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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Oct 10. 2017

폴란드 학교의 영어 수업에는 ooo 가 없다

적게 공부하고 많이 아는 그들의 영어공부

(앞의 포스팅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는다고?'


폴란드 고3인 H 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싶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한창 경쟁과 시험에 찌들어 있어야 마땅할 고등학생에게 중간 기말고사가 없다니. 그럼 학생들이 과연 공부를 할까? 라는 생각이 스쳤다. 황당해 하는 내 표정을 보며 H 는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대신 작은 시험을 자주 봐요. 내일도 단어 시험이라 학교에서 내 주신 분량만큼 외워가야하구요. 가끔은 예고없이 그냥 시험을 보기도 해요. 평소에 늘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중간 기말고사처럼 내용을 쌓아뒀다가 한꺼번에 시험을 보는 구조가 아니었다. 조금씩 자주 학생들이 복습하도록 유도하여 배운 내용을 켜켜이 쌓아 올려주는 것이 이들 시험의 목적이었다.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왕창 외웠다가 시험지를 제출함과 동시에 머릿속의 지식도 모두 지워지는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잦은 시험이 배움에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두달동안 배운 내용을 몽땅 복습하는 것과 적은 양의 내용을 자주 보는 것 중 어떤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될 것인지는 분명해 보였다.


폴란드 학생들은 정장을 갖춰입고 마투라 시험을 치른다 


이어서 H 는 학교에서 쓰는 책이라며 꺼내서 보여주었다. 마투라 시험 형식을 그대로 따른 내용으로 일종의 시험 준비 수험서 였다. 그런데 McMillan 출판사 이름이 찍힌 평범해 보이는 책은 아무리 봐도 교과서 같아 보이질 않았다. 전면 컬러의 종이질이나 세련된 표지  그리고 책의 구성 등이 시판되는 영어회화 책에 뒤지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폴란드 학교 영어 수업에는 교과서가 없었다. 마투라 시험을 준비시켜 주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지 교재가 될 수 있다. 교재 선택은 전적으로 교사의 재량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고등학교 영어 수업과 폴란드의 그 것 과의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폴란드는 대입을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학교 안에 있었다.  수업을 따라가며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곧 고등학교 졸업 시험이자 대입 시험인 마투라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 된다. 반면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소위 내신 영어가 반드시 수능준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는 내신 영어와 대입에서 치뤄지는 수능영어 사이의 간극을 매우기 위해 학원이라는 다리가 필요하게 된다. 따로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대입 시험를 치를 수 있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구조가 우리나라에서는 왜이리 어려울까. 거기에는 바로 학교교육과 대입시험 간의 일관성이 있었다. 폴란드의 고등학교 영어수업에는 이 일관성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마투라 영어를 준비하는 과정이 대입 뿐 아니라 영어를 언어로서 활용 능력까지의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듣기, 읽기 뿐 아니라 쓰기 말하기 까지 전면적으로 영어 를 평가하는 마투라 시험을 충실히 준비하면 영어회화까지 느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즉, 학교 영어 수업으로 내신, 대입,영어회화까지 모두 동시에 배우는 셈이다. 내신영어 수능영어 에 이어 토익영어 다시 영어회화 학원까지 모두 다른 과목인 마냥 따로 배우고 있는 우리나라 영어 수업을 떠올랐다. 우리가 내신영어 수능영어에 그토록 에너지를 쏟았건만 왜 다시 영어회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투라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해요" 라고 하는 H의 말이 "마투라로 공부하면 영어를 할 수 있어요." 로 들린 것은 아마도 학교 내신 영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도 영어를 입밖으로 말하기 어려운 대한민국 영어 수업의 현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용두사미 식의 조기교육보다 제 때에 배우는 적기교육이 재조명되는 지금. 언어학습의 최적기는 바로 십대 시기로 보고되고 있다. 언어 습득의 결정적인 시기인 십대의 영어공부 내용과 질은 현실적으로 대입시험의 방향으로 수렴될 수 밖에 없다. 대입 시험이 언어의 생산(다시말해 의사소통을 위해 써먹기 위한 영어)과 직결되도록 만들어진다면, 대입시험을 학교 수업 내에서 자연스레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온국민이 내신 영어, 수능영어, 또 영어회화 학원을 십년이 넘도록 전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감히 생각해본다. 



백문이 불여일견 마투라 영어 시험을 직접 치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수능 세대 토종 한국인, 폴란드 국가 영어시험 체험기> 가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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