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홉스(Hobbes)가 설파했듯이 인간 사회는 정글의 원칙에 따른 포식자와 피포식자들 간의 죽고 살기의 무서운 먹이 사슬이어서, 인간은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투쟁의 긴장과 공포로부터 한순간이라도 빠져나올 수 없다" (『논어』의 논리 : 철학적 재구성, 박이문, 문학과 지성사)는 관점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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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선한 마음을 갖고 배신이란 없는 상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는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에 소개되기도 한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해선 이후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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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결국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는 전략을 익혀야 하며 저는 그 핵심 중 하나가 사람을 믿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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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혼자보다는 둘 이상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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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고, 지속적인 생존과 더 큰 성취를 위해서는 믿을 만한 사람을 알아보고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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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믿을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즉 사람을 믿는 연습을 지속했을 때 정교하게 다듬어질 수 있을 것이고요.
1.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대 국가, 중세 교회, 고대 도시, 원시부족 모두 그렇다. ... 이것이 사피엔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이다. 일대일 결투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를 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이 맞붙는다면 네안데르탈인에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 인간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자 위대한 장점은 신뢰다. 자신의 믿음이 악용될 거란 두려움이 없다면, 다시 말해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돈과 관련된 경제생활도 훨씬 편해질 것이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애덤 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세계사)
3.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썼다. 위대한 정복자들은 자신을 신뢰한 인물들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세 정복자,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이 그렇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세계정복에 나섰으며 부하들을 신뢰해서 많은 것을 맡겼다. 자신을 신뢰하는 자가 인민을 지배한다. (전원책의 지식인 비판 - 진실의 적들, 전원책, 중앙북스)
사피엔스에서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저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꼭 그 사람의 선한 심성에 기반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심성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고 신뢰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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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한재호(설경구 분)의 "사람은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라는 대사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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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기심에 대한 신뢰가 나에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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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1) 타인의 선한 마음이나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신뢰는 생존과 큰 성취를 위해 필수적이고 2) 사람 보는 눈의 정확성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듬어나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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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크게 데여 본 경험 후 '큰 성취는 필요 없으니 아무도 안 믿고 나만 믿고 살래'라는 생각을 가지신 분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이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