


 반면에 돈이 좀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할 때 나는 옹졸해져서 그 사람과 다투고 싶다. 네가 정말 돈이 좀 없어 봤냐고, 어디까지 얼마나 없어봤냐고 따지고 싶다. 밥벌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신경쓸 수 있는 일은 밥법이 뿐이다. 통장에 남은 잔고를 확인해가며 면접을 보러 다니고 거절을 당하고 다시 이력서를 뽑고 다른 사장님들을 만나러 다녀야 한다. 하루가 끝날 때쯤엔 내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깊이 좌절하지 않도록 마음 상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줘야 한다.(최근에 이별까지 겪었다면 더 세심한 주의를!) 미얀마의 민주화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거나 플라스틱 사용을 더 줄여야 한다고 다짐하는 일 같은 건 통장에 잔액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의 신체에 끼어들기를 포기하고 튕겨져 나간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힘이 그에겐 없다. 턱걸이 하나를 가까스로 해내는 형편으로 밥벌이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충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저시급 8750원을 받고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해야지 먹고 사는 일과 더불어 감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예술적 욕망이 위로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전에 지원했던 일자리 여기저기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어떤 사장들은 친절했고 어떤 사장들은 치졸했다. 나도 이번에는 거짓말을 좀 했다. '그럼요, 1년 이상은 일해야죠.'(말도 안 된다. 1년이고 2년이고 내가 그토록 오래 일하고 싶은 곳이라면 자발적으로 일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1년 이상 일할 수 있는 사람만 고용될 수 있다는 법이 있나?) 시간제 대신 월급제로 계산하자며 최저 시급을 지키지 않으려는 사장, 9시간 서서 일하는데 쉬는 시간은 요령껏 가지라고 말하는 사장, 밥 먹는 시간은 따로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장들이 있었다. 그도 사장이 되고 나면 그렇고 그런 인간이 될까. 웃으면서 교모한 꼼수를 떠드는 그렇고 그런 인간.   


 내 거짓말은 잘 먹혀서 나는 일을 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거짓말을 할 걸 그랬다. 시간이 가고 일상은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중이다. 한 인간은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점차 잊고 먹고 사는 일 속에서 화석이 되어간다. 가난하지 않은 인간도 먹고 사는 바쁨 속에서 정형화되기 쉽지만, 가난한 인간은 가난의 최후 방어선에 너무 가까이 있고,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고자 바삐 걷고 뛰다가 드디어 숨쉴 틈을 되찾았을 때쯤에는 유튜브의 알고리즘 속에서 한나절 웃다가 나머지 한나절에는 자기 경멸감에 휩싸이는 루틴을 반복한다. 경멸마저 견디기 힘들 때는 표정 없는 시간으로 기어들어가야겠지.


 나는 가난한 여행 동지를 잃었고 우리는 결국 함께 좋은 곳에 가지 못했다.

 가난한 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까. 가난한 나는 빼앗긴 사랑과 사랑으로 쓰인 예술을 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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