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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Aug 30. 2018

[영화] <1984> 을 읽고

조지 오웰의 1984를 영문판으로 읽어봤어. 처음으로 이 책을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정말로 이런 사회가 올지도 몰라.'같은 두려움.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기에는 Big brothor가 너무 친숙해져 버렸어.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이란 사람보다는 1984라는 책 자체가 주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은 이유는 조지 오웰 때문이였어. 오웰의 진짜 이름은 Eric Arthur Blair고, 그는 20세기 초반 대영제국을 살았던 사람이야. 

 오웰이 버마에서 5년 동안 경찰로 일한 적이 있었대(그 당시 버마는 영국의 지배 하에 있었고). 당시 영국 사람들은 영국의 버마 지배를 자애로운, 필수적인(necessary) 통치라고 생각들 했고, 오웰도 버마에 가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근데 버마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그는 영국인들의 만행을 목격하게 돼. 

  '버마의 더위는 살인적입니다. 영국인들은 꼭 헬멧을 써야하죠. 미개한 버마놈들이야 살인 더위 속에서도 살아남겠지만, 우리 영국인들은 다르죠.' 버마로 가는 배 안에서 선장의 안내방송은 버마 사람들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영국 경찰들은 거리낌없이 버마인들에게 발길질을 해대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 한 명 없는거야. 오웰은 충격을 받아.


 최동민의 '작가를 짓다'라는 책에서 조지 오웰의 영국 경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고, 혼자서 찾아보다가 조지 오웰이 남겼던 말을 발견했어. 이건 '조지 오웰과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야. 


'I was part of the machinery of despotism. 

It was a sodden morning of the rains. He was a puny, whisp of a man with a thick, sprouting moustache. He walked clumsily with his bend arms, but quiet steadily. And once, in spite of the men who gripped him by each shoulder, he stepped slightely aside, to avoid puddle on the path. 

It was curious but, till that moment I had never realised what it means to destroy a healthy, conscious man. For when I saw the prisoner step aside to avoid the puddle, I saw the mystery, the unspeakable wrongness of cutting a life short when it is in full tide.

This man was not dying, he was alive, just as we were alive. He and we were a party of men, walking together, seeing, hearing, feeling, understanding the same world. And in two minutes, one of us would be gone. One mind less one world less. 

It seemed to me worse than a thousand murders.'


 한 사회 속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회가 전파하는 믿음을 거스를 수 없어. 사회가 심어놓은 선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을 검열하게 만들잖아. 근데 있잖아, 같은 사람인데, 내가 맞으면 아픈데, 그럼 내가 때리면 그 사람도 사람이라 아플거야,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되겠다, 이건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진리잖아. 근데, 사회가, 버마인들은 인간처럼 생겼을지 몰라도 인간이 아니다, 혹은 버마인들은 인간 중에도 막대해도 되는 하류층인간이다, 라고 공기를 오염시키기 시작하면, 뭐 처음에야 이상하다? 하다가도 금방 눈코입이 익숙해져서 당연하지, 그렇지 원래 공기가 이랬지 하는거야. 그 오류는 결국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지고, 버마인들은 미개한 존재가 되고 우리는 그들에게 자유로이 발길질을 내던질 수 있는 거지. 

 

 조지 오웰은 경찰 일을 얼마하지 못하고 그만둬. 그럴 수 밖에.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글을 쓰기 시작해. 나중에는 경제적인 형편이 안 좋아져 호텔 식당에서 디쉬워셔로 일하면서 돈을 벌기도 하고. 말년에는 결핵 때문에 고생하다가 죽어.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영국의 지배를 당연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오웰은 그것이 가진 독재와 폭력성에, 폭정의 일부였던 자기 자신에 대해 죄의식(guility)을 느꼈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인간적인' 감정들 중에 나는 죄의식이란 것이 마지막까지 인간을 인간으로 지켜낼 수도 있는 감정일거라 생각해. 내가 말하는 죄의식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구원받아야한다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전혀 달라. 내가 말하는 죄의식은, 어찌됐건 나는 멀끔한 옷을 걸쳐 입고, 과일과 채소와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들을 입에 넣으며, 내 정신적인 자유를 위해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며 자판을 두드리는데, 지구 어느 한편에서는 전쟁과 굶주림에 지옥처럼 시달리는 시리아 아이들이 있고 남편에게 맞는 것이 일상인 사우디 여성들이 있고 망한 나라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길 잃은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있고, 경례하고 싶지 않은 것 앞에 충성해야하는 사람들이 있고. 근데 나는 내가 가진 자유와 물질은 너무 당연하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밥과 문화는 태초부터 그들의 몫이 아닌 것 마냥, 꿈꾸는 내 일상을 이어나갈 때, 한 순간 내 자신이 이런 인간이라서 너무 부끄러운 거야. 뭐 내가 부끄럽거나 부끄럽지 않거나는 그것의 해결과 전혀 상관없는 감정일 뿐이지만, 그런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져. 고상한 척 하면서 실제로는 내 배불리는 것이 주된 삶의 관심사인 인간.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마저 하루의 가십거리로 소비할 수 있는 세련된 인간같은 인간.


언제나 거짓은 넘쳐나지만, 내 어느 작은 모퉁이에서는 부끄러움이 죽지 않고 살아남길 바래. 부끄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건드리고, 나는 그것이 마땅히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1984>

빅 브라더 세계 안의 smith를 읽는 동안, 한국 사회에서의 나를 생각하게 됐어. 사실 뭐 빅브라더야 어딜가나 있는 게 요즘 세상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장 오래도록, 강력하게 만난 빅브라더는 한국사회니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니까. 'Competition is Peace. Freedom is Effort. Money is Strength.'  

Big brother is watching me, Everybody is watching each other, and I'm watching myself.. 나마저 나를 감시하기 시작할 때 내가 나 아닌 세상에 시선을 던질 힘은 소멸돼. 모든 화살표가 내 자신에게 향할 때 그 인간에게서는 활기나 생명력을 찾을 수가 없어. 결국 내가 발견되는 건 나와 내 바깥의 끊임없는 마찰에서인데, 이 마찰이 발생하려면 나는 바깥으로 화살쏘기를 해야하는 거지. 한국에서 나는 매번 화살쏘기에 실패했어. 내가 쏘기나 해봤나 싶기도 하다. 나는 시선의 포화상태였으니까. 


베라와 사이먼이 국민학교를 다녔던 1970-80년대의 한국 교육은 반공 사상에 철저했대. 운동회가 있는 날에는 김일성 얼굴을 닮은 괴물을 만들어서 거기다 모래포를 던지는 행사를 했고,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산다는 선전을 배웠고, 북한을 물리치자는 글쓰기 대회를 했대. 애국에 관한 프로파간다가 가득한 교육이였나봐. 

1992년생인 내가 한국에서 받은 교육은 '성공중심주의'라고 말해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노력해야'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거야. 1등하지 못하면, 외고에 가지 못하면, 서울권 대학에 가지 못하면, 대기업에 가지 못하면 나는 제대로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거야. 혹은 멍청하거나. 그래서 결국은 다 내 탓이란 말이야. 나는 자꾸 내가 못난 사람같고, 그렇지만 그것을 극복해야한다고 사회는 다시 가르치고, 우리는 다른 경쟁줄에 서는거야. 공무원 시험을 본다거나 말이야. 

사람들은 성공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성공으로 달리고 싶어해. 성공은 돈으로 이뤄진 것이거나 사람들의 우러른 시선으로 쌓이는 걸까. 어쨌거나 상관없어. 성공한 사람들은 예쁜 치장에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 집과 차를 어깨에 얹고 좀 덜 성공한 사람들의 시선을 만끽하면 좋으니까. Big brother가 가장 원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루도 쉼없이 죽을 때까지 이어하는 것, Big brother가 계획한 것은 위태로운 1등과, 곧 1등이 될 2등과, 2등이 될 3등과, 그렇고 그런 것들이 부푸른 승부욕으로 서로를 무너뜨리는 게임, 그래서 Big brother가 만들려는 세상은 예술이 없는 세상 단독성이 죽은 세상 누구도 고유할 수 없는 세상.        


언제나 이방인이 되고 싶은 이유는 빅브라더가 없다는 착각을 위해서야.


2. 일이 지루해진 이유

가게에서 내가 더 배워야할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서도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열심히 일하는 내게 환멸을 느끼기도 해서.


같이 일하는 친구가 한국을 가야해서 일을 곧 그만두게 됐거든. 보스들이 고용 광고를 올리고 새로운 사람을 찾기 시작하는데, 꼭 한국 사람만 고용하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물었지. 캐내디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 구할 생각은 없어? 대답이, '응, 한국 사람들이 일 열심히 해. 아니면 필리피노나. 걔들은 진짜 충성적이기거든. 일하는데도 필사적이고.' 

당연하고 솔직한 대답일 수도 있지. 사업을 하고 이윤을 남겨야하는 보스의 입장에서는. 

나는 Vera가 일구하기 힘든 한국 사람들한테 좀 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에 한국 사람들만 구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거든 (어쩌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건지는 모르겠다). 저 말 한마디 이후로, 내가 Vera와 쌓았던 인간적인 신뢰가 조금씩 무너지더라. 베라가 나를 친구라고 불렀고, 나도 베라를 내 친구로 먼저 대했는데, 우리 둘 사이가 친구 사이는 될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


한동안 일하면서 말도 잘 안하고 어색하게 굴었는데, 이제 괜찮아졌어. 이제 그냥 베라가 보스로 보이거든. 그녀를 철저히 보스로 대해. 보스로서 그녀는 내가 만난 최고의 보스야.


언니,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 이것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어. 근데 누가 내 노동을 착취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무력해져. 

이번에 알버타주 최저 시급이 15불로 오르는데, 로즈는 내게 1불 더 받는 매니저를 제안해. 1불 더 받고 할 일은 좀 더 많아지는 거야. 나는 매니저같은 거에 관심이 없는데.

기분이 나빠서 일을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아직까지는 좋은 점이 더 많아서 일은 좀 더 할 것 같아. (좋은 점: 일을 하면서 가면을 써야하는 피곤함이 없다는 것, 감당 못하게 바쁘지는 않다는 것,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시간만큼만 일할 수 있다는 것, 커피와 비건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 일하는 곳이 집 앞에 있는 것, 두 보스 모두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 

나도 몰랐는데 내가 노동에 좀 자질이 있더라고. 일을 좀 잘해. 그래서 매니저가 아니라도 매니저가 하는 일들을 대부분 하고 있었어. 물건들을 직접 주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야. 시급을 좀 더 안 올려준다면, 이곳에서 매니저 경력을 만들어서 다음에는 매니저로 다른 일자리에 지원할 생각이야. 이렇게라도 생각해야지 억울하지 않지 말이야.


3. Faces, Flaces /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JR은 바르다의 눈과 발을 사진으로 찍어. 바르다는 시력을 잃어가는 중이고 걷기 위해서는 지팡이의 도움이 필요한 80세 할머니야. 기차에 붙은 바르다의 눈과 발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거야. JR의 선물이였어. 그 광경 보던 한 아저씨가 바르다에게 물어. '왜 이런 걸 만들었대요? 무슨 의미일까요?' 

 'The power of imagination. JR과 나는 우리들에게 상상할 자유를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보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상상의 자유를 가졌으면 좋겠는거죠.' 바르다가 대답해.


언니가 싫어할 수 없는 영화야. 바르다는 너무 사랑스럽고 JR은 너무 친절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들만으로도 화면이 가득차고,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작업들은 시간을 맛있게 만들지.  염소는 뿔이 있는 동물이고,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고, 그러나 그것은 색이 바래질테고, 혹은 죽음처럼 사라질테지. 바르다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말하고 JR은 검은 모자와 검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아. 그들은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지 않아. 그들은 그들 각자의 자유로서 다른 각자들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놀이 중이야. 그 놀이에 나도 즐거운 영화였어.



4. 

언니랑 통화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인터뷰는 본거야? 언제 집을 떠나는 거야? 마음이 어때? 


일회용컵이나 쓰레기를 만드는 제품들을 되도록 쓰지 않기 위해서 노력 중인데도, 지금 내 옆엔 플라스틱 워터 바틀이 놓여있어. 이틀동안 수돗물맛이 이상해서 물을 사먹는 중이거든. 과일이며 채소, 두부, 내가 주로 사먹는 모든 것들은 플라스틱 비닐이랑 상자에 포장되어 있고, 그것들이 쓰레기통에 쌓이는 속도와 부피는 나를 놀라게 해. 나는 도대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나. 


지난 주 주말에 캐러비안 페스티벌이 있었고, 그 때 퍼레이드랑 Soca 댄스 퍼포먼스가 있었어. 

춤연습을 할 때는 한 곡이 10분 같았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한 곡의 춤은 1분처럼 느껴지더라. 

경찰차와 그 옆에 선 경찰을 붙잡고 엉덩이를 흔들고, 트럭 위에 한 다리를 걸치고 다 시 엉덩이를 흔드는거야. 비키니 차림에 공작새 같은 머리 장식을 씌고 거리를 걷거나 춤을 추는 건 처음 있는 일이였다. 

독특한 경험이였어. 다시해도 좋을. 


로힝야 집단 학살 혹은 인종 청소가 1년이 넘게 계속 되고 있어. 어제 신문 기사를 읽어보니까, 이제서야 UN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인권위원회나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이 있어야 한다는 말들을 오가. 

미얀마 군부 세력은 부모가 보는 앞에서 그들의 아이를 죽이고, 남편이 보는 앞에 아내를 강간하고, 마을을 불태워 죽이고, 사람들을 노예화시키는 등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악을 무자비하게 자행하고 있어. 근데 그들을 처벌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대. 중국에서 알게 모르게 미얀마 군부를 뒷받쳐주고 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 또 로힝야 사태가 인종 차별주의로 인한 집단 학살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필요한가봐. 

'보수적인 통계'로 만명이 죽었다는데, 분명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을거라고 생각해.

인간은 뭘까. 어떻게 그 부모 앞에서 아이를 죽이는 상상하기 힘든 폭력을 가할 수 있나. 그리고 그것에 동조할 수 있나. 인간이 너무 쓰레기 같아서, 쓰레기가 쓰레기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이 셀 수 없는 나쁨을 무엇으로 감해가야 할지 무서울 때가 많다. 


언니 얘기도 들려줘. 아무 얘기나 좋아. 

나는 이제 일하러 가려고.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반가운데,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한 건지는 의문이다. 


좋은 하루 되시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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