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많이 지쳐있습니다
스마트폰 액정때문에 하룻밤에 세상이 달라진 것만 같다. 화면을 보느라 산만해지는 현상은 오늘날 널리 퍼진 걱정거리다. 각종 화면을 보는 시간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은 계속 연구되고 있다.
우리의 화면 중독(‘좋아요’나 긍정적인 댓글에 빠져드는 중독)을 유발하는 기술을 개발한 사람들조차 이 매체에서 헤어나 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개발한 엔지니어 저스틴 로젠스타인Justin Rosenstein은 ‘좋아요’를 “유혹적이지만 그만큼 공허한 거짓 쾌락의 경쾌한 딩동 소리”라고 표현한다.
<가디언The Guardian>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로젠스타인은 하루에 2,617번 스마트폰을 보거나 만지거나 스와이프하거나 두드리는 사람들이 받는 심리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듯하다.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현상을 우려하는 것뿐 아니라, 기술이 끊임없이 단편적인 주의를 끌어 집중력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아이큐를 낮출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스마트폰이 있으면 전원을 꺼두었어도 인지 능력이 손상된다고 나타났다. 로젠스타인은 ‘모든 이가 산만해졌다. 그것도 항상’이라고 말한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한 연구에 참가한 사람 가운데 3분의 1이상이 기술 때문에 과부하에 걸렸다고 느꼈으며, 이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나타났다. 바로, 많은 정보 속에서 과부하에 걸렸기 때문이다.
온종일 케이블 뉴스와 뉴스피드에 얽매여 사는 것은 뉴스를 챙겨보는 것과도 다르고, 현명하게 참여하고 거부하고 기여하는 것과도 다르다. 스스로 통제하는 것과 중요한 일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산만해지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뉴스피드(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알고리즘으로 선택된 정보)를 확인하고 최근의 복잡한 정치적 쟁점에 분노를 표출하면 잠깐은 후련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습관은 아니다.
코미디언이자 텔레비전 진행자인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 투쟁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은 헤로인 한 대를 맞는 것과 같다. 나는 그와 같은 극단적인 정치 대립에 더는 관심이 없다.”
자리에 없는 사람에 관해 말하는 것은(대부분 험담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구미가 당기는 오락거리다. 유대교에서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남의 일을 말하는 행위를 험담이라고 부른다. 이 말에 내 친구는 이렇게 되물었다.
“아니,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해?”
소셜미디어로 인해 소외증후군Fear of Missing Out, FOMO이 악화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의 가장 해로운 면은 아는 사람이든 평생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든 남들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시킨다는 점이다. 브누아 드니제트-루이스는 기사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한 대학생이 자기 세대와 소셜미디어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불평을 들었다. ‘소셜미디어가 우리 기분과 인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다들 모르는 것 같아요. 소셜미디어는 도구이지만 이제 우리는 이 도구 없이는 살 수 없고 이 도구 때문에 미쳐가고 있죠.’"
우리는 스스로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ㆍ소셜미디어를 보면 기운이 생기는가, 아니면 힘이 빠지는가?
ㆍ소셜미디어가 도움을 주는가, 아니면 피해를 주는가?
예를 들어 남들이 보이는 겉모습에 집착해서 산만해지다가 잠시 멈추어 이렇게 자문할 수 있다.
ㆍ이런 행동이 내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가?
ㆍ강박적으로 누가 누구와 같이 노는지 확인하는 것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ㆍ 굳이 시간을 들여서 유명인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알 필요가 있을까?
한편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고민하느라 산만해지기도 한다.
예전부터 동료들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지극히 평온한 순간에도 항상 무슨 일이 터질까 봐 마음 졸이며 기다려요.”
우리의 흩어진 마음은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기억(과거)과 상상(미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우리는 과거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파헤치려 하고 미래에 이루기 힘든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작가이자 영성 지도자인 앨런 와츠Alan Watts는 이렇게 말한다.
“서두르는 것도 미루는 것도 모두 현재를 거부하려는 시도다.”
문화와 상업은 우리에게 더 많은, 더 좋은, 더 멋진 물건이 필요하다고 교묘히 유혹한다. 가상의 쇼핑백을 잔뜩 채우면서 자신이 무엇을 회피하려 하는지 알아채야 한다. 갈망이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
냉소적인 유머라고 해도 어차피 냉소주의 저변에는 강렬한 분노가 흐른다. 의료진 집단을 상담할 때 한 의사가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병원에는 냉소주의가 팽배합니다. 응급실에는 환자들이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 한다는 생각이 퍼져 있어요. 의사 경력의 마지막 순간에 냉소주의가 찾아왔다면 또 몰라도, 이제 막 시작하는 의사인데 냉소주의에 빠지면….”
그 의사는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으로 릭 핸슨 박사의 말을 인용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특정 지각이나 정서, 기억이나 욕구를 가지려면, 뇌는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소음에서 신호를 발견해야 하는데 … 이것을 ‘인지 본질화’라고 한다. … 우리는 자연히 좋아하는 것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신경 처리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모든 경험은 스쳐 지나간다.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깊고 지속적인 행복의 그 허술한 기반은 잡힐 듯 말 듯해서 … 우리는 계속 손을 뻗는다.
이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 불안하고 충분하지 않은 불편한 느낌이 도사린다. … 우리는 갈망하고 매달리고 고통스러워하고 해를 입는다. 인생은 바닥에 구멍이 난 컵이고 우리는 계속 그 컵을 채우려 한다.
- 릭 핸슨Rick Hanson, 박사
"의도 없는 행동은 차라리 하지 마라!"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더더욱 필요해 보이는 습관이다. 요즘은 말하거나 게시물을 올리거나 트윗을 보낼 때 충동은 최대치가 되고 의도는 최소화되는 것 같다. 우리의 말이 남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거의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의도를 최대로 늘리고 충동을 최소로 줄이면 결국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유리해진다. 자신의 감정에 가까워져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방식으로 길을 터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늘 하루, 괜찮은 듯 웃었지만
마음은 잔뜩 웅크리고 있지 않나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건만, 어느 날 방전돼버린 내 모습.
혼자의 잘못이 아닌 우리가 과부하에 걸리는 ‘진짜’ 이유와
‘최소한의 효과적인’ 행동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주세요. :)
<사실은, 많이 지쳐있습니다> 읽어보기 > http://gilbut.co/c/20024758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