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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Aug 05. 2021

엄마 책 읽자

쓰레기를 쓰자 2

 엄마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을 줄 알고 고상할 줄도 아는 엄마를 가지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엄마가 쉰을 넘긴 시점에서 나머지 남은 시간 동안만큼은 엄마 자신을 위한 의미를 건져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엄마는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열다섯 살 때 학교를 그만뒀다. 공부하는 건 싫고 돈을 벌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외갓집은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 있는데, 그런 시골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여섯 자식을 키워냈던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자식 하나 집 떠나는 건 그리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엄마는 진보보다는 대구가 더 크고 나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고향을 떠났다. 

 엄마가 최초로 일을 시작했던 곳은 섬유 공장이었다. 기숙사가 주어졌고 밥이 나오는 게 좋았다고 했다. 대구라는 큰 도시가 엄마에게 익숙해져 갈 즈음에 시내에서 한정식 식당을 크게 운영하던 사촌 언니가 자기네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해도 좋다는 제안을 했다. 공장보다는 식당이 나을 것 같아서, 모르는 사장보다야 사촌 언니가 사장인 경우가 마음 편할 테니까 엄마는 미련 없이 직장을 교체했다. 서빙 일이 지겨워질 때 즈음에 엄마는 미용 기술을 배웠다. 손이 재빨랐던 덕에 손님들 얼굴을 두드리고 리프팅하는데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누구보다 본인이 미용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엄마는 그 일을 좋아했다. 아빠를 만나고 나를 낳기 전까지 젊고 늙은 여자들의 얼굴과 몸을 만져주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다 미용 일을 하며 친하게 지내던 동료의 소개로 아빠를 만나게 됐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며? 왜 돈 없는 남자랑 결혼을 했대?

 -처음 만난 남자였거든.


 엄마는 처음 만난 남자랑 덜컥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졌다. 그 아이가 나다. 아빠를 만난 이후로 엄마 인생은 고생의 중첩길이였는데, 절대 후회는 안 한다고 말한다. 


 -너를 낳았으니까.


 감동을 주기 위해서 하는 말 같지 않다. 엄마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나를 낳았기 때문에 엄마가 겪어야 했던 돈도 없고 사랑도 없고 억세고 억센 고생들이 다 괜찮다고 믿는다. 나도 엄마가 어구시다고('억세다'의 경상도 방언) 생각하고 이모들도 너희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억셌다고 말하지만 나는 엄마 안의 여린 마음들을 안다. 아픈 장면을 보거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곧잘 우는 엄마를 많이 봤다. 엄마가 겁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겁이 많아서 서울에 상경하는 대신 대구를 선택했고 겁이 많아서 처음 만난 남자랑 결혼까지 했고 겁이 많아서, 신호등이 주황색이면 그냥 내달리지 못하고 끼익, 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아버린다. 결정적으로 겁이 많아서 이혼은 꿈으로만 꾼다. 


 돈 찾아 고향을 떠났던 엄마가 결과적으로 돈을 많이 벌었냐 하면 그건 또 그렇지가 않다. 엄마는 여전히 돈을 좋아하고 우리 둘끼리 하는 말처럼 입에 풀칠할 만큼만 돈을 벌며, 그래도 스스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는 들고 살 정도다. 세상일이 엄마 욕심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기인한 삶의 진실과, 가장 비극적으로 자식에 관해서라면 그것이 손써보거나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자기 의지에 반하여 마구 굴러먹는 공 같은 거란 걸 깨달으며 세월을 났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나를 만날 때마다 입에 풀칠할 돈은 좀 있냐고 물어보는 일인데 혹시 위급하다면 주머니를 뒤져서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돈 좀 줄까,라고 엄마가 내게 물을 때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난다. 필요하면 부탁할 텐데, 왜 미리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내 행색이 그렇게 초라한가 갸우뚱하게 된다. 시간이 한참 지나 엄마가 내 눈치를 살피며 돈이 필요하냐고 물었던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날에는 좀 울게 된다. 돈 없는 나 자신이 불쌍해서 우는 건지 나 같은 딸자식을 가진 엄마가 불쌍해서인지, 그냥 누추한 과거에 대한 회상 때문에 감정이 격해져서인지 이유야 어찌 됐건 엄마를 생각하다 보면 울 일이 생긴다. 엄마도 어떤 날에는 나를 생각하면서 격해진 감정 탓에 주룩주룩 소리가 나는 눈물을 흘릴까. 우리 둘 다 너무 쉽게 운다.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석영중 교수가 쓴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를 읽었다. 책을 다 읽고 잠깐 식탁 위에 놓아뒀는데 엄마가 관심을 가진다. 

-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러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소설가가 있거든. 근데 그 사람이 정말 정말 대단한 소설들을 썼는데 그게 전부 다 돈이 없어서, 궁핍한 나머지 채무를 갚듯이 써 내려가야 했던 소설들이었더라. 이 책을 쓴 석영중 교수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박사인데, 이 분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소설들을 '돈'과 관련해서 해석해주는 책이야. 엄마 돈 좋아하니까 이 책 좋아하겠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 좋아, 엄마. 우리 그럼 30분 독서해보자. 알람 맞춰 놓고 알람이 울릴 때까지 책을 읽는 거야. 중간에 말을 걸거나 쉴 수 없어. 

 엄마가 돋보기를 집어다 쓴다. 한참을 집중하면서 나는 내 책을 엄마는 <돈을 위해 펜을 들다>를 읽고 있는데, 아 눈이 아프다면서 엄마가 책을 덮는다. 알람을 확인하니까 15분밖에 안 지났다. 엄마는 큰 방에 들어가서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에서는 올림픽 중계가 한창이고 엄마는 길고 동글한 사탕 모양을 한 베개를 겨드랑이에 끼고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다. 우, 오, 아..! 감탄한다.


 엄마는 내가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해서나 그냥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묻는 것도 싫어한다. 내가 책이 어떠냐고 묻고 나서 엄마가 흔히 되돌려주는 좋다는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 좋은지 좀 더 설명해달라고 되묻는 것도 상당히 귀찮아한다. 그럴 때 엄마는 위태롭게 징검다리를 건너는 얼굴을 한다. 

엄마한테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으면 아무 생각도 안 한다고 대답한다. 아무 생각을 안 한 얼굴은 그렇게 골몰할 수 없다. 분명 무슨 생각을 했으면서 내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엄마를 몇 번 더 찔러대야지 그녀의 감상을 들을 수 있다. 어쩌면 엄마는 내 애를 태우고 싶은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침묵은 꽤 쓸만한 전략이다. 나는 엄마 생각이 더 궁금해지고 만다.

 

 이것이 물이다

 텔레비전 앞에 있는 엄마를 다시 불러냈다. 재밌는 얘기를 해주겠다고 꼬셔 놓고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이것이 물이다.'를 읽어줬다. 중간중간 엄마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주석이 필요할 것 같은 지점에는 멈춰 설명을 덧붙였다. 

- 디폴트라는 말이 뭐냐면 엄마, 한국말로 번역하면 초기 설정 정도로 번역 가능한데,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살다 보면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대로 그냥 살아진단 말이야. 우리가 인문학이란 걸 배우는 이유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인데, 또 그렇게 내 방법을 찾아내서 잘 살아낸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엄마, 자? 

 엄마가 꾸벅꾸벅 졸았다. 그만 읽겠다고 말하니까 고개를 내저으면서 좀 더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신기한 일이다. 듣지 않으면서 듣고 싶은 심리는 뭘까. 그것도 자식에 대한 사랑일까. 

 책을 다 읽고 나니까 목이 따끔따끔 아팠다. 어땠어? 너무 좋네. 뭐가 좋아? 그런 걸 왜 자꾸 물어? 

엄마는 질문에 답하는 건 귀찮고 얼른 만보를 채우러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동네 한 바퀴를 돌자 엄마가 내게 먼저 집에 올라가라고 말한다. 여느 때와 같이 막내 이모랑 전화통화를 해야 했는데 나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고 불평이다. 나는 먼저 집에 올라와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식탁에 앉아서 리디북스에서 구매한 책을 클릭해서 읽는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글쓰기에 관한 짧은 글들이 이어져있다. 한참 읽고 있는데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도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내가 앉은 식탁에 와 앉는다. 가영아, 어깨가 아프다. 그래서? 주물러줘. 좋아, 그럼 내가 엄마 어깨 주물러주는 동안 엄마는 내가 읽고 있던 책을 소리 내서 읽어줄래? 그래, 좋아.


 '잘 쓰고 싶다면 잘 들어라.' 엄마가 책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잘 읽는다. 트로트를 부를 때의 꺾기 창법을 불러와서 한껏 정숙한 분위기를 잡고 읽는다. 대화 어구는 정말 대화인 것처럼 목소리를 바꿔가면서 읽는다.  '열심히 들으면 당신을 채우고 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정말 맞는 말이지, 하고 추임새도 넣는다. '듣는 것은 곧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정말 좋은 말이라며 그다음 문장을 바로 읽지 못하고 숨을 고른다. 엄마는 책 속에 빠져들어서 읽다 말다를 반복한다. 나는 엄마 어깨를 주무르면서 책을 읽는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 살겿은 쉰다섯이라는 게 아직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곱다. 엄마 얼굴은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늙어간다는 걸 티 내고 마는데, 엄마 팔과 어깨, 목, 그 아래로 내려온 어깻죽지와 등의 살겿은 나보다 더 희고 더 곱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아직 늙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어서. 엄마 안에도 아직 늙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엄마가 미간을 찌푸린 채 동그랗게 말린 입을 삐죽거리면서 멈추지 않고 책을 읽는다. '들판에 서 있으면 나는 소보다 더 외롭다.' 엄마가 읽기를 멈췄다. 생각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다.  '안갯속을 걷는 사람은 안개에 젖는다.' 도겐이라는 선승이 했다는 말은 두 번 반복해서 읽는다. 어쩜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냐면 깊이 감탄한다. 안갯속을 걸으면 정말 안개에 젖을 수 있는 거라고 맞장구를 친다. 


 내가 하는 말들을 우리 엄마는 잘 들어준다. 누구보다 잘 들어준다. 엄마는 내가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개에 젖을까, 그래서 그 마음을 저렇게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듯이 감탄하며 말할까.



 또 보자

 엄마는 내게 절대 아이는 낳지 말라고 말했다.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어 느끼는 기쁨이 있을 텐데, 그 기쁨을 생각하면 나도 아이를 가져보고 싶다고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해봤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기쁨은 다른 데가서 얻으면 된다고, 너는 너 자신만을 위해서 재미를 보라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엄마가 정말 똑똑한 사람 같다. 엄마는 누구보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잠깐 멈춰서 생각하고 내게 결혼이나 아이를 갖는 일 대신 네가 되는 일에 재미를 보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엄마 참 똑똑하다고 내가 말하면, 엄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엄마가 멍청한데 내가 어떻게 똑똑하겠어, 엄마가 똑똑하니까 나도 똑똑한 거지,라고 말하면 엄마는 너희 아빠가 좀 똑똑하냐고 말한다. 왜 똑똑하다고 생각해? 계산기 없이도 큰 수를 막 곱하고 더하고 하더라? 엄마, 그건 아빠가 똑똑하다는 근거가 되기에 불충분해.  나한테는 엄마가 훨씬 똑똑해. 그런가? 그럼! 그럼 나도 책을 좀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나는 다다음주면 떠난다. 엄마 아빠 집을 떠나서 인천 공항을 떠나서 한국을 떠나서 바다를 건너서 밴쿠버로 갈 것이다. 거기서 나를 기다리는 것들을 생각한다. 아니 거기서 내가 마주하기로 작정한 것들을 되짚어본다. 내가 떠난 자리들을 엄마가 훑어볼 것이다. 또 몇 년을 내 빨래를 빨아줄 수 없고 내 밥을 차려주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울었던 것보다 더 슬프게 울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자기 방에 앉아서 겨드랑이에 베개를 끼고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갑자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엄마 눈물을 닦아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항상 엄마 옆에서 엄마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우리 각자의 눈물을 혼자서 흘리고 닦아내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가서 다른 공기를 마시면서 기운을 차려보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엄마랑 헤어지는 금요일 아침에 나는 엄마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번에 헤어졌을 때는 울음을 참아냈다. 작고 여리고 마음 약한 엄마 앞에서는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울음을 참아낼지 미리 생각해놔야겠다. 내가 떠나면 울어버릴 엄마 얼굴은 절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울면 엄마가 더 마음이 아플 거라는 사실은 또 내 마음을 아프게 하니까 그것도 생각하지 말아야지. 건조하고 재밌기만 한 일들을, 아니면 나를 화나게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엄마랑 인사를 헤야지. 금방 다시 볼 것처럼, 그냥 잠깐 광주에 다녀오는 것처럼 캐나다에 다녀온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헤어져야지. 우리가 또다시 곧 헤어져야 한다는 게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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