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017
주식을 시작하고 새삼 느낀 바는 한국에서 문과생이 설 자리는 참 비좁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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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상위 종목부터 차례대로 보면 문과생이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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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업을 제외하고 대부분 경영지원 직무로 일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 직무의 핵심은 보고서 만들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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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이 올바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현장 상황을 포함한 여러 데이터(Raw Data)를 잘 가공하여 보고서를 만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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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면 돈을 벌어오는 부서와 경영진 사이 메신저 역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주인은 사물과 직접 마주치지 않는다. 예리하게 찔러오는 사물의 뾰족뾰족한 표층들을 모두 노예의 여린 육체로 완충시킨 채 순수한 향락에 빠져들 뿐이다. 노예는 표층들의 송곳 같은 돌출에 찔리고 찍히지만, 그 사물의 단층, 굴곡, 주름들을 자신의 살갗으로 훑어내게 되면서 사물들을 온몸으로 익히고 그 켜, 결에 거스르지 않고 처신하는 비결을 터득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것들을 변화, 개조하여 주인의 욕망에 복종하는 비자립적 존재로 탈바꿈시키기에 이르는 것이다. (상처의 인문학, 이왕주, 다음생각)
2. 결국 노예의 위치, 주인과 사물 사이, 이 공간이야말로 사물과 주인에게서 자립성을 동시에 지속적으로 탈취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렇게 해서 앞의 인용 “이제 사물과 자신의 틈에 노예를 밀어 넣게 되는 주인은 사물의 비자립성과 결부됨으로써 그 사물을 순전히 향락할 수 있게 된다.”는 이렇게 바뀌게 된다. “이제 사물과 주인의 틈에 자신을 밀어 넣게 되는 심부름꾼은 사물과 주인의 자립성을 지속적으로 탈취함으로써 양자를 순전한 향락 속에 머무르게 한다.” (상처의 인문학, 이왕주, 다음생각)
3. 그 어떤 문서도 그 문서의 필자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상의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줄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그 필자가 일어났다고 생각한 것, 일어나야 한다든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것, 혹은 다만 그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남이 알아주었으면 싶었던 것, 단지 자기가 생각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뿐인 것 이상을 우리에게 말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카, 홍신문화사)
글이 좀 복잡하게 씌어있긴 하지만 '주인' = 경영진(보고 받는 사람), '사물' = Raw data, '노예, 필자' = 메신저(문돌이)로 생각하고 읽으면 좀 쉽게 읽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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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도 이런 관점에서 동익(이선균 분) = 경영진, 연교(조여정 분) = 메신저로 본다면, 메신저의 잘못된 메시지(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가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중심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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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킹 : 헨리 5세’에서 주인공인 헨리 5세(티모시 샬라메 분)는 충직한 신하로 생각했던 윌리엄(숀 해리스 분)이 개인적 이익 추구를 위해 사실을 조작해 보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를 죽이고 자신의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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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sk nothing of you... only that you will always speak to me clear and true, always. Will you promise me only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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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분야에서도 '주인' = '일반 대중', '역사적 사실' = 'Raw data', '노예' = 역사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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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분야도 마찬가지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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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메신저의 역할이 생각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회사에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경영지원팀에 똑똑한 사람을 앉혀놔야 하는 이유기도 하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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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잘 작성하기 위해, 즉 훌륭한 메신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 역량은 역시 요약하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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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노예(메신저)가 되기 위한 방법은 이후 기회가 되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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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thepsh-brunch/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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