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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ug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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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쓰자 3

 28년 동안

 28년 전의 일이다. 경희가 현태를 만났다. 현태가 경희를 알아봤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충청북도 예산에서 누나 둘 다음으로 첫째 아들로 태어난 현태는 피부가 희고 눈이 크고 손가락이 긴, 귀공자 타입의 남자였다. 그의 배경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는 내 이모부이고 이 이야기의 최초 발화자는 우리 엄마다. 엄마에게 이모부의 첫인상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굉장한 미남이 다정하기까지 하더라? 그게 얼마나 갈까 생각했지.


 경희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경희는 6형제 중에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어른들에게 옳은 게 뭐고 틀린 게 뭔지 또박또박 잘 따져 들어서 동네의 만물박사로 불렸다. 만물박사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너까지 대학 보낼 돈은 없다고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만물박사의 아버지는 딸의 반짝이는 눈을, 그 안에 담긴 열정과 호기심 같은 것을 눈여겨볼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한 사람은 못됐다. 그는 여자가 교육받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경희의 비상함을 여기서 드러난다. 경희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라고 대답하는 착한 딸이 되는 대신 짐을 싸서 서울로 상경했다.  끈질긴 요구 없이도 자연히 대학을 갈 수 있는 오빠가 부러웠고, 자기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무너지지 않는 벽에 대고 싸움을 걸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간 경희는 외삼촌네가 하는 독서실에 거주했다. 외삼촌은 조카를 독서실에 재워줄 만큼의 아량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었고, 드넓은 집의 남는 방 하나는 끝까지 내어주지 않았던 냉정한 사람이었다. 경희는 낮에는 양말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도서관 일을 도우면서 잠자리를 얻었다. 사람들이 가고 나서 텅 빈 공간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자는 어떤 밤들이 무서운 적도 있었지만,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고 언젠가 경희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경희는 사이사이에 공부를 하고 돈을 벌면서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 합격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너무 기뻤지만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가족들이 옆에 없었기 때문에 혼자 울면서 기뻐했다. 그날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베이커리를 지나면서 크림빵이 간절하게 먹고 싶었지만 그걸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서러웠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해서 좋은 곳에 취직하면 크림빵을 맘껏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돈을 많이 벌 거라고 경희는 다짐했다.

 

 경희는 작은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글을 썼다. 작가가 될 것이라고 꿈꾼 적은 없었지만 그녀가 쓰는 글은 곧잘 잡지에 실렸다. 경희는 외삼촌 도서관에서 나와 살 곳을 구한 이후로 가장 먼저 막내 여동생을 서울로 불러들였다. 막내 여동생도 대학에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진 것 없는 자매가 서울에서 살아남는 일은 그때도 어려웠다. 먹고사는 게 해결되어야 했던 경희에게 남자를 사귀는 일은 사치였다. 현태를 만난 건 우연이였다. 그는 경희가 일하는 잡지사의 거래처 사람으로 자주 들락날락했는데, 말단 직원이었던 경희가 그를 안내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안면을 틔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는데 로비에서 현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태는 경희를 와인을 파는 식당에 데려갔다.


 경희는 앞에 앉은 남자가 자기와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잘 웃고 왠지 자기를 이미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경희 자신의 얼굴 생김새에 비하면 균형이 맞지 않게 잘생겼다. 경희 눈은 작은 민꺼풀 눈인데 반해 그의 눈은 크고 반짝였다. 경희 코는 넙데데한 민자 코인데 반해 그의 코는 오뚝하고 높았다. 경희는 작은 키에 약간 살찐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태는 키도 크고 건실해 보였다. 모든 게 그런 식이였다. 이 남자는 외적으로 자기보다 너무 잘났고 이렇게 잘난 남자가 자기를 향해서 애정을 표시하는 게 그녀는 어색했다. 집에 가는 길을 데려다주겠다는 걸 거절해도 현태는 제발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식이였다. 그때 경희는 하숙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11시가 지나면 하숙집 대문이 잠겼다. 현태에게 잘 가라고 인사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담을 타 넘어야 했다. 저 남자랑 다시는 이런 식으로 따로 만나는 일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세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현태는 사랑에 빠졌다. 그는 경희를 만날 때마다 그녀의 눈이 자꾸 반짝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경희가 말을 할 때면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계속 말을 걸고 싶었다. 향수를 뿌릴 줄 모르는 그녀가 풍겨내는 에너지란 게 옆사람을 편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그녀 옆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다. 직장으로 되돌아가서도 경희가 생각났다. 어떻게든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날 잡지사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같이 밥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가 잠겨있는 대문 앞에서 자신에게 잘 가라고 인사한 뒤에 가뿐히 담을 타 넘는 것을 봤을 때 그는 심장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심장에서 소리가 났다. 이 여자랑 어디든 가고 싶다. 어디라도 좋을 것 같다. 이 여자랑은 뭘 해도 같이 살아갈 수 있겠다, 같은 소리들이. 그날 밤 그는 결혼을 생각했다.


 현태가 프러포즈를 했을 때 경희는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인지를 설명하면서 거절했다. 결혼을 꿈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했다. 현태의 완강한 태도에 경희는 엄마가 산에서 약초를 캐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태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니까 경희는 자기한테는 아직 대학을 보내줘야 하는 동생이 있다고 말했다. 현태는 그것도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부자는 아니라도 자기에게 꽤 모아둔 돈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현태의 가족들에게 경희를 소개해줬을 때 그들은 경희를 전혀 반기지 않았다. 경희가 가난한 데다 못생기기까지 했다는 게 이유였다. 경희는 이를 눈치챘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현태는 억울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눈에 경희가 못나게 보이는 것까지는 자신이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이렇게 멋진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이 바보 같았다. 현태는 경희가 글을 잘 쓴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경희가 쓴 글을 들고 부모님 댁을 찾았다. 현태의 식구들은 경희가 쓴 글을 읽고 잘은 모르지만 그녀가 꽤 똑똑한 사람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현태에게 이미 경희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결혼했다. 아이 셋을 낳았다. 올해로 막내 아이가 고 3이 되었고 현태와 경희도 그 시간만큼 늙어버렸다.

 아직도 현태는 경희 밖에 모른다. 경희를 가장 잘 알고 경희에게 순종한다. 경희가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 쏟아내는 토 바가지를 쓸어 담았던 것처럼, 배를 굽힐 수 없는 그녀를 위해 발톱을 깎아주고 신발끈을 묶어줬던 것처럼, 이십팔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신을 신발을 미리 닦아주고 손이 시릴까 호호 불어준다. 현태에게는 경희를 위해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는 일이 아직까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딱 나네.

이 이야기를 남자 친구에게 들려줬을 때 그가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아니, 너희 이모부가 딱 나라고. 내가 너밖에 모르는 것처럼 이모부도 이모밖에 모르시잖아.

-네가 언제 내 토 바가지를 쓸어 담았어? 신발 끈을 묶었어?

-네가 임신을 안 했으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사랑에 빠지고 나서

 사랑에 빠지는 일은 쉽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에 유행처럼 휩쓸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은 운 나쁘게 보고도 지나쳤을 빛나는 보석을 내가 알아보게 되었을 때, 그 빛이 유독 내 눈에만 확연하게 들어오는 일이 발생했을 때, 감정이 흘러가는 길을 따라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그보다는 어렵다.

 뭐가 됐건, 그게 유행 같은 사랑이든, 보석을 발견하는 일이든 시작은 크고 멋지기 쉽다. 새로움은 늘 맛있다. 처음이라서 불편한 모든 과정들이 새로움이 주는 콩닥거림에 감춰져서 잠시 사소한 일이 된다. 그러나 새 것은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헌 것이 된다. 헌 것이 되어버린 사람을 새 인형을 구매하듯 다른 새 사람으로 바꿔버릴 건지, 아니면 헌 것이 고정되어 있거나 움직이지 않는 정물이 아니라 변할 수 있는 역동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매번 다른 새로움을 발견하겠다는 선택을 내가 먼저 내리기로 선택할 건지는 각자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인생을 사는 게 좋은 일일 수 있고, 인생에서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도록 애쓰며 살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같이, 너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너에게서 더 좋은 것들을 계속 바라보겠다고 마음먹는 일을 하루아침도 거스르지 말고 연습하는 게 관건이다. 이렇게 억지스러워봤자 인간은 색에 흐려지는 변덕쟁이라서 좋음보다 나쁜 것을 훨씬 쉽게 잘 발견한다. 그런 인간의 초기 설정을 바꾸지 않겠다는 옹고집이 내겐 더 억지스럽다.


 그리하여 사랑을 지켜내는 일은 어렵다. 경희와 현태는 중산층이 되고 싶었던 부부였고 남부럽지 않게, 아니 남들보다 조금 특별하고 좀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 점에서 나는 그들과 다른 지점에 서고 싶지만,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방식에서 나는 그들과 얼추 비슷한 시선에 머물고 싶다.


 두 사람이 언제나 평온하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덕담만 주고받는 연인 사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현태가 내게 말한 적 있다. '좋아하는 이상 싸우지 않을 수 없어.' 현태는 바깥 외출 준비에 느려 터진 경희 때문에 외출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태는 경희가 손빨래한 걸레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불만스러워서 매번 그녀가 빨고 짠 걸레를 다시 빨고 짠다. 그럼 경희는 좋을 대로 해보라는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서 과일을 먹고, 특히 외출할 때 재촉하는 현태에게는 '나는 내 시간대로 준비할 권리가 있다.'라고 매섭게 말한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 현태는 어쩔 수 없이 아파트 복도 의자에 앉아서 경희를 기다린다. 간간히 문을 열고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게 다다. 그럼 경희는 언니들을 만났을 때 남편 흉을 보면 된다. 그런 식이다. 그렇지만 둘은 사랑하는 식이다.



 내가 울 때 네가 말했다.

 나는 너와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운 좋게 우리가 엄청난 시련 따위를 비켜갈 수 있을까. 시련이 우리를 비켜가 줄까. 시간이라든지 운 같은 것은 조정될 수 없고 막연하게 닥칠 것이므로 무섭다. 영화나 소설에서 읽은 것처럼 우리가 잠깐 주의를 놓치고 발을 헛디뎠을 때, 혹은 우리는 잘 걸어가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서라든지 바로 옆에서 다른 누군가가 헛디딘 탓에 그들이 넘어지면서 우리도 함께 넘어지게 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럴 때 삶이 얼마나 고약해질 수 있는지 감히 상상만 한다. 근데 그게 우리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우리 두 사람이 잘 넘어 탈 수 있을까.


 내가 울 때 네가 말했다.

-괜찮아 가영아. 우린 잘 살 거야. 너랑 나랑은 잘 살 거야. 지금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 이렇게 하면 돼.

네 말을 듣고 울음을 그쳤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하는 거라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

 네가 울 때 나는 무슨 말을 했더라. 너는 (남자는 함부로 울면 안 된다는 가르침 아래서 자란 한국 남자라서) 내 앞에서 잘 울지도 않는데 가끔씩 나는 네 눈 뒤로 네가 남몰래 흘리고 있는 눈물이 들릴 때가 있다. 나도 너한테 네 울음을 그치게 해주는 말을 해준 적이 있었던가. 네 옆에 내가 있을 거니까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나. 나는 로맨티시스트가 되는 일에는 젬병이라서 무너졌던 네 마음을 다정하게 일으켜주지 못했다. 너는 내가 뭘 해주면 좋겠냐고 물을 때마다 그냥 옆에 있어주면 된다고 말한다. 근데 나는 화가 날 때마다 네 옆을 떠나버릴 거라고 협박한다. 사랑을 잘 몰라서 사랑할 줄 몰라서 그런 거라고 뻔뻔하게 변명한다. 그래 놓고 사랑에 대한 글을 쓴다.  


 사랑 이야기를 주워듣는 건 설렌다. 사랑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이 살만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꼭 한 번 살아봐야 할 것만 같다. 사랑은 어디서 생기고 사랑을 발견하는 눈에는 어떤 센서가 있길래 나는 너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너는 딱 이모부 같은 로맨티시스트는 아니지만, 팔 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쳐다봐주는' 로맨티시스트다. 누군가를 쳐다보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이 얼마나 번쩍번쩍하고 그 안에 또 얼마나 멋지고 잘난 것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별 것 아닌 나를 흔하디 흔한 것처럼 스쳐볼 수도 있을 텐데, 너는 나를 똑바로 바라봐준다. 기대치가 낮은 나는 딱 그 정도로 족한다. 네가 아무리 화가 나도 나를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트려버릴 것처럼 무섭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침에 눈을 뜨면 처음 보는 사람이 나라는 것에 괜찮은 얼굴을 하고서 웃어준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비위가 약한 너는 절대 내 토를 쓸어 남을 수도 없고 신발 끈 정도야 묶어주는 일이 대사겠냐만은 그걸 먼저 발견하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고 나는 내 신발 끈은 스스로 묶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딱 이모부 같은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게 아니라도 네가 충분히 좋다. 충분히 사랑스러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네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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