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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un 12. 2018

[영화] <엑스맨-퍼스트 클래스>을 보고


인정하기 싫지만 외모가 중요하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H는 학교 선생님이다. 새로 들어온 신입 선생님 중에 자신보다 어리고 이쁘고 멋부리는 선생님이 들어오자 학교 내 모든 관심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고 했다. 그 관심에 관심도 없던 H가 차츰 분노하기 시작한 것은 주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핀잔에서였다. 샘도 저 샘처럼 좀 꾸미고 다녀봐요. 맨날 안경만 쓰지 말고.

 어떤 이유로 화장을 못 지우고 간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는 H에게, 화장하니까 너무 좋아요, 활짝 웃는다. H는 헷갈린다. 내가 화장해서 지(자기)가 왜 좋다는 거지, 내가 지 좋으라고 화장하는 줄 아나. H는 자꾸 화가 나면서도 예쁜 게 예쁜 거고 예쁜 게 좋은 거라고 설득당하게 된다.


  그런 H가 '엑스맨-퍼스트 클래스'를 추천한다. H를 좋아해서 H가 추천하는 영화는 본다.

시차 적응이 안 된 밤 11시에 보기 시작한데다 자막없이, 옆 방 플랫메이트가 화나기 전에 볼륨을 줄여가며 본다. 이 영화의 다른 스토리들은 차치하고(나는 히어로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 장면에서부터 나는 껌벅이는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영화를 본다.

 

Beast는 자신이 개발한 약을 기쁨 가득한 얼굴로 Raven에게 보여준다. 그것은 Feast가 숨겨야 했던 발을 정상으로 바꿔줄, Raven의 보라색 외형을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신약. 들뜬 Beast에게 Raven은,  나는 네가 Feast일 때가 좋아, 너는 지금도 충분히 멋져, 너는 내가 돌연변이의 모습일 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응 당연하지 너는 지금처럼 normal할 때가 아름답지, 돌연변이일 때의 너는 전혀 아름답지 않아. (Feast는 여자를 모른다.)  

Raven은 실망한다. Raven이 Feast와 처음부터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Feast에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 생각한 Feast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두고 아름답지 않다 말할 때(부정할 때), 그녀는 어디서 누구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까. 


Raven은 Feast가 되돌아가자, Erik의 방에 간다. Raven은 Feast가 아름답다 말한 정상의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그를 유혹한다. 그러나 Erik은 Raven에게 그녀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길 요구하고, 보라색 돌연변이 Raven에게 Erik은 키스한다. 그는 그녀가 그녀일 때의 모습을 강력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지금 필요한 게 그것뿐인 Raven은 괜찮을 힘이 생긴다. 

 

 인정에 관해서라면, 내게는 집합 A와 A의 여집합이 있다. 집합 A는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집합 A는 단수일 수도 복수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하나 이상이여야 한다. 나는 내 존재에 대한 그들의 수용이 필요하다. 내가 그냥 나 밖에 아무것도 아닐 때에도 그들이 내 존재를 어여삐 여겨주길 바란다. ( 나는 영학이보다 작은 가슴에, 러브핸들은 볼록하고 허벅지는 과하게 두터운 외형을 가졌지만, 그런 나를 그가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봐주기 시작한 이후로, 노브라 + 타이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 같다.) 무엇을 숨기거나 덧칠하지 않은 나를 집합 A 안아주게 되었을 때, 나도 나를 좀 더 안아줄 수 있게 된다. 그로부터 인정받음은 비로소 내가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가능하게 한다. 내 삶에서 기꺼이 집합 A에 발디뎌줄 한 명의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 모든 여집합들의 배척으로부터 괜찮을 힘이 생기는 것이다.  


 가영아, 내가 진짜 인정하기 싫었던 건데, 살아가는데 진짜 외모가 중요하더라. 

뭐 외모 밖에 중요한 게 없으면 그럴 수 있지. 그것 말고 중요한 게 있는 사람들한테는 문제조차 안 될거야.

 H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나는 확실히 재수없게 대꾸했던 것 같다.

나는 H의 승복이 싫었다. 내게 H는, 세상의 기준에 예쁨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예쁜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다. 나는 그녀가 그녀가 좋아하는 머리색을 염색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녀의 짧고 짧은 앞머리를 좋아한다. 그녀의 화장하지 않는 얼굴이나 그녀가 입는 독특한 모양의 바지를 좋아한다. 그녀가 가끔씩 미쳐서 어딘가 복도에서 춤을 추는 것도 너무 좋다. 내겐 그녀가 그녀 기준으로 멋있는 게 그녀의 베스트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서 H에게 다시 대답할 기회가 있다면, 

그것 말고 더 중요한 게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내가 말하는 그것이란 ' 외모라는 옷을 입고 있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라고, 사람이라면 우리 모두 어떤 다른 이들로부터의 애정어린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 없이, 인정 없이, 사랑 없이도 따뜻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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