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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un 14. 2021

비건과 고기 애호가는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5년 전 나는 치킨 닭다리를 뜯어먹다가 베지터리안이 되기로 결심했다.(여기서 베지터리안은 육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내일부터 모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테이블 위에다 뼈다귀를 내리꽂으며 선언했을 때, 남자 친구는 듣는 둥 마는 둥이였다.

-내가 고기를 안 먹겠다니까?

-언제까지 안 먹게?


 한 달 동안 고기를 안 먹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챌린지 비슷한 걸 하는 중이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고, 남자 친구가 맥도널드에서 빅맥세트를 먹을 감자튀김을 뺏어먹으면 됐다.

 고기를 안 먹은 지 3주째가 됐을 때 나는 남자 친구에게 새로운 다짐을 선언했다.

-이번에는 3개월이야.

 무언가 영원히 해낼 자신이 없을 때 기한을 정하는 방법은 효과가 탁월하다. (그를 영원히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남몰래 기한을 정해두는 건, 그걸 아주 여러 번 깨다가 왠지 그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건, 내 오랜 내적 습관 중에 하나다.)

 

 3개월 동안 고기 안 먹기 도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갈 즈음, 다음 목표는 6개월이 됐고, 어느 순간 내게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은 더 이상 도전 과제가 아니게 되었다. 어? 하고 달력을 확인했을 때 1년 가까이 고기를 안 먹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회사 생활을 했던 것도 아니고 만날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지지고 볶아가며 상대해야 했던 사람은 같이 사는 남자 친구였는데, 내가 어려움 없이 베지테리안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던 남자 친구 덕도 컸던 것 같다. 그는 '너 정말 고기를 안 먹는구나?' 하고 가끔씩 잠깐 놀랄 뿐, 나를 격려해주지도 회유하지도 않았다.


 베지테리언이 되고 얼마 안가 뉴질랜드에 갔다. 그곳에서 비건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베지테리언에게 비건은 아마추어 작가에게 전문 작가? 와 같은 포스를 풍긴다. 생선이랑 계란까지 안 먹으면 단백질은 어디서 얻냐는 내 염려스러운 질문에 비건 룸메가 나를 쏘아보며 대답했다.

-현미밥 한 그릇이랑 브로콜리 한 움큼만 먹어도 하루 네게 필요한 단백질은 충분해. 단백질에 관해서라면 사람들이 과도하는 집착하는 게 문제야.

 나는 그 애가 잘난 척하는 게 꼴 보기 싫었으면서도 비건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거나 비건 서적들을 뒤적거리게 됐다.

  

 비건이 되는 일은 베지테리언보다 힘든 일이었다. 베지테리언이 되는 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그것을 먹지 않는 일이었다면, 비건이 되는 것은 내게서 먹는 즐거움을 앗아가 버렸다. 내가 살던 백패커 바로 맞은편 초밥 집에서 화요일마다 하는 '연어초밥 한 팩 7불' 세일을 참아내야 했고, 4시 반 이후로 남은 초밥을 반값에 해치우는 초밥집에 가는 기쁨도 누릴 수 없었다. 진한 에스프레소에다 고소한 흰 우유를 데워 마시는 라테의 달콤함을 빼앗겼고,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마요네즈 계란 샌드위치도 끊어내야 했다. 요리를 할 줄 모르고 어떤 음식을 비건이라고 라벨링 할 수 있는지 몰랐던 내가 슈퍼마켓에서 집어 들었던 음식은 통조림 콩이였고, 나는 내리 3일째 통조림 콩을 퍼먹다가 콩에게 shit이라고 욕을 했다. 통조림을 갖다 버리고 초밥집으로 달려가는 일을 두 어번 반복하면서 비건은 못해먹겠다고 생각했다.


 연어초밥의 성지였던 오클랜드를 떠나 캘거리에 도착해서 이 때다 싶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조금만 걷다 보면 마주했던 초밥집이 캘거리에서는 드물었다. 먹어보니 맛도 없었다. 새로운 거처에서 다시 한번 더 비건 챌린지를 시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통조림 콩만 먹을 수는 없어서 요리를 시작했다. 취업 비자를 받기 전까지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넘쳐나는 게 시간이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비건 요리를 하나씩 배워갔다. 가지로 만드는 비건 라자냐, 두부로 만드는 스프레드, 후무스, 병아리콩으로 만드는 너겟, 스타 아니쉬랑 통후추 같은 향신료를 가득 넣어 만드는 비건 포. 주방은 항상 어지러웠고 내가 사들이는 조미료들은 끝이 없었다. 뉴트리셔널 이스트, 메이플 시럽, 시나몬 파우더, 파프리카 파우더, 카레 파우더, 큐민, 강황, 드라이 허브들. 요리 이 꼴 오트밀 죽 끓이기였던 내게 오븐을 사용하고 반죽하고 소스를 뿌리는 일련의 행위들은 이상한 충족감을 일으켰다. 내가 잘 모르는 향신료들을 마주하고 향을 맡고 계랑스푼을 써서 냄비 속에다가 털어 넣을 때, 그래서 음식에서 맛있는 맛이 날 때의 기쁨은 짜릿했다. 내 손에서 이런 음식이 탄생하다니. 특히 나는 비건 요리의 창의성에 빠져들었다. 레드 펩퍼로 참치 초밥을, 캐슈로 치즈 케이크를, 검은콩으로 햄버거 패티를, 버섯으로 오징어 튀김을, 두부로 치킨을, (내가 계속 나열하게 내버려 둔다면 당장 스무 가지도 더 말할 수 있다. 정말이다. ) 만들어 먹었다. 비건은 더 이상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마이너스적 개념이 아니라, 생각해보지 못한 재료로 창의적인 요리가 완성되고 그에 따라 내 안에서 만족감이 더해지는 플러스의 경험이 되어갔다. 내가 만약 요리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비건은 내게 악몽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혹은 그려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음식들을 만들면서 비건이란 내게 새로움, 창의성, 이상적인 대안, 지속성, 특별함이 되었다. 나는 비건의 세계에 매혹당했다.

  

  나의 기쁨을 남자 친구와 공유할 수는 없었다. 내가 비건이 된 것은 그에게는 상실의 경험이었다. 그는 도미노 피자를 나눠 먹을 사람을, 초밥 뷔페에 함께 갈 사람을 잃었다. 또한 그것은 그가 싫어하는 큐민과 고수를 식탁 위에서 자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는 내가 비건이 된 사실 자체뿐만 아니라 비건인 내가 식탁 위에 내놓는 음식들을 앞에 두고도 자주 실망했던 것 같다. 그가 직접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내 놓는 일은 없었지만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삼켜먹을 때 짓는 그의 입술 모양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요리하는 사람은 나였고 나는 절대 누군가를 실망시키기 위해서 요리했던 것이 아니므로. 내가 만든 비건 요리들은 나에게는 새로운 남자 친구처럼 흥분을 가져다줬지만, 내 진짜 남자 친구에게는 잦은 외식 습관을 갖게 했다.


 그가 비건 음식을 즐길 수 없었던 데에는 내 요리가 맛이 없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음식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것들과 관계 맺기에 있어 시간을 두고 조금씩만 문을 열어주는 까다로운 인물이고, 음식에 관해서는 그 까다로움이 증폭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행을 가서도 지역의 새로운 음식들을 한 번은 먹어보지만 좋아하는 경우는 드물다. 얼마 안 가 자기는 한국 음식점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까지 와서 한국 음식을 먹고 싶냐고 내가 뾰로통해하면 맞는 말이라면서 한 번쯤 더 로컬 푸드를 시도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장에서 거부한다. 그의 장마저도 보수적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이런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오래도록 해외 생활을 한 사람들에게는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가 강하다. 요즘은 어딜 가나 한인 식당도 많고 한국 식품이 즐비한 슈퍼마켓도 많지만, 해외에서 먹는 한국 음식과 한국에 와서 먹는 엄마 음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남자 친구의 향수는 비가 오는 날 심해지는데, 날이 흐리고 기분도 처연해지면 끝내주는 국밥을 먹고 싶다거나, 소주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싶다거나,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토로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은 고기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는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고기 듬뿍 한국 음식을 생각하면서 입맛을 다진다.

 그러나 그가 비건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근육을 만드는데 그의 열정은 남다르다. 그는 오래도록 근육을 위해서라면 동물성 단백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의 강박은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다큐멘터리, 'Game Changer'를 보고 나서야 얼마쯤 해소됐지만,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이 한 사람의 식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었다.

 식이에 관해서라면 너무 많은 미디어가 너무 다른 이야기를 쏟아내서 우리는 도대체 뭐가 옳은 얘기인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내가 비건이라고 말하면 각종 다이어트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싸우고 싶어 한다. '비건은 틀렸어요, 내 얘길 듣고 당신도 비건을 때려치워야 해요.' 이런 소모성의 싸움을 피하려면 각자는 각자가 믿는 것을 따를 뿐 상대가 믿는 것에 흠집을 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하겠지만, 현실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기 옳음을 증명해야 할 강한 충동이 있고, 나의 옳음이 옳기 위해서 상대의 옳음에 흠집을 내야만 숨통이 트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였다. '영학아, 고기는 제발 때려치워, 고기를 먹는 건 틀렸어.'

 이렇게 말할 때 그걸 들어먹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인간은 그것을 더욱 강력하게 원하게 된다.

 

 나는 남자 친구와 게임 체인저뿐만 아니라, What the health, Earthlings, 옥자, forks over knives와 같은 다큐멘터리들을 봤다. 그가 원하지 않았을 때도 나는 그에게 그러한 영상들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들을 볼 때마다 그는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그건 얼마 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비건의 세계로 '인도' 하는데 실패했다.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천국에 같이 가자고 설득하는 부류는 아니다. 나랑 같이 사는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사람이 나랑 같은 가치를 공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였다고, 하소연하고 싶다.


 나는 실패했지만, 되돌아보면 그는 내가 비건으로 살아가는 일을 성공시켜왔다.


 밖에서 얼마나 많은 육식을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집에 고기를 사다 놓는 일은 없었다. 그는 도미노에서 피자와 치킨 윙을 시켜먹는 걸 좋아했는데, 드물게 내 이해심이 큰 날엔 아무렴 그는 그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비건 정체성이 강한 날에는 그것이 불쾌해서 꼭 윙을 먹어야 냐고 그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면 그는 고개를 숙이는 제스처를 취해줬다. 이제 그는 피자를 시켜 먹고 싶을 때면 비건 피자를 시켜 먹을까?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넌지시 던진다.

내가 점심으로 뭘 먹었냐고 물으면 그는 꾀돌이가 돼서 고기를 먹었다는 말은 잘하지 않는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고도 뭘 좀 먹고 있다고 우물쭈물 대답하고 마는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제는 비건 음식을 만드는 일에 숙달이 됐고 하다 보면 모든 건 나아져서 내 요리가 일취월장한 탓도 있지만 남자 친구는 예전보다 조금 덜 싫은 입을 하고서 비건 음식을 먹어준다. 내가 만든 음식 앞에서 고맙다는 말을 까먹는 일도 드물어졌다. 여행에 가서도 한국음식을 찾던 그가 이제는 비건 식당을 구글링 해주고, 진라면 팬인 그가 맛있는 라면(비건 라면)을 끓여먹는다.


 나는 그의 배려들을 배려인 줄 모르고 오래도록 지냈다. 내가 당당하게 비건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 때문이겠지만, 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 사람이 그 가치들을 이렇게까지 포용해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의 내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뒤늦은 생각이 든다. 그의 존재는 내가 내 목소리를 마음껏 내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가지지 않을 수 있게 만드는 지지대다. 그와 함께 생활을 나눠가진 이후로 나는 많은 선택에서 자유롭고 당당한 인간이 되어왔다.

  

 나는 비건을 선택했다. 시작은 너무나 개인적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소극적인 보이콧이기도 하고, 발 불일 곳 없는 내 영혼이 속하고 싶은 하나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이제 그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개와 고양이가 좋아져 버렸고, 그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동물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도저히 내 입으로 가져갈 수 없는, 씹어낼 수 없는, 삼켜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먹지 않는다. 내 선택은 사람들에게 해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욕먹을 필요도 없고 마찬가지로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근데 딱 한 사람, 나랑 지금까지 같이 살아내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오래도록 같이 살면 좋을 이 사람의 지지가 없었더라면 나는 비건을 끝장내거나 그와 끝장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협의점을 찾아내는 현명함 대신 양극단을 오가는 나란 인간 옆에서 남자 친구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균형을 잡아줬다. 그가 나와 함께 시소를 타 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되는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몇 달은 그런 척할 수 있고, 배려하는 척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상대를, 상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마찬가지로 귀하게 여겨주는 배려는 흔히 발견하기 어렵다. 나는 그런 배려를 받는 행운을 누렸고 어떤 식으로 되갚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이기적으로 구는 날들이 많다.

 

 그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어? 나 비건 치킨 봤는데, 우리 그거 사 먹을까?

-그러자.

  내가 어느 때처럼 이기적으로 비건을 내세웠는데 그가 어느 때처럼 시큰둥하게 대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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