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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Nov 14. 2021

한계 1. 나이

캐나다 대학 생활

철학자 도올은 공부는 몸으로 하는 거라고 말했고 여성학자 정희진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공부라고 말했다. 몸뚱이가 아직은 건강하고, 죽을 때까지 공부할 수 있는 것보다 멋진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서른에 학사 과정을 다시 시작했다. 


도올과 정희진의 말에 동의할 수 있게 된 지가 오래지 않았다. 대학을 자퇴하기 전까지 내게 공부란 좋은 삶으로 가닿을 수 있는 티켓을 얻기 위한 육체 및 정신 노동이였다. 사회적 사다리의 더 높은 곳을 오르겠다는 욕망으로 공부했고, 제발 끝없을 것 같은 시험이 끝나면 공부도 끝나길 바랬다. 그리고 나면 내게 반짝반짝 빛나는 삶이 올 줄 알았다. 사회가 인정해주는 직업들이 있고, 그런 직업들을 가진 덕분에 타인들로부터 인정을 부여받는 말끔한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런 사람들처럼 살 수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입시 공부를 했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무모한 용기였지만 대학을 자퇴했다. 아무리 정당화해봐도 자퇴는 무모한 선택이였지만(별 계획이 없었다), 후회되는 선택은 아니다. 꾸역꾸역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을 치고, 교사가 되었다면 내게 공부란 언제나 수단이지 목적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UBC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나이를 절감한다. 학비를 대신 내줄 사람이 없다는 점, 공부하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라는 점, 그래서 영어로 듣고 말한다는 점들이 10년 전과 다르지만, 무엇보다 다른 것은 내가 이제 스물이 아니라 서른이라는 사실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공부하는 게 즐겁고 좋은데, 이 찝찝함은 어디서 올까. 


사회학 수업 시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Mills의 Sociological Imagination에 대한 강의였다. '만약 지금이 1938년이였다고 해도 여러분이 지금 UBC에 와서 이 수업을 듣고 있었을까?' 몇 명이 그래도 자기는 UBC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 중에 한 명이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유비씨에서 공부했고 부모님 또한 유비씨 학생이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1938년에도 자신이 유비씨에서 공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경우를 생각해봤다. 


개인은 사회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개인의 삶은 그 개인이 속한 사회(배경)에 따라 각자 다른 모양으로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1938년에 UBC에서 공부했을 리는 만무하다. 일단 나는 이 나라 시민이 아니고, 내 부모님 두 분은 노동자 계층에 속하고, 그 시대에 유학을 보낼만큼 혹은 이민을 갈만큼 유복한 형편이 될 턱이 없었을테고, 설사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도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1938년의 UBC는 내게 너무 먼 곳이다. 그렇다면 2021년에 내가 UBC에서 공부하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당연한 건가.

 

때때로 내가 지금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많은 천재들은 대학의 상투성에 질려서 때려치우는 미친 짓을 했지만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아카데믹이 안겨줄 무거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이 나이가 되어서 공부를 시작하는 게 내 자리가 맞을까. 나는 1938년에도 UBC에 없었을진대 2021년에 UBC 입학생이 되는 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사회학 교수가 이어서 말했다. '10년 뒤면 여러분들은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 거예요. 뭔가가 되어 있겠죠.' 그는 분명 흘러가는 말로 내뱉은 건데 나는 뜨끔했다. 그렇지 내 옆에 있는 이 친구들은 아직 스물도 채 안 된 친구들이고 이들은 10년 뒤에 서른이 되지. 그들은 서른에 뭐가 될까? 어? 지금 서른인 나는 여기서 뭘하고 있지? 나는 뭐가 됐나?


뒤늦게 학사 과정을 시작하는 늦깍이 학생들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 커리큘럼 안에서는 만나지 못했다. 캐나다 나이로 열여덟인 친구들과 듣는 수업에서 나는 내 나이가 내게 던져주는 부자연스러움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모른다. 내가 신입생 때 느꼈던 답답하고 무거운 공기와는 전혀 다른 생동감과 자신만만함을 그들에게서 전해받는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질문이 넘친다.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자기 감정과 의견을 드러내는 일에 자유롭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응한다.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짐을 싸고 복도를 걷는 1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열아홉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왜 그 때 공부를 원하지 않았을까. 그건 과연 내 개인적인 이유였을까 내가 속한 사회와 연관이 있었을까. 


1년의 갭이어와 10년의 갭이어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1000년 안팍으로 사는 게 아니라 100년이 마지노선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경험주의자이지만(인생은 탐험이야. 다른 누가 해주는 신실한 조언을 따르는 대신 내가 판단했을 때 내게 좋아해서 원하는 결정을 내리는 만행을 부려야 한다고!), 100년이 마지노선인 삶에서는 모든 액션을 경험해보고 취할 수 없다. 경험주의의 한계를 느낀다. 결국 선택을 내려야 하고 선택을 내릴 때는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내가 되어보자고 내 자신을 고무시킨다. 그게 잘 되지 않고 잘된 선택인지 그릇된 선택인지도 결국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번 해보는 게 아무런 시도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나. 선택 이후에는 행동주의자가 되어서 몸과 마음을 움직여나가기로 한다. 이 또한 매우 어려워서 자주 실패할 일이지만, 내가 원하는 행동이란 완벽한 내가 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일임을 생각할 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석사도 박사도 아닌 학사를 목적으로 다시 대학에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참 욕심이 많다고 말했고 이모는 결국에는 대학을 다시 갈 거면서 왜 자퇴를 했냐고 핀잔을 줬고 또 어떤 사람은 왜 그러는 거냐고 궁금해했다. 그 중에 한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가장 고무적이였다. '대학은 원래 너처럼 뭔가 배우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 가는 곳이잖아.' 


이제 와서 늦었다고 한탄하기에는 따라잡아야 하는 과제들이 너무 많고, 한탄해봤자 별 도리가 없는 게 학교 생활을 재밌게 해내는 것 말고는 내 구미에 더 끌리는 게 지금은 없다.너무 늦어버린 대학을 다시 그만두기에는 지금은 공부하는 것 말고는 끌리는 대안이 없다. 내 나이는 내 ego가 죽기에 충분했을 시간이라고 믿고 내게 주어질 이야기들을 좀 더 잘 받아들이고 싶다. 내 나이 서른을 좀 더 진지하고 적극적일 수 있는 추동력으로 이용하고 싶다. 내게 남은 과제는 스물들이 내게 가져다주는 활기 넘치는 에너지들을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으로 사람들과, 그들의 글과 열심히 소통하는 것이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가져다주는 찝찝함을 느낄 때마다 사회가 던져주는 표준선 밖에서 소외감에 젖기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되새기기로 한다. 이것은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Mills의 sociological imagination이 함축하듯, 사회가 내게 의미를 던져주는 게 다반사일지라도 내가 사회에 던질 수 있는 의미의 가능성을 믿기로 한다. 시간은 어떻게든 갈 것이고 나는 futurist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내 의미를 만들어나가기로 한다. 그렇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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