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다크 나이트(2008)>의 내용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다크 나이트>는 DC 코믹스가 실사화한 배트맨 시리즈 중 하나로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조커는 인간이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인질로 잡힌 세 사람 사이에 무기 한 개를 떨어뜨리며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There's only one spot open right now, so we're gonna have...tryouts.")과, 굶주린 개들 사이에 잡아온 갱 두목을 잡아넣는 장면("We'll see how loyal a hungry dog really is.")이 겹쳐지며 사람과 개 사이 차이가 없다는 조커의 생각이 드러나죠. 스스로를 차를 쫓는 개로 표현하기도 하고요. ("You know what I am? I'm a dog chasing cars".). 즉, 사람은 이성보다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며 도덕과 규칙은 모두 허상이고 따라서 인간은 모두 추악함을 가까스로 감춘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You see, their morals, their code, it's a bad joke. Dropped at the first sign of trouble. They're only as good as the world allows them to be.") 그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커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을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한 후 어떤 선택을 하는지 미디어를 통해 전국에 알리는 방법을 택하죠.
2. 인간이 착하게 태어났는지 악하게 태어났는지 명확히 판단 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양쪽 모두의 관점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착한 인류>에서 "지금은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돌보도록 신체적, 정신적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타인을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본성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유사한 특성이 발견되면서 이런 관점은 지지받고 있다. ... 이제는 인간은 본래 착하게 태어나며 착한 사람이 목표에 빨리 도달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썼으며 박이문 교수는 <왜 인간은 남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가>에서 "인간 사회는 협조와 소통보다는 배반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이란 이타적이기에 앞서 이기적이며, 인간들 간의 원초적 관계는 갈등이기 때문이다."라고 썼습니다. 이 두 글은 모두 설득력이 있어요. 따라서 조커의 인간에 대한 전제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하기에는 힘듭니다.
1+2. 조커 반대편에 있는 배트맨은 인간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조커에게 '누구나 내면은 추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너의 생각은 틀렸다'("What were you trying to prove? That deep down, everyone's as ugly as you? You're alone.")고 말한 것과, 정의로운 검사였다가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악당으로 변하게 된 하비 덴트에 대해 '때론 진실이 훌륭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것("Sometimes ... the truth isn't good enough.")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죠. 즉, 배트맨은 인간이 한없이 추악할 수 있으면서도 선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선함을 장려하고 북돋아서 정의롭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고요. 하비 덴트의 악행이 알려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They must never know what he did."), 사람들의 선의에 대한 믿음이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Sometimes people deserve to have their faith rewarded.")이 이를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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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의 생각이 조커의 생각보다 더 매력적인 이유는 배트맨이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인간을 바라본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배트맨의 생각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도 그러하다고 생각해요. 애덤 스미스의 원저를 바탕으로 러셀 로버츠가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에서 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인간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자 위대한 장점은 신뢰다. 자신의 믿음이 악용될 거란 두려움이 없다면, 다시 말해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돈과 관련된 경제생활도 훨씬 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