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057
JTBC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 방구석1열을 통해 1985년 개봉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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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덴마크의 한 여성(카렌, 메릴 스트립 분)이 아프리카 케냐에서 겪은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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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면 중 저는 카렌과 남자 주인공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 분) 사이의 한 대화에 관심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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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한다는 카렌의 계획을 듣고 데니스는 케냐의 아이들이 정말로 그것을 원하는지 되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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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은 케냐의 아이들이 무지한 상태(ignorant)에 있으며, 그들을 교화하고 가르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change things for the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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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데니스는 백인인 우리는 단지 이방인일 뿐이며 (We're not owners here. We're just passing through), 그들은 무지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하죠. (They have their ow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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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카렌의 눈에 데니스는 '공감 능력 떨어지는 무책임한 남자'로 비쳤을 수 있으며, 데니스의 눈에 카렌은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본인의 기준만이 맞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여자'로 비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 계몽의 본질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시민에게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부여하는 데 있다. 이 '문맹 퇴치' 프로젝트는 물론 근대 민주주의의 성립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권력은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매체를 독점한 자들의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자기가 자기를 통치하는 제도. 따라서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모든 국민이 정보의 저장 및 전달 수단인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크로스, 정재승, 진중권, 웅진지식하우스)
2. 모든 계몽주의는 그 동기와는 상관없이 이념적으로 독선적이고 실천적으로 폭력적, 즉 비이성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독재적 경향을 필연적으로 내포한다. ... 그것은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 다양한 지적 및 정서적 교육에 의한 점차적 방법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나비의 꿈이 세계를 만든다: 동서 세계관의 대화, 박이문, 생각정원)
3. 본능적으로 남자들은 상대 쪽에서 먼저 접근하여 청하지 않는 조언이나 도움을 제공하지 않을 때 그를 존중하게 된다. 문제를 처리할 때 남자들은 우선 스스로의 힘으로 어느 정도까지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연후에 만일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때는 자존심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도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 도움을 제공하려 하는 것을 그는 모욕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동녘라이프)
학교 설립, 언어 교육, 복음 전파와 같은 큰 문제들과 관련된 대화였지만, 저는 이 대화에 담긴 핵심적인 부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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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특정 나이에 특정 시험 준비를 시작하겠다는 친구의 말에 "나이를 포함한 여러 요소를 고려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시험 준비보다는 현실적으로 바로 취업 준비를 하는 게 어떻겠니"와 "기회비용이 큰 선택이긴 하지만 네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존중하고 응원해줄게" 사이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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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조언을 해주는 입장에서 안전한 선택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후자의 말일 테지만, 그런 측면에서 전자의 말을 해주는 사람은 본인이 상대방에 대한 더 큰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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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자의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여러 세부적인 조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문제 상황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내린 본인의 진로에 대한 결정'에 대해서는 일단 존중하고 지지를 보내주는 게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반응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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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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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에게 최선의 말을 해주기 위해선,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이 독선인지 소신인지를 구분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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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