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퀘스트 May 07. 2019

봉태규 에세이 |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았다. 우리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은 모두 ‘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난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고 혀를 끌끌 차며 철없다고 손가락질 하겠지만 그 정도면 많이 참은 거다. 욕이 섞이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 인간’도 아니고 ‘그 사람’ 정도면 꽤나 어른스럽게 비난하는 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그 사람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여러 종류의 부딪힘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 사람과 밥을 먹을 때가 특히 싫었다그 사람은 반찬 하나를 이쪽저쪽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다 정작 그 반찬은 내버려 두고 새로운 걸 집어서 먹는 식이었다. 무엇을 위한 루틴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밥을 먹어야 할 때면 아무 의미 없는 그 행위를 지켜보는 게 지긋지긋했다. 
  
아주 어릴 때는 혼이 날까 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간의 도움을 받아 나도 머리가 굵어지자 어느 날 밥을 먹다 말고 불쾌함을 쏟아냈다갑작스러운 내 행동거지에 그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그러더니 입안에 있던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지도 못하고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아버지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불쾌함을 처음 쏟아내는 거라 불안했는데 오히려 너무도 뻔한 훈계여서 대놓고 무시할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 앞으로 나와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선전포고한 셈이었다그때부터 나도 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수 없는 그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였다. 식탁 위에 내 반찬만 아주 정갈하게 접시에 따로 내어져 있었다그 사람은 여전히 몹쓸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반찬통에 들어 있던 나물을 두 번, 세 번 건드리고는 입속에 가져갔다. 그는 아마도 조마조마 했을 것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녀석이 자신의 젓가락질을 살펴보다가 언제 갑자기 독침을 쏘아댈지 모르니 말이다. 
  
시간들이 더해져 세월이 되고 그 세월마저 흐르니 나는 더 머리가 굵어지고 그 사람은 할아버지에 가까워졌다. 그즈음 같이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찌개를 끓여서 냄비째 먹다가 나에게 찌개를 따로 덜어주려고 하는 그에게 설거지하기 귀찮으니 그냥 먹자고 말을 건넸다. 국자를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그가 크게 당황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어찌나 크게 당황을 했는지 국자를 냄비에서 꺼내지도 못한 채 ‘어, 어.’ 하며 다음 행동을 전혀 계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선명하게 기억나는 하나는 잘 웃지 않는 그 사람이 가끔씩 던지는 내 실없는 얘기에 아주 파안대소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을까? 


아들을 데리고 마트에 가면 종종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른다. 작은 컵에 그 녀석이 좋아하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한 가득 담아 숟가락을 두 개 꽂아서 의자에 앉는다. 나는 절대 먼저 먹지 않고 조용히 한 입 먹여줄 때까지 간절한 눈빛을 하고 쳐다본다. 이런 내 모습에 자기 마음이 다다르면 아들이 서툰 숟가락질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어보라고 권해준다. 이게 뭐라고 참 기분이 좋다. 침을 한가득 묻힌 숟가락이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같이 먹자고 다른 숟가락을 쑤욱 하고 내 얼굴에 들이밀면 그게 그렇게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아들과 둘이 앉아 싱글 컵에 서로의 숟가락을 연신 찔러대며 아이스크림을 퍼먹는다. 나도 개의치 않고 아들도 개의치 않는다. 그 사람이 사고로 죽고 난 후에 혼자 밥을 먹을 때면 가끔씩 냄비째 찌개를 같이 먹었던 선명한 기억들 때문에 왈칵 눈물을 쏟을 때가 있다. 냄비에 서로의 숟가락을 찔러대도 개의치 않았던 그 식사가 그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겨우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요동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어땠는지 더듬더듬 찾아본다


그럼에도 반찬 뒤적이지 말라며 못된 말을 쏟아낸 아들놈 때문에 식사도 못 하고 박차고 나간 그 사람이 언제부터 내 반찬을 따로 내놓았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섬세한 마음 씀씀이가 있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내가 그 사람이면 아들이 먹을 반찬을 접시에 담아 내어줄 수 있을까?


■ 봉태규 에세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중에서

http://bit.ly/2Hz2YKe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저냥 사는 부부 vs 행복하게 사는 부부의 차이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