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형 홈쇼핑회사의 쇼호스트분들을 대상으로 스피치와 보이스 트레이닝을 진행했었다. 강사로서 강의의뢰 연락을 받았다는 건, 그것도 큰 회사에서 수업문의가 왔다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지만, 처음엔 조금 의아했다. 전문 쇼호스트들은 보통, 리포터, 스튜어디스 등 말하기 관련한 전문 이력을 가지고 있고, 더군다나 수업 대상은 신입 쇼호스트뿐 아니라, 10년 전후의 경력이 있는 분들이었기에 더욱 궁금했고, 티는 안 냈지만 한편으로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교육의뢰를 한 회사 담당자분에게 물었다.
'방송경력도 있고, 스피치도 노력하게 잘하는 분들인데 어떤 목적으로 수업하시려는 걸까요?'
‘네 맞아요. 스피치 경력도 많고 노련하고 정말 잘하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제 더 갖춰야 할 능력이 있어요. 방송인 같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이제 말하듯이 대화하듯이 스피치 하는 능력이 필요해서요.. 진짜 대화하듯 말을 해야지 스피치를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아... 네...'
이 말을 듣고 나 역시 머릿속에 쨍하고 새로운 빛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시대가 바뀌고 있고, 스피치의 방식도 말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1980년대 웅변 말하기에서, 1990년대 방송인형 말하기로, 지금은 전문성은 물론 진정성과 정체성있는 '소통형 말하기'가 통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모두 세련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외모에 능숙하게 이름과 이력등을 말했다. 예상대로 모두 스피치 능력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명확한 발음, 잘 훈련된 발성까지 좋았다. 그런데 가만 듣다 보니 다들 성격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추구함도 다른데, 무엇보다 사람이 각각 다른데, 말하는 게 너무 비슷했다. 마치 한 군데 학원에서 한가지 커리큘럼으로 배운 분들이신가? 싶을 정도로 말하기의 정해진 틀과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 이유였다. 순간 고민했다. 수십 년간 이렇게 방송해왔을 거고 성과도 내며 살아왔을 텐데, 처음 보는 나와의 만남에서 얼마나 마음을 열까?
내 생각과 코칭을 전하기 전에, 나부터 강사이기 이전에,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부터 전했다. 스무 살에 가족과 15년간 연애한 여자친구를 두고 고향 부산을 떠나, 배우가 되고 싶어 69만 원 들고 서울에 왔고, 돈이 없으니 친구가 사는 옥탑방에서 눈치보며 얹혀 살았고, 반지하 전전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했던 시기, 겉으로는 연기전공이니 배우지망생.. 그럴듯한 수식어를 붙였지만, 야간 이벤트 주점에서 사회 보고, 엑스트라 하고, 대학로 연극배우하며 월 30만 원도 벌기 힘들었던 시기와 어떻게 이렇게 큰 회사에 출강하는 강사가 되었는지 에세이 같은 말을 나눴다.
수업과 코칭의 자리에서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는 교육적인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함께한 쇼호스트들도 전문직업인이기 이전에 사람이기에 그런 이야기들에 자연스레 첫 수업에 함께 어우러졌고, 분위기는 꽤 말랑말랑해졌다.
비슷한 스토리의 공감대가 있어서 인지, 오히려 강사인 나에게 질문하고 자연스레 대화 나누는 분위기가 되었다.
다음 말하기 주제로, 각자 쇼호스트가 된 계기, 그간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삶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스피치 수업을 넘어 사람대 사람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차근차근, 대화하듯 말하되,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서 그 마음의 이야기를 편하고 진솔하게 나눴다. '공식적 수다' 라고나 할까?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리, 무대에서 공식과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 부감감을요. 다만, 오늘 만큼은 평가하거나 지적하지 않을테니, 말하면서 전문적으로 보여야 하고, 틀을 너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가장 편한 친구에게, 엄마에게, 언니에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말해 보세요. 그렇게 말하면 스피치의 틀에 갇힌 말하기가 아닌, 각자의 자연스럽고 진솔한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부여잡고 있던 그 끈을 놓으면 위험할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가벼워지며 다른 나를 만날 겁니다. 힘을 빼보세요. 힘을 빼야 힘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답니다'
점점 자신만의 말하기가 시작되고, 얼음이 녹아 흐르듯 굳었던 몸에 스트레칭이 되듯 훨씬 자연스럽고 진솔한 대화이자 말하기가 이어졌다.
이 이야기는 비단 쇼호스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직업과 관련된 의도된 억양을 만들고 마치 그것이 전문적인 말투인 것처럼 고정관념을 가지고, 인위적인 목소리와 형식 안에 들어간 말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분명 말의 내용은 틀리지 않았고, 역할은 다 하지만, 진정성이 전혀 안 느껴지고, 그저 로봇처럼 정해진 대사만 반복하는 것이다. 손님을 대하는 식당직원의 말투, 고객을 대하는 영업사원의 말투, 자기소개하는 취준생의 말투, 강의하고 수업하는 강사의 말투, 진짜의 자기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말하지 못하고, 직업의 만들어진 억지 억양으로 말하면서, 스스로는 전문적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다.
속된 말로 ’쪼‘라고 불리는 억양이 습관화되고, 심지어 각 분야별로 대물림된 경우가 많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참나.. 어떻게 매번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해요? 하루 종일 일 한다고 피곤해 죽겠는데, 좀 기계적일 수도 있지..'
그런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헌데, 필자의 주관적 의견을 떠나, 잘 생각해 보자. AI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인간의 역할을 해주고 있고, 그 기술력과 수행 수준은 (말이 좀 그렇지만..) 웬만한 피곤하게 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다. 사람 냄새나는 말, 정체성 있는 그 사람만의 목소리와 진정성으로 말하고 대화하지 못하면, 사람이 직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자리, 무대가 이제 얼마나 될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급성장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과 대중화의 영향으로 5년 안에 69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말투 하나 바꾼 하고 변화하는 시대를 거스르고 기적적 삶을 산다는 허황된 얘기는 못하겠지만,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일상에서 우리가 방송을 보거나, 좋아하는 강사의 강의를 듣거나, 식당에 가거나, 다양한 세일즈와 영업, 응대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기계적 말투와 진심 없는 사람보다는 사소하더라도 진정성과 자연스러움의 호감을 느꼈을 때 그 사람과 만남을 기분좋게 기억한다. 인간만이 가진 '좋은 여운 에너지'의 의미는 생각보다 귀하고 생명력 있다.
진정성 있는 말하기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봐야 한다' 상대를 안 보고 내 할 말만 하고 외운 대사만 외우기에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행동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에 대한 내 의식과 무의식의 반작용이다. 삐딱하게 바라보거나 못 보면 상대 없는 나 홀로 말하기가 된다. 상대의 눈을 보고 존재를 정성스레 볼 때 내 말도 진정성 있게 흘러나온다. 말은 그저 하는 게 아니라 시선과 느낌의 반작용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성과, 결과과 다른 사람을 위함 보다는 결국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나 다운 나를 위한 대화를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