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H독서브런치074
알랭 드 보통은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완벽함에는 어떤 압제가 있다. 심지어 어떤 싫증이 느껴진다. 과학적 공식과 같은 도그마의 힘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있다."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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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함에서 압제가 느껴지는 이유는 피드백을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 비타협적 태도와 연결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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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유토피아'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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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하나의 고정적 형태로 구체화되는 순간 닫혀 버린다. 더 이상의 변화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독단과 폭력을 낳는다. ...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보듯, 하나의 이념만이 지배할 때 유토피아는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이상적일 뿐 결코 우리 모두의 천국은 아닌 것이다." (마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선 : 영화에 드러난 삶의 속살, 윤창욱,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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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사전적으로 '흠이 없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상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 ou(없다), topos(장소)의 조합인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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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인 완벽주의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하려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태도임과 동시에 압제, 싫증, 독단, 폭력, 비타협을 동반하는, 상당히 별로인 전략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1. 갑질의 악순환 - 스트레스, 우울, 업무 회피, 불안, 자기 효능감 하락, 낮은 삶의 만족도, 수치심, 자기 비난, 자살의 유혹 등 평가염려 완벽주의는 수많은 심리적 부작용을 쏟아낸다. 이런 막대한 부작용을 품은 사람이 일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어불성설이다. 설사 ‘군기가 들어’ 일을 빠릿빠릿하게 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 자원을 쥐어짜낼 수 있는 대로 긁어다 써서 가능한 찰나의 기적에 지나지 않는다. (에스콰이어코리아 18년 6월호)
2.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완벽한 행복을 손에 넣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 ‘그 이후에도 계속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허황된 믿음에 철석같이 매달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결코 이루지 못할 일을 두고 끊임없이 상처 받고 좌절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장미가 가득 핀 시골길 정원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날 오후처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에 후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게리 콕스, 황소걸음)
때에 따라 완벽을 기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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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때도 유념해야 할 것은 완벽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가능한 것은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노력뿐이고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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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태도를 유지했을 때 내 정신 건강과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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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