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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Oct 06. 2018

[편지] H에게

고민 상담

그래서 지금은 아빠가 다시 돌아가셨어?

언니 이메일을 읽자마자 곧바로 엄마 카톡으로 전화를 걸었어. 갑자기 아빠랑 통화해야겠다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 모르겠어. 엄마는 연유도 모르면서 그저 내가 아빠를 찾는다는 것에 너무 반가워했어. 오늘 아빠 쉬는 날이니까 자기가 집에 도착하면 전화연결을 시켜주겠다는 거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어. 

나는 여전히 아빠랑 통화하는 게 껄끄러워서 되도록 그와 통화하는 기회를 만들지 않으려고 해. 엄마랑 전화할 때도 가장 먼저 묻는 말이, '혹시 아빠 옆에 있어?'. 혹시 아빠가 나랑 통화하자고 하기 전에, 얼른 통화를 끝내버리지. 엄마랑 둘이서는 이러쿵 저러쿵 재밌게 수다를 떠는데, 아빠가 옆에 있다고 하면 입에서 말이 잘 안나와. 

내 기억 중에 아빠가 서있는 것들은 상당 부분이 폭력적인데, 그 안에서 나는 떨리는 입을 다물려고 어금니를 앙 물고 있거나, 굵은 침을 삼키고 있어. 무서웠거든. 

근데 언니 웃긴 건, 지금와서 아빠는 너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나를 다정하게 대해. 지난 번에 한국에 갔을 때는 내 침대에까지 와서 자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거야.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아빠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곁에 다가와서는 안 되는 것인데 말이야.  

갑자기 아빠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냐면, 아, 나도 당신을 창 밖으로 밀쳐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지요. 도대체 내 모든 불행의 씨앗 같았은 당신을. 

정말 아빠랑 통화가 닿았다고 해도 저렇게 말하지는 못했을 거지만, 그 꺼림칙한 목소리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어. 

기세등등하신 언니 아빠랑은 다르게, 우리 아빠는 이제 기가 많이 죽었어. 여전히 엄마를 이기고 살지만, 내겐 화도 잘 못내는 사람으로 변했어. 한국에 살지 않아서 좋은 점 중 하나로 아빠를 일상처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꼽는다면, 나는 나쁜 년이겠지? 

나쁜 년 할래.   



1. 고민 상담

그런 심리 상담도 하구나. 언니가 가보지 않은 길은 어딘데? 가보고 싶은데 아직 가보지 않은 길.

근데 언니, 직업이 선생님이고, 그래서 안정적이라 좋고, 그렇다면 퇴근이 끝나고 향하는 가보지 않은 길도 괜찮지 않아? 가보지 않은 길은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니야? 인생 전체를 생각했을 때 해봐야 죽을 때 좀 덜 꺼림칙할 것 같은, 그런건가? 


내가 만약에 지금 그 상담에 갔다면 어떤 고민을 들고 갔을지 생각해본다. 말을 꺼냈을지는 모르겠지만. 


첫번째 고민-아, 나는 왜 '먹는 행위'에 부정적인가.   


이동진 평론가가 고등학생 한 시절 동안에 무엇을 먹는 것이 싫어서 물로 배를 채운 적이 있었대. 무엇을 먹어야 생존하는 인간 존재가 너무 탐욕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던 것 같다.

물로 배를 채운 이동진과는 상반되게, 방 안에 틀어박혀 괴물처럼 음식을 먹어치웠던 시절이 내겐 있었어. 그 때의 경험은 스스로에게 치욕스러웠던만큼 너무 강렬해서 잊혀질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야.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도 모순에 있는데, 먹는 걸 너무 좋아하면서, 먹는 내 모습이 너무 꼴보기 싫을 때가 있어. 무엇이 맛있으면 맛있어서 행복해야 하는데, 맛있어서 죄스러워져 버리는 거야. 사실 내가 비건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가 내 식탐 때문이기도 해. 나는 식욕, 성욕, 수면욕이 모두 너무 왕성해. 나이가 들면 좀 덜해지려나.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을 또 구했고, 그녀 이름은 Jennifer야. 내 사촌 동생 나라보다 어린 친구인데, 내 친구같아. 성숙해 보이거든. 둘이서 일할 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됐는데, Jennifer가 말하길 자신한테 식이 장애가 있대. 음식을 먹고 토하기를 곧잘한대. 살이 찌는 게 두려워서. 여기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 남자친구 이상형이 thin한 여자라고, 근데 자기는 충분히 날씬하지가 않아서, 살을 빼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고백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 나는 또 열변을 하고 말았어. 누구 좋으라고 그러냐. 너가 건강해야지. 너한테 살빼라고 말하는 남자면 만나지 마라, 아주 웃긴 놈이네 그 놈. 너는 지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거잖아. 블라블라블라..


이건 언니, 한국 여자들의 공통된 병인가? 내가 만난 내 또래의 많은 여성들은 먹는 걸 두려워 해. 좀 더 정확히 말해, 살이 찌는 게 두려워서 먹는 걸 주저해. 살이 찌는 건 짜증나는 일이지 두려워할 일은 아닌데. 

Lina는 그래도 밥을 엄청 잘 먹는 여자애였는데, 문제는 자존감을 포기한 것에 있어. 통통한 체형을 두고 아무도 자길 좋아하지 않을 거라면서 열등감을 당연시했지. Jay는 서른이 넘으면 특히 더 신경써줘야하는 게 여자라면서, 자신은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조금만 살쪄도 남자친구가 금방 알아차려서 신경쓸 수 밖에 없다고 눈웃음을 치며 말했어. 설화씨는 삐쩍 마른 몸에 나와 크로스핏을 같이 다닌 친군데, 살이 찔까봐 음식을 먹고 토하는 것을 습관처럼 한다고 울면서 말했어. 지은씨는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고, 내가 그녀를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다이어트 중이었어. 인경이랑 통화할 때 그의 거의 가장 첫 질문은 살은 좀 빠졌냐고, 엄마나 이모들은 내 살이 많이 빠졌다면서 드문 인정을 보내와.


나는 그냥 내가 대식가란 걸 인정하기로 했어. 오늘도 잡채를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두 그릇째를 비우고 디저트를 찾고 있는 나에게 순간, '으,'로 시작될 찡그린 비난을 퍼부으려다가 '그려, 나는 대식가야. 많이 먹었으면 운동을 좀 더 하면 돼. 어렵게 살지 말자고.'라고 해줬어. 그러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거든. 기분이 좋으면 또 편지도 쓰는거지.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예뻐야 하는 거야?  

나는 나를 위해서 맛있게 먹는 연습을 좀 더 해야할 것 같다. 연습이 충분한 줄 알았는데 아니야. 


'너 예뻐지고 싶어서 토하는 거야?' 

'응, 세상에 예쁜 애들이 너무 많아. 근데 나는 예쁘지가 않아.' 

'네 예쁨을 인정받고 싶은거야?' 

'응 사랑도.' 

'너는 너를 사랑해?'

'아니,너무 사랑하지 않지. 죽어버리고 싶은 적이 많았어.' 

Jennifer는 무슨 연습이 필요할까. 나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사랑없이도 가능한가. 


영학이가 회상하길, 스물 셋의 나도 지금의 제니퍼처럼 자존감이 현저히 낮은 사람이였대. 그가 그걸 눈치챘었다니, 의외였어. 그때 나는 내 약점을 꽤 잘 숨겼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의 내 자존감 수치에 대해서 말하자면, 녹색불은 켤 수 있을 것 같다. 자존감 뿐만 아니라, 우울의 회복 탄성력도 상당히 좋아졌어. 근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괜찮아졌을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의문이 드는 거야. 이건 '김영학'이 나에게 '사랑'을 맛보게 해줬기 때문인가. 혹은, '나'의 계속된 '불행하지 않기 위한 애씀' 덕분인가. 

만약 '나의 괜찮음'이 '김영학의 사랑'을 먹어야만 생존 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가 없는 거잖아. 


그 때 나는 내가 바닥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 늪지를 빠져 위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마음 먹었어. 그 즈음 김영학을 만난 거겠지. 그러나 김영학이 내게 줬던 것이 내가 원하는 사랑이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그를 만난 이후로도 오래도록 나는 사랑에 목말라 있었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사랑받고 싶었어. 

나는 그에게 사랑받고자 그의 표정을 살피는 대신에, 그에 대한 내 애정이 다할 때까지 그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어. 내 마음이 끝나기 전에 그의 마음이 끝나버리면, 그것은 내가 감당해야하는 서러움같은 거겠지, 그 경험 후로는 남자보는 안목이라도 건질 수 있을거라 자신을 다독이면서 그와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아.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지나고 영학이와 나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봐주는 사이가 되어 갔고, 이제 더 이상 나는 사랑에 목마르지가 않아. 


언니랑 베이글을 먹으면서도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내 걱정을 듣던 언니가 그랬어. '아닐거야.'

'나의 괜찮음'이 '김영학의 사랑'을 먹어야만 생존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대신 영학이를 만난 건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 

제니퍼를 때렸다는 그 쓰레기같은 놈들을 나도 만났더라면 괜찮음을 빚는 게 좀 더 어려운 일이 됐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제니퍼한테 말해주고 싶은거야. '나의 괜찮음'은 결국 내가 빚어온 것이고, 앞으로도 내가 지켜내야하는 거라고. 우리는 사랑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지만, 사랑의 눈길을 기다리는 존재는 되지 말자고.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마동석같은 커다란 남자가 아니라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멋진 사랑을 기다리는 대신에, 내 안의 눈꼽만큼 남은 자존감이라도 끌어모아 보자고. 무엇보다 밥을 야무지고 맛있게 먹자고.


걱정마. 진짜로 말하진 않을 테니까.


2. 두번째 고민-임신, 아이를 가지는 것.

 

생리를 해서 기쁜 적은 처음이였어.

콘돔은 우리의 유일한 피임법인데, 지금까지 영학이는 콘돔 착용 타이밍을 굉장히 잘 맞춰왔거든. 뜻밖의 임신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마지막 섹스 이후로 내 몸이 조금 이상한거야. 평소보다 좀 더 피곤하고 좀 더 배고프고, 뱃가죽이 땡겨오고, 결정적으로 내 질에서 이상한 분비물들을 계속 나오는 거야. 여긴 한국도 아니고, 병원가는 것도 성가신데, 어쩌나 저쩌나 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어. 

여자로서 여자의 몸에 무지한 나는 '임신 초기 증상'이라는 잘 모르는 사람들의 말에 숨이 멈춰졌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식되었다가, 이제 나는 어쩌나로 이내 심각해졌지.  

영학이는 내 얼굴을 보고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어. 그가 몇 번을 더 보채듯 물어서 '임신'같은 말을 꺼냈어. 영학이는 그럴리가 없으니 걱정말라고 했는데, 나는 미드 '프렌즈'의 레이첼 임신 편이 생각나는 거야. 콘돔은 99%만 책임질 뿐, 1%의 예외는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거라고.

영학이는 사서하는 걱정일 뿐이고, 대신 내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만약 증상이 계속되면 한국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나는 갑자기 그를 비난하고 싶어졌어. 

언니 나는 일종의 '임신 염려증' 같은 게 있어. 심기증과 비슷하게. 생리가 조금만 늦어져도 혹시?하는 마음에 불안해지고, 그 불안함에 임신 테스트기를 산 적도 있어.  


정말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임신을 했다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겠노라 말했어. 나는 지금 모든 면에서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고, 언제 내가 그 준비를 마칠 수 있을지도 미정이야. 그것은 세상 무서운 일이잖아.

영학이는 진짜 임신이라면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식이야. '낳아서 키워야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저렇게 쉬운 사람은.

 

언니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대학 때 조별 과제 중의 하나로, 낙태에 관해 찬반 입장을 선택해 토론 한 적이 있었어. 내 입장은 '태아는 이미 생명이다, 낙태는 살인과 같은 것이다, 낳아야 한다', 같은 아주 무지해서 순수한 그런 것이였는데, 가위바위보를 통안 입장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 때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스무살이였고, 임신같은 건 나와 아무 상관없는, 너무 멀고 다른 세계의 단어였거든. 어쨌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던 것 같다. 내 맞은 편에 앉았던 동기는 나의 무식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지,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지금 임신한 사람이 너라도 너는 아이를 낳을 겁니까? 생명 운운하면서요?'묻는거야. 가장 나이가 많았던 오빠인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그가 나를 비난하는 듯한 태도로 하는 질문에 이미 마음이 상했고, 그래서 그 사람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지. '낳을 건데요? 왜요?' 그가 나를 비웃었던 기억이 남아있어.

    

이제 나는 남자친구가 있고, 그와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고, 쌓아올려야 할 커리어 같은 것은 없지만 생계를 위해 풀타임 일을 하고 있고,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일시적일지 장기적일지 모를 입장으로 살고 있다. 내 존재 하나의 버겨움에 벅찰 때가 많으며, 그와 함께하기 위해 내가 양보해야 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돌아버릴 것 같을 때가 많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스무 살이 아니고, 무얼 잘 알지도 못하지만 영 모르는 나이도 아니게 되었다. 눈물나는 고생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땀 흘리는 일을 해왔고, 그래서 번 돈으로 내 입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 음식을 먹이는 생활을 배웠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나는 여행을 꿈꾸며 지도 보는 것을 낭만으로 여기고, 카페에서 혼자 마시는 커피, 일을 마치고 가는 댄스 수업이 너무나 소중한 일상을 산다. 화려한 꿈은 가지지 않지만, 반짝이는 예술을 사랑하고 그것의 일말이라도 내 안에 깨어있길 바란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때 나는 비웃음을 당해도 쌌다는 거야. 낳긴 뭘 낳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아이 낳기'를 선택할 수가 없는 거야. 인생이 선택의 문제를 초월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낙원같은 거라면 순풍순풍 몇 명쯤 낳아두고 커피도 마시고 춤도 추고 편지도 쓰면서 단촐한 가난 속에서도 이쯤이면 됐다 하면서 살텐데, 그게 아니잖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그 아이가 주는 기쁨을 맛보는 대신에, 많은 포기와 책임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야. 몰라, 그보다 더 큰 일이지도 모르지. 


a)아이 낳기,

a를 선택했을 때는, 갓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흔히 말하는 그 인생 최상의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겠지. 얼마나 신기하고 예쁘겠어. 엄마가 되는 기분이 궁금해서, 그 기분만 잠깐 맛봤다가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는 일이라면, 한 달쯤 엄마가 되보는 건 정말 해보고 싶거든. 근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부모가 되는 것은 쭈욱 부모인 채로 사는 거잖아. 그것은 내가 그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책임을 져야하는 거야. '책임' 안에는 희생도 있겠지. 언니, 나는 영학이랑 같이 사는 걸 선택한 이후로도 내가 혹여나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생길까봐 몸서리를 치는 사람이야. '우리 새끼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는 말을 나는 실제로 우리 엄마에게서 들으면서 자랐는데, 나는 그런 북받치는 배부름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아니야. 그것은 너무 끈적끈적한 사이라고 생각되는 거야. 

나는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고, 무엇을 바라고 싶지도 않아.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나와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자식과 부모 사이가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애정을 주고 받는 것을 경험하거나 구경해보지 못해서일까. 넘치는 사랑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희생, 사랑받기 때문에 인내해야 하는 집착같은 건 날 숨막히게 해. 내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거란 보장도 없고, 내 성격상 아마 나는 우리 엄마보다 끈적한 건 더 할 것 같아. 

    

플러스, 나는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못돼. 제대로된?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예를 들어, 아이한테 욕을 하면 안된다고 가르쳐야 할텐데, 그러고 싶지 않고, 섹스는 성인이 되어서 해야하는 거라고 가르쳐야 할텐데, 그것을 알려주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 세상은 곧 망할 것 같다는 내 비관주의를 아이한테 숨기고 싶지도 않아. 그럼 그 아이가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엄마는 그럼 이 망할 세상에 저를 왜 낳았나요? 물으면 어떡할거야? 응, 너희 아빠가 낳자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라고 할 수는 없잖아.  


b) 낳지 않기

문제는,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영학이와 내 생각이 다르다는 거야. 우리 둘 다 동의하는 부분은 '지금은 아니다'인데, 내가 '앞으로도 아니겠다' 쪽이라면, 영학이는 '언젠가는 나도' 쪽으로 갈라서는 거야.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한테 '재협씨는 나중에 아이를 가지실 건가요? 아빠가 되고 싶으세요?' 물으니까, 아이를 가지시겠대. 

'왜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너무 외로울 것 같은데요, 아이가 없으면.'

외로운 인간이 좀 덜 외롭자고 다시 외로울 인간을 낳겠다는 건, 뭔가 억지가 있어 보여. 그렇다고 해서 좀 덜 외로울거란 보장도 없는데 말이야.


근데, 영학이는 외로울 걱정보다도 그저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예를 들면, 아침밥을 먹다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아침을 먹는데 여기 조그마한 아이가 앉아있다고 생각해봐. 너무 행복할 것 같지 않아?' 그럼 내가, '아니, 너는 너무 낭만에 빠져있어. 걔가 밥 안먹겠다고 울고 불고 떼쓰는 건 왜 생각을 못해? 그럼 우린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겠지. 매일 아침을 그렇게 고약하게 군다면 애기가 미운 순간들도 생기고,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몰라.' 그럼 영학이는, '나는 한 번도 태영이가(영학이 조카) 미운 적이 없었어. 뭘해도 너무 예쁘게만 보이더라. 미울 수가 없지 바보야.'

'프렌즈'에서 로스가 벤이 그 작은 손으로 자기 손가락 하나를 붙잡으니까 무지막지 감동하거든. 아, 나도 이제 아빠구나 하면서. 그걸 같이 보고 있던 영학이가 그러는 거야. '오 마이 갓, 저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정말 감격스럽겠지?'

아이에 대한 영학이의 감격은 생활 곳곳에 묻어나. 그럼 나는 생각하는 거야.. 영학이가 저렇게 아이를 좋아한다면 내가 한 명 낳아줘야 하는 걸까? 선물처럼. 

그리고는 얼마 못가 고개를 휘휘 젖지. 내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단 걸 깨달아.


나에게 아이가 없다면 재협씨 말처럼 내 노년은 외로울지도 몰라. 근데 있지 언니,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어차피 우리는 외로울거야.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더 외롭게 하기도 하고 말이야. 

우리에게 아이가 없더라도 나는 영학이랑 속닥속닥 재밌게 지낼 준비가 되어 있는데, 영학이가 꿈꾸는 미래에는 벤처럼 귀여운 아이가 영학이 손가락을 만지작만지작 하나봐.  


a에는 아이를 낳으면 좋을 것들에 대해서 써보려고 했던 건데, 다시 읽어보니까 a와 b를 구분할 이유가 없었어. 온통 나쁜 점들만 써놨어. 

'아이'는 한동안 계속해서 우리 둘 사이의 화두가 될 것 같고, 나는 피임을 계산해준다는 앱을 다운받을 생각이야. 


언니는 나중에 아이를 갖고 싶어? 그렇다면 왜?

   


3. 황정은의 대니 드비토/ 박완서의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남자/ 윤성희의 낮술

'소라소리'라고 소설을 읽어주는 팟캐스트가 있어. 최근에 그 팟캐스트로 몇 편의 소설을 들었어. 요리를 하면서 이를 닦으면서 잠 들기 전에 알람을 맞춰놓고 듣는 팟캐스트를 나는 좋아해. 그렇게 토막토막 소설을 듣고 있으면 세상 평화로울 수가 없다. 


'대니 드비토'에서는 죽은 '나'가 남편이였던 '유도'씨에게 월령으로 달라붙어 사는, 그래서 그가 사는 것을 바라보는 소설이야. 황정은이 월령이라는 존재를 그리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였어. 

월령은 별 형태가 없어. 월령은 선풍기 바람에 정신이 팔려 유도씨를 잃기도 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생강냄새 같은 걸 풍기기도 해. 그렇게 월령은 점점 더 흩어지면서 자기가 누구였는지도 잊어버리고, 끝없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거야. '나'가 죽고 슬퍼하던 유도는 그러나 곧 미라를 만나게 되고 안을 낳고 회사를 잃고 다시 마음을 추스러 만두집이였던가? 생계를 이어하다 미라가 암으로 죽자 얼마 못가 정신을 잃고 병원 신세를 진다. 월령은 유도 옆에 붙어 그 모든 걸 목격해. 유도가 월령이 되어 다시 같이 만나는 그런 날을 꿈 꿨었는데, 자꾸만 흩어지고 사라져가는 월령은 마지막엔 소망하는 거야. 월령은 너무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고, 유도씨는 절대로 절대로 월령 같은 건되지 말라고.


윤성희의 '낮술'은 특이할 것 없는 소재인데, 문장들이 너무 따뜻하더라. '나'의 엄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변기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같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였던 아빠를 만나면서 예정에 없던 '나'를 임신하게 돼. 아빠는 호호 아저씨라고 불릴만큼 좋은 사람이니까, 엄마는 어쨌거나 아빠한테 임신 사실을 알려. 근데 아빠는 겁이 나서, 무서워서 도망친거야. 사는 게 무서워서 비겁하게 도망다닌다는 아빠는 편의점 앞에서 세상 가장 무서운 게 계단이 되어버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술 한 잔을 얻어마시고, 엉덩이 한 대를 얻어맞고, 엄마를 다시 찾아갈 결심을 해. 우리 계단이 무서워서 서로 부축하게 되는 그 날까지 같이 살아보자, 라고 엄마에게 말해. 나는 바보같고 비겁한 아빠가 다시 돌아와서 엄마에게 하는 그 고백이 너무 따뜻하더라고. 

돌아온 아빠는 할머니 치킨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고 '나'를 키우고 치킨 집은 또 장사가 잘 되고 그러다가 배달 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셔. 아빠는 다른 이를 이해하려면 시를 읽어야 한다며 '나'에게 시낭송을 시켰고 집에 오면 사람이 없어도 인사를 해야한다고 했지. 근데 이제 그런 아빠가 없는 거야. '나'는 아빠가 그립고, 그렇지만 한 살씩 또 나이를 먹고, 대학갈 나이가 될쯤엔엄마랑 막걸리를 같이 마셔.


박완서의 소설을 듣고 있으면 아, 그때는 그랬구나, 해. 왜 베라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때는 그랬구나 하는 것보다 더 먼 곳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박완서는 전쟁 중에 친오빠를, 남편을 잃은지 세 달이 안 되어 또 아들을 잃어버렸대. '가장 나종 지니는 것'이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라면,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을 잃은 아내의 이야기야. 

6.25 전쟁 직후에 결혼한 부부가 그 오랜 역사를 거쳐 노년기에 접어드는데, 남편이 암에 걸린 거야. 그 옛날 자신이 유일하게 남편에게 장만해준 혼수가 중절모였거든. 폐암으로 남편 머리가 계속 빠지자, 자식들이 모자를 하나씩 사오는데, 물론 요즘 모자는 그 때 그 중절모랑은 달라도 너무 달라. 그래도 남편은 자식들이 사온 모자들을 차례차례 잘 쓰고 다니는 거야. 그걸 보면서 아내가 옛날 그 중절모를 생각하게 되고, 그들이 만난 시절과 살아온 시절, 그의 마지막을 회상하는 얘기야. 노년에도 부부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저런 모습으로 사랑하지 않을까.

          

세 편의 소설 모두 너무 좋았다. 

황정은의 소설은 변역된 외국 소설을 읽는 것 같아. 그의 소설에 매번 따라붙는 말이지만, '새로워'. 몇 년 전에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을 때, 이런 소설도 있구나 했거든. 소설이 분명 소설로 쓰였는데 시를 읽는 것 같았어. '대니 드비토'를 들으면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쓸쓸한 인간 운명에 대해 울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게 좋았어. 그것을 읽는 나도 담담해질 수 있어서. 황정은이란 사람도 담담할 것 같다, 무엇에도.

낮술은, 연약한 인간들이, 그럼에도 일말의 선택을 행하고, 특별히 뛰어날 것 없지만 나쁘지 않게 살기 위해 애쓴다는 게 좋았고. 제목도 너무 좋잖아. 낮술.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감동적이야 언니. 아주 짧은 단편이라서 인터넷에서도 읽을 수 있더라고. 내가 다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듣다 잠들었나봐. 결말이 생각나질 않아서 언니한테 편지쓰는 와중에 찾아 다시 읽었는데, 와. 당신은 여덟 개의 모자로만 남은 게 아니였어.




    

4. 

오늘 즐거움- 소라소리 책읽어 주는 팟캐스트. 언제나 이동진의 빨간 책방. 주문한 견과류를 받음. 

요즘 성가심- 영어공부. 마이너스로 떨어지기 시작한 날씨와 아직 사지 못한 겨울 자켓. Ballet barre workout을 계속할지, 아니면 난이도 상 barre belle 수업을 들을지 사이에서 고민만 하고 둘 다 하지 않고 지낸지가 오늘째로 6일이 되어간다. 더 추워질 날씨에 대한 긴장감.

    

한국도 이제 곧 추워지겠다.


또보자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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