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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H Mar 15. 2022

성급함, 조급함은 나쁜 걸까?

#PSH독서브런치153

사진 = 에스콰이어 코리아 기사 캡쳐


1. 박이문 작가는 <왜 인간은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가>에서 "중요한 것은 성급히 대답하기 전에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로 각기 경우마다 나름대로 깊게 숙고하며 책임 있게 대처하는 것이다"고 썼습니다. 김영민 교수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에서 "과거의 특정 문화, 전통, 혹은 텍스트를 너무 성급하게 혐오하면, 그 혐오로 인해 그 혐오의 대상을 냉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혐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를 너무 성급하게 애호하면, 그 애호로 인해 그 애호의 대상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대상을 정교하게 애호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습니다. 일이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성급했다"는 설명은 거의 언제나 잘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성급함, 조급함은 항상 피해야 할 것, 경계해야 할 것이 아닐까 싶어요.


2. 채사장 작가는 <열한 계단>에서 내면의 성숙을 위해 조용하고 신중히 사색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한 시간들도 개인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임을 말이다"며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요. 최근 MBN 드라마 <스폰서>에서 주연으로 출현하고 있는 배우 이지훈은 에스콰이어 코리아와의 21년 6월호 인터뷰에서 "초반에 그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조급해하지 말아라.” 그런데 제 생각에는 조급함이 없으면 그만큼의 행동력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의 조급함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 누가 보기엔 쟤는 왜 저렇게 말을 앞서서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말한 대로 이뤄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라고 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본다면 조급함, 성급함 그 자체만으로는 좋다, 나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2. KBS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고 현재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인 베라 홀라이터는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공항에서 한국인을 구별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 바로 조급함이다. 비행기가 아직 착륙지점에 완전히 서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수하물 칸을 열고 가방을 꺼내 내릴 채비를 한다. 그리고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마치 생사를 다투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출구를 향해 몰려간다. ... 한국인들의 조급함은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휴가를 아주 적게 받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 글을 읽고 한국인의 조급함, 성급함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한 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부산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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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현명하다는 것은 도저히 현명해질 수 없는 순간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글의 주제에 맞춰 살짝 변형해 "현명하다는 것은 도저히 차분해질 수 없는 순간을 아는 것이다"라고 써보면 어떨까요? 단순히 성급함과 조급함을 지양하는 것보다 이들의 효과를 잘 알고 적절한 순간에 알맞게 쓰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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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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