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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Nov 14. 2018

[편지] <빵이 다가 아닌>

H에게

시가 너무 좋더라고. '편향나무'가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봤는데, 없는 나무야.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를 두고 편향나무라 이름 붙였을까. 머리채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한 사람이 불면의 밤마다 살아서 갈 수 있는 한 쪽 끝을 향해 피로를 모르며 걸어갈 때에

 한 사람은 이불을 껴앉고 모로 누워 원없이 한없이 숙면을 취했다.

 이 두가지 일을 한 사람의 몸으로 동시에 했던 시간이었다.'

김소연 시집 <i에게>에서 시인의 말이야. 내 머릿 속에서는 다시 편향나무가 그려져.


'배낭을 메고 내가 나를 거듭 떠났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서 얼굴을 버리고 돌아와 얌전하게

생활을 거머쥐는 나에게로 벚꽃잎들이 달라붙을 때 '얇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했다'


나도 얌전하게 잘 지내고 있어. 이런 안부 전함이 무색할만치 오래도록 별 일이 없었다. 언니도 알다시피 그래. 무엇이 참을 수 없게 가벼울 때는 그저 말을 하기 위하여 떠들다가, 또 얇이를 깊이 생각하는 등의 에너지 소모가 큰 벽에 포위되었을 때는 되도록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 채 침묵으로 나를 위로하면서 지내.

   

2. 카인드

그나마 새로운 소식을 찾아내자면, 지난 주에 영학이가 이민관으로부터 인터뷰 전화를 받았어. 

새로운 대신 재미는 없겠다. 그래도 굳이.


영학이가 진행 중인 비자는 Nominee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알버타 주정부로부터의 Nomination, 지명을 받아야지 캐나다 연방정부로 서류가 진전될 수 있는 이민 방법 중의 하나야.

어제 받은 인터뷰 전화는 우리가 꽤 오래도록 기다려 온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한 달 전쯤부터 틈틈히 인터뷰 연습도 해왔어. 거절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인터뷰를 줄곧 염려해오고 있었어. 아무래도 영학이의 영어 실력이 안심이 안되는 거야. 내 염려와 질타로 인해 최근에 영어 쉐도잉도 시작한 그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영어가 불안했어.


그러던 중 예상보다 일찍 인터뷰 전화를 받은거야.

전화기를 부여잡은 손이 떨려와서 나머지 한 손으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면서 전화 통화를 했다는 그의 말에, 그 앞에선 푸하 웃고 말았지만, '그렇게까지 떨릴 일은 아닌데, 하마터면 쓸데없는 핀잔을 쏟아낼 내 입을 꾹 다문다고 애썼어.

이민관이 유별난 질문을 하지는 않았더라. What's your date of birth?가 첫번째 질문이였대. 영학이 말로는 이민관도 악센트가 있는 사람인데다 자신도 너무 떨리는 탓에 'date of birth'란 말을 한번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대. sorry? 다시 묻는 영학이한테 친철한 이민관은 'date of birth'를 아주 천천하고 또박또박하게 다시 발음해주더래. 몇몇 질문을 더 거쳐 인터뷰는 끝났어. 바뀐 집주소를 업데이트해야하는 것 말고 우리가 뭘 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건 이제 없어. 운에 맡길 뿐이야.

우린 비자 진행을 에이전시를 통해서 하고 있는데, 이번에 주소를 업데이트하는 일도 에이전시가 처리해줬어. 영학이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우리 새집주소를 에이전시 직원 메일로 보냈다고 했어. 

근데 언니, 아무래도 영학이가 못미더운거야. 

'네 메일에 한 번 들어가봐. 네가 보낸 주소가 맞나 다시 확인해보자.' 

역시나. 주소가 틀려. 주소가 틀린거야 언니. 이민관에게 자료를 업데이트 할 때마다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거든. 일주일이 될 수도 있지만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이런 저런 자료 검증을 더 당하다가 비자가 거절될 수도 있는거야. 응 나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쪽의 사람이니까. 

'73814AVE'랑 '738 14AVE'는 전혀 다른 주소잖아. 영학이는 스페이스를 쓸 줄도 모르는 거야. DATE OF BIRTH도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어야 했는데, 주소도 잘못 보내서 다시 보내야하는 거야. 보스에게도 인터뷰 전화가 갈테니 미리 서로 입을 맞춰놔야 된다는 내 말에 갸우뚱하던 그였기에, 그를 대신하여, 나는 영학이 보스와도 몇 차례의 메일을 주고받는 오지랖을 떨어왔더랬어. 근데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데잇오브벌쓰를 못 알아듣는 영학이가 주소도 잘못 보냈다고 하니까 내 가슴은 더 답답하고 입은 무슨 나쁜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한거야.

영학이랑 나는 비자와 관련된 일을 처리할 때마다 싸우지 않은 적이 없어. 영학이가 화나는 이유는 내가 자신을 너무 무시한다는 데에 있고, 나는 그의 초등학생보다 못한 일처리들에 뚜껑이 파르르 열리는 적이 많아.


영화 '어바웃 타임'에 보면 결혼하는 Tim에게 축하인사를 하는 아빠가 그런 말이 해. 

"I'd give one piece of advice to anyone marrying. We're all quite similar in the end.

We all get old and tell the same tales too many times. But try and marry someone kind.

And this is a kind man with a good heart.----"

결국에는 친절한 사람을 만나라는 건데, 왜냐면 나중엔 외모도 시들해지고 지성도 지루해지고 결국은 비슷비슷한 그저 인간으로 늙어가는 존재들이 우리들 일테니까. 


그래서 참았어 이번엔. 무슨 말이라도 해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대신에 입을 꾹 다물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 내 맘처럼 잘 될 수 없고, 솔직히 내가 비자를 진행하는 당사자도 아니지 않나. 내가 도움이 되면 좋은 거지만 전두지휘하려고는 들지 말자. 그를 존중하자, 존중하자,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 삶에서는 몇 번 더 결정적 순간들(결정적이라 믿는 순간들)이 있을까. 그때마다 그것을 마주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누군가의 삶의 질은 그 결정적인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대하는 태도에 좌우되는 것이라는 생각. 내가 마주해야하는 결정적 순간이란 것은 내 의지로 탄생되기보다는 삶의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것은 그저 '벌어지는 일'일 뿐이라면, 나의 태도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는 것. 


나는 교대에 수시로 지원했기 때문에 면접을 봐야했었지. 그 때 기억이 생생하다. 미은이라는 고3 같은 반 친구,전혀 모르는 다른 학교 아이 한 명, 나. 세 명에서 네 명의 심사관을 앞에 두고 본 면접이였어. '당신은 수능 시험을 보는 중입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당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컨닝을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질문지를 뽑고, 그것에 답변하는 형식이였는데, 내가 첫번째 대답자는 아니였던 것 같아.  마음 속으로 침착하자, 아직 시간이 있다, 생각하면서 내 답변을 비교적 차분히 정리했거든.  

'저는 시험이 끝나고 그 친구에게로 가서 제가 본 것을 말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잘못을 밝히라고 말할 거예요. 그 친구가 제 절친한 친구라면, 그 친구의 인생에 있을 어떤 사건들 마다에서 그가 매번 부정한 행위를 하는 것을 가만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눈감은 나쁜 행동을 다음 번에 다시 행하는 것은 너무 쉽고, 그것은 그 친구의 인생에서 좋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똑부러지고 재수없게 잘 대답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내 알 바가 아니지. 내 절친이든 말든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냐. 뭐 그 친구를 만나거나 그 친구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들을 때마다 컨닝하는 그 모습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를 찝찝함에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그 아이의 삶에는 위선이 많을 거라는 식의 판단을 내리는 게 다일 거야. 

근데 또 저 답변이 영 거짓부렁이는 아니였나봐. 

인간은 잘 바뀌지 않는 존재라는데 동의해. A라는 상황에서 B라는 행동 패턴을 보인 사람은 A'의 상황이 왔을 때에 B'의 행동 패턴을 다시 보여줄 확률이 커. 그리고 그의 행동 패턴은 내재화되는 거야. 결국엔 그것이 그 사람을 만들어가겠지.


내가 한 번 옳고 나면(옳다고 믿고 나면), 다음에도 내가 옳고, 그렇게 매번 내가 옳기 때문에 그를 그르다고 말해.

영학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인 것은 아닌데, 비자문제를 둘러싸고 언쟁이 있을 때마다 나는 좀 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의 모든 태도가 이해되지 않고, 나의 모든 결단은 너무나 옳다고 생각하는 거야. 속마음이 그럴지라도, 그와 대화를 할 때는 타협점을 찾아 고개를 좀 끄덕이기도 하고 웃어넘기는 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안돼. 그런 속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좀 더 거칠어지고 공격적이게 되고.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김영학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중요할 필요는 없는데, 그걸 매번 까먹어. 

근데 내가 앞으로도 김영학이랑 여러 번의 결정적인 순간을 함께 타넘을 예정이라면, 나는 분명 이 몹쓸 옹고집을 버려야 할거야. 결정적인 순간들은 그것이 결정적인 것처럼은 보이지만, 후에 멀리서 봤을 때는 삶의 한 순간들에 지나지 않으나, 정작 매순간을 함께하여 결정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않는 이 사람에게 내가 주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서도 돌처럼 무거운 후회가 될 것 같다. 


그 결정적 순간에 대한 나의 태도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면, 비자를 신청한 이후로 이 모든 진행 과정에서 나는 정말 별로인 사람이였던 게 확실해. 

워크비자를 기다리던 작년 겨울을 떠올려본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안절부절 옴짝달싹 불안을 감추지 못했고, 결과가 좋은 쪽으로 풀리지 않을 것 같았을 땐 잔뜩 찡그린 얼굴로 영학이를 탓했어. 막상 비자를 받고 나서는, 다음으로 진행되어야할 비자 생각에 맘껏 기뻐할 기회도 스스로 빼았았지. 

별로인 사람이 금세 'kind'하게 바뀔 수는 없어. 그리고 아무래도 나는 'kind'한 종류의 사람이 되기는 좀 어렵지 않겠나 싶어.

대신에 무례한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뭐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 좋을지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오늘처럼 입을 꾹 다물고 심호흡을 하면서 무례한 말들을 다른 구멍들로 내보내는 것을 좀 더 해보려고. 



3. 영주권이란.

이주도 안되서 결과가 통보됐어. 

영학이는 Nomination을 받았고, 이제 우리는 연방정부에 Permanant Regidency를 신청할 준비 중이야. 

마음껏 기뻐했어.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가장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했어. 연방정부에 PR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면 개인 신상 및 범죄 기록, 건강 기록을 요구받는데, 그것들만 별 문제가 없다면 PR카드를 받게 될 것 같아. 


엄마랑 삼촌에게 전화해서 한국으로부터 필요한 내 신상자료들을 부탁했어. 왠지 엄마보다는 삼촌한테 부탁하는 게 믿음직한데, 삼촌은 내 직계가족이 아니라 결국 두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했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삼촌은 거기서 사는 게 한국보다 낫냐고 묻더라. 엄마는 뭣 때문에 그 자료들이 필요한건지는 묻지도 않고, 엄청 중요한 일이라는 내 말에 자기가 실수없이 잘 보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어. 

아직 우편물을 받지는 못했는데, 우리 삼촌은 당장 필요한 급한 서류라는 내 말에 DHL, 가장 빠른 우편으로 서류들을 보냈대. 내가 연신 고맙다는 말만 하니까, 그 말도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다고, 내가 삼촌인데 이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그만 말하래. 엄마는 그럼 한국에는 언제 올 수 있는 거냐고 물어. 비자를 받으려면 앞으로 1년은 걸려서 한동안은 못갈거라니까 그럼 안하면 안되냐고 해. 


영학이 엄마는 '내가 안해주면 거기서 안 살 것 아녀?' 말은 하시면서, 일은 다 해주셨어. 그래도 너무 서운하신가봐. 영학이는 여기서 살려는 게 아니라, 영주권이 있으면 대학이 반값이라 공부를 하려는 목적이라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거라고 그의 엄마를 위로했어. 

'우리 둘 다 너무 이기적인가봐. 가족들이 원하는 건 어떻게든 가까이 지내는 것 뿐인데,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만 하니까.' 영학이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해. 나는 별 대답을 하지 않았고,그의 말에 동의하지도 않아. 


같이 일하는 Haliey도 내게 후회하지 않을거냐는 질문을 해. 영주권을 신청하기까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데, 그 모든 비용을 감당하고 여기서 살게 되었을 때 가족이 그리울 것 같지 않냐면서 말이야.


나는 후회할 걸 생각해 본 적 없고 내가 특별히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엄마가 그립고, 엄마를 생각할 때면 자주 눈물이 날 것 같아. 나 말고 다른 자식이 하나 더 있는 엄마라면 좀 덜 신경쓰일지도 모르나, 어쨌든 나는 그녀의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딸이고, 그래서 엄마는 나를 오직 하나처럼 사랑해 줬어. 내가 엄마의 시공간에서 빠져버리면 엄마가 잃게 되는 것은 너무 크잖아. 전부였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는 저마다의 삶에는 저마다의 슬픔의 몫이 있는 거라고, 그것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질 수는 없는 거라고 변명해. 내가 그녀의 딸이라서 엄마가 감당해야할 슬픔의 몫이 있다면, 그건 엄마 몫의 슬픔이라고 변명해. 마찬가지로 내 선택으로 내가 감당해야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도 내가 흘리고 닦아내야할 내 몫인 것처럼. 자식 도리를 위하여 내 인생을 그녀 인생 옆에 묶는 희생을 마땅히 하였을 때, 나는 좀 덜 이기적인 인간이라 불릴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때마다 내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어떤 결정들을 내리고 그것을 해나가면서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기회비용들을 스스로 감당하고 좀 덜 오만하고 좀 더 인간적으로 사는 것 밖에는 없지 않나.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뭐, 영학이가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어. 근데 영학이가 나마저 하고 싶은대로만 하면서 살려는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달갑지 않다.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하고 싶은 것을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를,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에 매달려 애쓸 뿐인 인생이야. 그리고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것이야.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게. 지금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그저 가까이 함께 지내는 것뿐인 것은, 지금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 뿐이야. 대학도 안 나온 우리 둘이서 한국에 돌아가 최저 시급을 받고 하루 9시간, 주 6일 풀타임 일을 했던 일상을 생각해본다. 여름엔 사우나처럼 뜨겁고 겨울엔 난방비를 아낀다고 선풍기 히터를 켜고 꺼가며 잠에 들었다. 엄마는 결혼도 안 하고 남자랑 산다고 나를 창피해했고, 나는 광주에서 대구가는 버스값도 아까워했지. 일을 하고 취미 생활로 운동이라도 하는 날에는 밤 9시에 집에 들어오고, 아무래도 일과 운동을 함께 하기에는 너무 버겨운거야.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일하는데 운동까지 하는 것은 사치같은 것이였지. 일을 많이 하고, 일을 많이 하는 나와 너를 서로 위로해주고,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 돈이 없었을 뿐 불행한 시절은 아니였는데, 내 가족들은 앞없는 내 불행을 염려한답시고 한마디씩 말을 붙여 내 앞날을 예견해주는거야. 가족들이 내게 원했던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거였어. 여전히 그들은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무지한 사람들이야. 그 무지에 대해서 무지로 답하는 것, 그리고선 '얇이를 깊이 생각하는' 일 따위를 하며 내 일상을 사는 것이 이기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지.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앞이 얼마나 잘 보이냐고 물으면, 삶은 원래부터가 불분명한 방황같은 것 아냐? 하고 치기어린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여전히 내 앞날은 잘 모르겠고 잘 알고 싶은 의지도 없다. 

나는 내가 '캐나다'에 사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 캐나다가 좋은 이유는 아직도 내게 낯선 곳이기 때문이야.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낯선 것 속에서 이방인인 나를 느끼는 것이, 나를 좀 더 살아있게 한다면 이해가 가? 여전히 영어는 내 혀에 녹아들지 않고, 이들의 문화로부터 나는 부자연스러운 사람이야. 새로워서 눈여겨볼 것들이 많은 이방인의 생활은 허무와 권태를 다독이는데 좋은 진정제야. 


'이민해서 뭐할래? 어차피 주류 사회에 끼지도 못하면서 그릇이나 씻어야할 생활을 해야할텐데.' 이민의 가치가 10억은 될거라고 말했던 영학이 친구는 나중에는 또 저런 말도 영학이한테 하더래.

나는 이민의 10억쯤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처럼 주류 사회에 끼지 못할 내 운명에 대해서도 예상해보질 않았어. 다행인 건 영학이나 나나 한국에서도 주류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주류의 맛을 몰라. 

나는 주류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대신 이들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어.

또 나는 빵을 많이 먹는 것보다는 장미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것을 그리는 일을 잘하고 싶어. 

우리 두 사람의 월급으로 매번 유기농빵을 사먹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지만, 훨씬 싸고 질좋은 퀴노아를 사서 빵을 만들어먹는데에는 문제가 없어. 레스토랑에 가서 값비싼 음식을 자주 사먹을 형편은 되지 않지만,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사다 요리해먹는데에도 문제가 없어. 하와이 휴가는 아무리 생각해도 금전적으로 부담되어 포기해야했지만, 멕시코는 갈 수가 있는거야. 지금 당장 차를 살 형편은 안 되지만, 차가 필요할 때는 렌트는 할 수 있어.  카페에서 20%의 팁을 주기는 머뭇거려지지만, 10%는 티핑할 수 있고, 서점에서 사고 싶은 책이 생길 때마다 아마존을 켜고 가격비교를 해야하지만, 한권을 다 읽을 때까지 참았다가 아마존 최특가로 책을 살 수도 있는거야. 많은 돈을 저축하는 것은 겁나고(다 못쓰고 죽을까봐) 그럴 형편도 안되지만, 달마다 정해진만큼의 돈도 저축하고 있어. 무엇보다 나는 이 타협에 만족하는 편이야.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하고, (늙어서도 살아있을 가능성을 열어뒀을 때) 나는 누구에게도 경제적인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러나 먹고 사는 일은 바탕이 되어야지 우선이 되어서는 안돼. 돈이 많아서 누릴 수 있는 자유란 것은 존재하지만,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빼앗기는 자유도 있는 법이고, 인간은 중용을 지키기보다는 과욕을 부리기 쉬운 존재라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노력은 좀 더 많이 벌기 위한 집착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생각해. 돈은 장미를 사다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돈은 장미의 존재에 대해서마저 잊게 만들어.

         

사장이 전해준 노미니 승인 소식을 듣고 나서, 영학이도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겠더래. 

그리고선 다시 라면을 만들러 주방으로 돌아온 영학이 머릿 속에서 계속해서 같은 질문이 그를 콕콕 찌르는거야. 

'그래서 영주권을 받으면 뭐?' 


나는 영주권을 받던 말던 영어공부를 계속하겠고, 장미에 대한 잡스런 상상도 계속할거야. 영어가 혀에 녹아들어서 내 혀가 자기멋대로 술술 영어를 내뱉는 날이 오거나, 더이상 상상을 포기하는 일이 닥친다면, 그때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야하지 않을까. 그럼 또다시 나는 변방에 사는 이방인이 될테고, 나는 독일어를 배우면서 독일 사람들의 절제된 친절함에 다시 어색해지겠지. 캘거리 사람들의 오버 액션 친절에 껄끄러웠던 것처럼 말이야.    

      

나는 워홀을 시작한 이후에야 세상이 한국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배운 것이 지구 공통 미덕이 아니라는 것, 내가 옳다고 여겼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지루하고 하찮은 소음뿐일 수도 있다는 것, 세상 곳곳에는 언제나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삶 뿐이라는 것, 근데 좀 더 살아보니까 이건 뭐 내 삶이란 것도 통제와는 거리가 멀고 단지 살 뿐이라는 것, 단지 살 뿐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고 도대체가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면 그나마 나는 나이도 몸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재밌게 살다가는 것을 선택하고 싶어.


'그래서 영주권을 받으면' 영학이는 정말로 대학을 가겠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로 벌어질 일일지는 잘 모르겠어. 

어쨌거나 우리 둘은 오랜만에 맘놓아 좋아했고, 그걸로 됐지 뭐. 그지?



4. 

-좋아서 휴가를 가기로 했어.


알쓸신잡을 좋아해. 최근에 본 편에서 김영하가 서핑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 나를 사로잡았지. '서핑하는 분들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 그 파도를 타는 것 말이죠. 파도를 타는 그 순간에만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 파도를 다시 타고요.' 

발리에서 서핑을 배운 적 있어. 반나절 잠깐 탔던 것 같던데, 혹시 넘어져서 보드랑 부딪힐까봐 보드 위에 발을 얹는 것도 무서워했어. 용기, 균형감각, 유연성, 파도에 대한 판단력 등등 의외로 다각면의 능력이 있어야 탈 수 있는 고급 스포츠였어. 뭐든지 해보지 전까지는 모르잖아.

좋은 파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몰려온 서퍼들이 속초 바다에서 시원하게 파도를 타는 모습을 거의 감탄하며 지켜보던 김영하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어. 그리고 나도 갑자기 파도를 타야겠는거야. 캘거리는 이제 추워지기 시작하고, 근 1년동안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나서는 더더욱 충동적으로 파도든 뭐든 타야겠는거야. 

그래서 하와이였어. 12월은 하와이에서 제일 서핑하기 좋은 달이거든. 

근데 하와이는 비싸도 너무 비싸더라고. 

갈라파고스, 페루 등등 여기저기를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멕시코를 가게 될 것 같아. 비행기값이 싸도 너무 싼거야. 인당 왕복으로 400불이 안들 것 같아. 

지금 나는 물과 태양이 필요해 언니.

  


-유발 하라리의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를 읽고 있어. (죄와 벌은 포기했다.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게 거의 불가능해.)

 어쩌다가 검색창에 유발 하라리를 검색했는데, 그가 비건에다가 게이, 최근에 토론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 유태인인데 비파사나라는 명상법으로 하루 2시간씩 명상을 한다는 것을 읽었어. 아 왜 그를 검색했는지 기억났어. 서점에서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를 잠깐 주워 읽었거든. 근데 영어가 그렇게 어렵지않게 이해되서, 아마존에서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거야. 

어쨌든 구글이 얘기해주는 그의 삶이 되게 인상적인거야. 바로 책을 주문했어.


Facism도 망하고 Communism도 망한 이후로, liberalism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우리에게 지금 현대 사회는 다시 Liberalism의 몰락을 맞이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꿈꾸는 대신 세계종말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되는데, 정말 우리는 apocalytist 밖에는 될 수가 없는가, 같은 질문에 다른 시각을 보여주려는 책 같다, 지금까지 읽기로는.


삼촌이 사피엔스를 읽고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책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라도 사피엔스도 읽어보려고. 물론 이 책을 다 읽게 되면 말이야.



5.

언니 학교 생활은 어때? 한달 후에는 방학이겠네. 겨울 휴가 계획은 있어? 가고 싶은 곳이라도.


'영어책 한권이라도 끝내봤니?'이랑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다 읽었어? 

집나가기로 한 건 어떻게 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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