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018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인 넬의 Slow Motion이란 곡 중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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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성숙해진단 말 / 아무것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말 / 사실은 말야 / 더 약해질 뿐이야
가능하다면 꽃길로만 가 / 굳이 어둠 속을 들여다보려고 마 / 네 안의 작은 불씨마저 다 / 삼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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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건 구세대건 고생이 좋아서 일부러 자처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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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처한 상황에 의해 혹은 본인이 추구하는 이상에 닿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타의 반, 자의 반 고생스러운 상황에 내몰리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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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라테스러운' 말일 수 있지만, 고생하는 사람에 대한 위로의 말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대기만성'이란 말도 있을 것 같아요. 평가적 의미인 동시에,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인 거죠.)
1. 나이가 더 들어서 독립을 하고 나니 ‘만다꼬’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질문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또는 사는 게 힘에 부칠 때면 ‘만다꼬?’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왜 이것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나는 이것을 진정 원하나? 아니면 다들 그렇게 하니까 떠밀려서 하는 건가? 내 안에 내재된 ‘만다꼬?’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게 되는 거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부분에 쏟고 있던 힘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시공사)
2. 노동사회, 성과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속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낸다. (중략) 그것은 오히려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 이러한 강제사회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노동수용소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피로 사회, 한병철, 문학과 지성사)
3. 비슷한 실수와 시행착오를 저지르면서도 내 안에는 분명 무언가가 쌓여왔다. 처음 겪는 일들을 파도처럼 맞닥뜨리면서 정신없이 그것을 헤치며 살아오는 동안 내 안에는 그 파도에 실려 온 모래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쌓여왔다. 이제 그 모래 알갱이들은 제법 두툼한 켜를 이루어 웬만한 파도에는 쉽게 휩쓸려 버리지 않는다. 익숙함이란 그런 켜 같은 것이고, 그 켜들이 이루는 무늬를 좀 떨어져서 바라보게 될 때 통찰이 생겨나는 듯하다.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시공사)
'자기 자신 착취'와 '만다꼬' 사이 어딘가 각자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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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균형을 찾기 위해선 지금 겪고 있는 고생의 근본 원인을 점검하고,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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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셨다는데, 결국 이 태도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질문과도 바로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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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좀 안 되는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크고 작은 인생의 어려움은 어떤 식으로 건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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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최근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연예인 김종국 님이 "만약 부정적인 일이 생기잖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쁜 일이더라도, 나는 거기서 어떻게든 작은 부분이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서 그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훈련을 했어"라고 했고 이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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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힘든 상황을 마주쳤을 때, 전략적 사고의 관점에서 '어떻게든 이 고생에서 긍정적인 면 하나 이상을 찾아내겠다'는 태도는 유효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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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나쁜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전략적인 태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작정 '잘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낙관주의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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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진짜 고생을 안 해봐서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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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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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앞으로 저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진짜 고생스러운 상황'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거라고 봐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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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