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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숙 Jun 26. 2019

나의 사춘기 3


교실 문을 빠끔히 열고 사환이 코를 들이민다.

“아무개 학생, 지금 강당으로 오랍니다.”

3학년 영반 70명 학생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나는 화학책을 접으며 뾰로통한 얼굴로 선생님을 쳐다본다. 수업 중이라 갈 수 없다고 한마디 해주길 바라며 미적대는데 오히려 선생은 못마땅한 눈길을 나에게 보낸다.

“어서 가지 왜 꾸물대냐?”

내키지 않는 엉덩이를 무겁게 들어 올리며 나는 짝에게 속삭인다.

“필기 잘해 놔.”


내가 배정받은 3학년 영(英)반은 특별반이다. 원래는 화(和), 순(順), 정(貞), 열(悅), 경(敬), 다섯 반인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반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청주여자중학교는 매년 12월, 성대한 가을 축제를 연다. 연극, 합창, 독창 외에 그림, 서예 전시회까지 3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벌이는 한판 잔치다. 축제의 총괄을 맡은 도덕 선생은 합창 연습을 효과적으로 하려고, 오디션을 통해 노래 좀 한다는 애들을 뽑아 예능 반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영반이다. 그 별난 무리에 내가 든 것은 아버지를 닮아 그림을 좀 그렸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동네 빈 창고에 아이들 모아놓고 자작극 연출한 경력밖에 없는 내가 연극 팀에까지 뽑힌 것은, 다른 애들은 못한다고 꽁무니 뺄 때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저요. 저요” 설쳐대 도덕선생 눈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일 게다.


영반 담임은 당연히 음악선생이 맡았다. 교실에 풍금을 갖다 놓으니 수업이 비는 사이 틈틈이 연습을 해서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정신 연령에 비해 신체발육이 빨랐던 나는 변성기 또한 또래 아이들보다 빨리 지나가 일찌감치 제 소리를 찾았다. 방과 후에 발성 연습 한답시고 창문에 붙어 서서 운동장을 향해 악을 쓰면 높고 맑은 목소리가 파도처럼 물결쳤다. 그 덕에 나는 축제에서 독창까지 하게 되었다. 영반 학생들은 방과 후면 어김없이 남아 합창, 독창, 연극 연습을 했다.


음악교사인 우리 담임은, 교장 선생님이 특별히 모셔온 피아니스트였다. 키가 크고 얼굴도 잘 생겼다. 특히 곱실곱실한 파마머리가 베토벤을 닮아 누가 봐도 예술가다웠다. 점잖고 과묵한 선생은 변덕스럽고 극성맞은 사춘기 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건 오직 음악뿐인 듯 보였다. 나는 선생과 내가 따로 노래 연습을 시작하기 전까지, 아니, 진실과 맞닥뜨릴 때까지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해 마지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강당에 가까이 가자 귀에 익은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담임은 내가 부르기로 한 김성태 작곡 ‘동심초’를 치고 있다. 문 밖에 우두커니 서서 귀를 기울인다. 이미 수십 번이나 들은 곡인데도 마음이 울적해진다.


넓은 강당 안은 썰렁하다. 무대 쪽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나를 보고 담임이 계속 피아노를 치며 미소를 띠운 채 손을 뻗는다. 어서 와서 손을 잡으라는 신호다. 나는 자석에 끌리듯 담임의 손을 잡는다.


“자, 입은 크게 벌리고, 배는 안으로 당기고, 호흡은 위로 끌어올리고.”


담임이 한 손으로 건반을 쾅쾅 두드리며 힘주어 말하지만 내 목소리는 점점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노래 부를 기회를 거머쥐긴 했지만 막상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면 대뜸 명치부터 울렁거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성악을 할 재목이 못된다. 성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더 크게! 목젖을 열고.”


선생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나는 고집스럽게 입술을 오므린 채, 입 안에 감추고 있는 덧니가 드러날까 봐 고개를 외로 꼬고, 전력을 다해 목소리를 짜낸다.


“한갓되이 풀잎만 매~에즈~려어느~은고~”


고음과 긴 호흡이 절정을 향해 달리는데 선생의 손아귀도 리듬에 따라 쥐락펴락 바쁘게 움직인다. 아무리 애잔한 가사에 감정을 실어보려 해도 축축한 손바닥 때문에 내신경은 온통 손에만 가있다.


‘뺄까? 그러면 선생이 무안해하지 않을까? 그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에서 신경을 꺼야지.’


덧니 감추랴, 노래 부르랴, 난 제 정신이 아니다. 머릿속은 북새통인데 넓은 강당 안은 조용히 출렁대는 멜로디로 처연하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 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담임은 나를 수시로 불러내 노래 연습을 시켰고 그때마다 내 손은 고역을 감수해야했다. 그랬음에도 난 선생님이 나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특별히 아꼈다는 것에 한 점 의심을 안했다. 분에 넘치는 역할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학교 내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을 마다할 정도는 아니었다.

<축제 때 노래하는 나, 무대 왼편에 국어선생님과 담임인 음악선생님이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모여 떠드는 곳에 우연히 끼었다가 끝까지 몰랐으면 좋았을 얘기를 듣게 되었다. 음악선생이 자기 손만 보면 조몰락거린다고 투덜대는 한 친구의 불평을... 난 아무 말도 안하고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왔다. 엷은 실망과 함께 무안했다. 나는 이후로 누구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한창 ‘미투’로 떠들썩할 때 딸과 TV를 보다가 65년이나 묵혀 두었던 얘기를 쬐끔 뻥튀기해서 들려줬다. 배꼽 쥐고 웃던 딸이 미투는 그렇게 아무데나 갖다 붙이면 안 된다고 퉁바리를 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선생님이 엄마를 많이 아꼈구먼.”

‘그렇지? 선생이 날 아낀 거지?’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하게 남겨 두었던 찌꺼기를 나도 깔깔 웃으며 날려버릴 수 있었다. 역시 내게 미투는 무리다. 미투는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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