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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Mar 31. 2020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코로나와 온라인 수업

온라인 수업과 아들내미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6학년 아들, 꼬박 한 시간을 수업을 들었는데 기본적인 내용도 숙지가 안 되어 있었다. 핵심 내용이 있고 이를 설명하는 근거가 있을 텐데 주변 정보만 몇 개 운을 떼는 정도더라.




마치 수업을 들은 시간이 공중분해해버린 느낌이다. 아예 없었던 일처럼 말이다.


내가 들은 수업 내용, 어디로 갔을까?


결코 선생님 탓이 아니다. 영상 강의가 듣는 이는 1시간 이어도 만드는 이의 시간과 에너지는 몇 배 이상이 들어간다. 1시간 길이라고 1시간짜리 노력이 결코 아님을 알고 있다. 학습 자료를 만들어주시는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내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일방 전달로는 도저히 학습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유튜브나 칸 아카데미, ebs 면 충분할 것이다. 단지 듣는 것으로는, 일방적인 전달로는, 한쪽만 말하는 짝사랑으로는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 되면 참 배움이 간편해질 텐데. 애초부터 인간은 상호교류를 하도록 디자인되었지 싶다.


성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짝사랑 학습으로만 배운 내용은 도저히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다행이다. 학습 피라미드를 보면 짝사랑 학습이 아들내미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강의로는 5퍼센트밖에 안 남는다니. 이 정도라면 배운 내용은 거의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다.


누구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한다. 이 것이 가능하려면 학습자가 움직여야 한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을 넘어 학습자가 가르치는 '주도전객' 수준의 학습 방법은 필수이다.


나도 처음엔 "알아야 가르치죠"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남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알아야 할 부분, 빈 구멍을 촘촘히 게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영어, 설명으로 배움이 가능하다면 나는 종일 책 한 권을 주욱 설명하면 그만이다. 강의만으로 배움이 가능했다면 난 온라인 강의 주욱 녹화해두고 '듣고 알아서 하세요.' 했을 거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특정 누군가가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소질이 없어서도 아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특징이다. 배워도 늘지 않는 것 같다면 내가 지금 어떤 방식으로 배우고 있는지 위의 학습 피라미드에서 골라만 봐도 답은 나온다.


가만히 앉아 듣는 것이 편하긴 하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배움은 쌍방향 교류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실수하고 해 보고 피드백받고, 설명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의 스파크는 배움의 질을 결정한다.


배움, 짝사랑으론 이루어지지 않더라.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는 진짜 배움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강사가 아닌 배우는 이가 주인공이 되는 학습과 배움, 그 설레는 과정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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