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중세 미술로의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까?
신비와 매혹으로 가득한 세계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처음부터 중세 미술에 선뜻 호감을 갖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중세는 오랜 시간 인류 역사의 오점, 빛에 반대되는 시간, 비이성의 시대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중세하면 우리가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영화나 책에서 접한 음침한 수도원과 광기 어린 수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세 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도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화는 대체로 엇비슷해 보이고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투박하게 보여 예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들은 얼마나 화려하고 섬세한지요. 중세와 르네상스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빈민촌과 부촌처럼 극명한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입견을 잠시 거두고 중세를 바라보길 바랍니다. 중세 미술은 볼테르Voltaire의 소설 《캉디드Candide》에서 탐험가인 주인공이 남미의 정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엘도라도처럼 보석 같은 작품들로 가득한 세계입니다.
신비롭고 매혹적인 예술 사조 고딕과 황금빛 노스텔지어 비잔틴, 그리고 르네상스를 예고하는 최초의 근대 회화인 조토 디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예술과 현대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화가들의 눈부신 작품들까지. 중세 예술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가기에는 마음을 울리는 탁월하고 독창적인 작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을 보며 뻣뻣하게 서 있는 중세 초기 십자가상 속 예수는 다른 어떤 시대와도 다른 특별한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그 신비로운 매력은 그것이 중세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합니다.
저도 중세 미술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닙니다. 그림들을 보고 있어도 아무 감흥이 없었고 종교적인 주제들은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조토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중세 미술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미술사 공부에 한창 빠져 있던 때, 미국의 유명한 미술사학자 H. W. 잰슨 H.W.Janson의 책이자 예술사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서양미술사》를 읽던 중이었습니다. 책에 조그맣게 삽입된 그림에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조토의 걸작으로 꼽히는〈옥좌 위의 성모 마리아〉, 일명 ‘마에스타’라고 불리는 작품이었습니다.
수천 년의 예술사를 총망라한 책 안의 수많은 명화들 중에서 고흐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널리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들어본 적도 없는 중세 화가의 그림에 왜 내 안의 모든 의식이 반응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그저 운명의 짝을 알아본 것과 같다고 할까요. 누군가 왜 하필 조토냐고 물을 때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좋았어요.”
그 후로 저는 마음이 지치거나 공허할 때 서재로 다가가 조토의 그림을 펼치곤 했습니다. 조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의 고민 회로가 멈추고 그림에 담긴 견고한 아름다움이 제 마음에 기운을 불어넣어 주곤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전업 소설가가 되겠다고 밤낮으로 낑낑대고 있었는데 되는 글은 없고 세월만 흘러가서 매일매일 영혼이 프라이팬 위 콩알처럼 튀겨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조토의 그림은 이상향, 밤바다를 비춰주는 등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세상에는 누군가 창조한 이렇게 완벽한 예술이 있어. 혹시 어쩌면 너도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을지 몰라.’ 하며 스스로를 격려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삼십 대 후반이 되면서 정말 글쓰기를 그만둬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 문득 조토의 그림을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무슨 답이라도 있을 것처럼. 아니면 정말 글쓰기를 그만둘 생각에 그림으로 마음을 위로하려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홀가분하고 또 절박한 심정으로 조토의 작품을 보러 훌쩍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제이 개츠비처럼 대상을 향한 애정이 개인의 판타지가 되어버리면 실제 그것을 마주했을 때 만족감보다 괴리감이나 실망감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직접 이탈리아에서 마주한 조토의 그림은 기대 이상의 감흥과 예상을 넘어선 전율을 안겨주었습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조토의 십자가상을 보고 나서는 말로 표현 못 할 황홀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전율한 것은 십자가상의 정교한 묘사나 섬세한 만듦새 때문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스며 있는 조토라는 한 인간의 위대한 재능과 열정이 전이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때 성당에 주저앉아 그림을 보며 ‘이렇게 좋은 것은 세상에 알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처음 가졌습니다. 내가 느낀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 그런 바람은 조토를 찾아 떠난 아트 트립의 마지막 행선지인 파도바에서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조토의 그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가치가 있다는 확신, 작품을 따라 떠나는 여정의 즐거움이 특별하다는 확신, 무엇보다 중세 미술이 결코 무겁고 지루하지 않으며 대중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예술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조토를 알리겠다고 마음먹고 떠들어대는 것이야 저의 자유지만 ‘조토 투어’ 라는 여행을 만들고 또 이렇게 <이탈리아 아트 트립>을 쓰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직접 중세 미술에 대한 책을 내는 것은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중세 미술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은 제게 어마어마한 도전이었습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쉽고 편하게 읽히는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세 예술은 미술 분야에서도 인기가 없는 축에 속하고 내용도 까다로워서 독자들이 쉽게 읽을 만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기존의 책들은 교수나 학자들을 위한 학술적인 책이 대부분입니다. 저도 처음 중세 예술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 부분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책 속의 이론적인 부분은 대부분 독학으로 익힌 것이지만 철학적, 예술사적 지식과 사유는 예술사학자이자 철학자이신 조중걸 선생님의 가르침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예술사 모임에서 2년여 동안 강의를 듣고 공부했던 시간이 없었더라면 이런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감히 붙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번 책을 빌어서 제게 지성의 세계를 알게 해주신 조중걸 선생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탈리아 아트 트립>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세 미술과 친해지길 바랍니다. 책 속의 그림들과 이야기로 여러분의 일상이 풍요로워지고 지식의 저장고가 다채로워지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만나는 것은 여러분이 중세 예술과 친해질 수 있는 일생에 흔치 않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귀하게 봐주기 바랍니다. 편견 없이, 마음을 열고 보아주기 바랍니다. 익숙한 미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그저 마음의 울림에 집중해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바라본다면 그림에 깃든 중세 화가들의 영혼이 어느 순간 여러분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한 장 책갈피 너머에 낯설고 매혹적인 중세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 작가 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