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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윤 Oct 24. 2017

잘 지내니? 의 재구성

한폴미 삼국 토론

어쩌다 삼자 토론

오늘따라 안개가 자욱했다. 오랜만에 시내에서의 약속이라 트램에서 내려 바삐 발을 움직였다. 피자집 부베 에 도착해 '진도브리'(안녕하세요의 폴란드어) 인사를 건넸더니 역시나 이 곳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이 돌아온다. 화덕에 바로 구워나오는 따끈하고 쫄깃한  피자덕에 점원의 불친절함은 금새 잊었다. 역시 나답다.


폴란드 출신인 엣자Edzia(이하 폴), 미국에서 이 곳 폴란드로 온지 3년이 넘어가는 레이첼Rachel(이하 미), 그리고 토종 한국인인 나(이하 한) 이렇게 셋이 오랜만의 수다로 회포를 풀다 자연스레 문화차로 화제가 옮겨갔다.


'잘 지내니 How are you'의 속 마음!?

폴:
How are you? 를 너네(미국인) 는 별 의미도 없이 물어보는 것 같아.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 질문을 하는데, 물어보는 사람도 상대방에게 관심도 없으면서 그냥 던지는게 뻔하고 대답하는 사람도 그냥 괜찮다고 말해버리잖아. 너무 진정성이 떨어지는 대화 아니냐?

우리는 아예 가까운 사람 아니면 잘 지내냐는 질문 자체를 안 해. 만약 낯선 사람에게 '잘 지내냐How are you.?고 물어보면 상대방이 엄청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나도 경험을 떠올려보니 '잘 지내?' 라는 한국어 질문은 친분이 있어서 근황을 알고 있을 만한 지인에게나 하지 누구에게나 하는 것 같진 않았다.



:

그렇긴 하지. 우린(미국인들) 가는 곳 마다 말을 거는거 같아. 지난 번에 (미국에 있는) 집에 갔었는데) 기차역에서 기차 시간표를 한참 동안 보고 있었거든? 근데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옆에 오면서 "어허, 이거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는데요~." 라고 나에게 말하는거야. 내가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고 그냥 시간표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굳이 와서 말을 붙이는게 그제서야 내 눈에도 신기해 보이더라고.  나도 폴란드에 몇 년 있다보니 반쯤은 외국인이 되었나봐. 전엔 당연하다 생각했을텐데 이제 이런게 다 눈에 띄네.


한:

정말 놀랐던게 미국인들은 옆 사람에게 말을 안 거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건가봐. 누가 커피숍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도 '잘 지내'라고 물어보길래 난 원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지. 나중에 물어봤더니 처음보는 사람이었다는거야. 미국인들은 Hi.How are you? 까지가 기본 인사인가봐.


폴:

그러니까. 그렇게 친분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잘 지내냐'고 물으면 그럼 그냥 괜찮다고 대답해야지 뭐라고 말하냐?


폴란드 친구의 말을 들으니 세계표준일 것만 같은 미국문화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게 한국인인 나만이 아닌 것 같아 청량 음료수를 마신 듯한 시원함이 있었다.


미:

How are you? 에 대한 대답은 그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 가까울수록 솔직하게 말하겠지.





어디까지가 친구?


: 

미국 사람들을 보면 놀라운게 엄청나게 말이 많다는 거야. 미국인들은 가는 곳 마다 친구를 만드는 것 같아.


미:

말이 많다는 데는 사실 나도 동의해. 작년에 오랜만에 미국에서 폴란드에 온 대학생 그룹을 만났는데 그 자리가 어찌나 시끄러웠는지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우리 말이 참 많은 거 맞아.


폴:

폴란드어 '친구'는 영어의 친구와 의미가 꽤 달라. 영어에서는 누구든지 다 친구지만, 폴란드에서는 꽤 가까운 관계가 된 후에야 친구라고 하지.


미:

우린 진짜 다 친구라고 해.지인acquaintance 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걸 실제로 누가 쓰냐? 아는 사람은 몽땅 다 친구고 친한 친구, 제일 친한 친구 식으로 형용사를 써서 구별을 하는 정도야.


한:

우리 나라는 인간 관계에서 나이가 많이 중요해서, 나이에 따라 쓰는 언어 표현이 달라져. 한 두 살 차이라도 말이지.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약 아이들에게 "너네 친구냐?" 라고 물어보면 아마 "제가 형인데요" 라고 대답할지도 몰라. 친구의 의미를 친분의 정도 보다는 동갑이냐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일반적 인 것 같아.


한두살 차이도 사용하는 어투가 달라진다는 말에 둘 다 눈이 동그래졌다. 게다가 '친구'의 의미가 나이에 까지 번질 수 있다는 내용에는 신대륙을 발견한 표정들이었다..

한:

내가 느낀 폴란드인들은 낯선 이들에게는 로보트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일단 도움을 요청하거나 사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면 정말 친절하고 잘해주는 것 같아.


식당 같은 서비스업종에 있는 사람들조차 고객에게 미소 한번 짓지 않는 무표정에 처음엔 정말 적응이 안 되었었던 기억이 났다. 일단 이 곳에 익숙해지고 나니 우리나라의 각종 서비스업 종사하시는 분들의 감정 노동의 강도가 상당하겠다 싶었다. 고객은 왕 이란 말도 어디에나 통용되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폴:

모두가 친구는 아니니 우린 모두에게 친절하진 않아. 하지만 일단 가까워지면 모든 걸 다 줄 만큼 잘해주지.

미:

우리는 좀 전에 알게 된 사람도 친구야. 하하하하하


얼결에 한 인터뷰 2탄

:폴란드 의대생의 영어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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