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추억하고, 무엇을 살리고,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밀레니얼 시대에는 콘텐츠를 다루는 능력이
가업을 잇는 경영자의 핵심 역량이다"
가난했던 시대에 창업한 제조 기반의 기업들이 경제 선진국 시대에도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제조업 쇠퇴에 따른 폐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기업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후대 경영자들이 선대부터 쌓아온 콘텐츠를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고,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의 거점이 되는 것을 중요시했다는 점이다.
대전의 성심당은 1956년 대전역 앞 작은 빵집으로 출발했다. 고향이 함경도 함주군이었던 창업주 임길순은 흥남철수 때 피난을 와서 경상남도 거제와 진해까지 갔다. 1956년이 되자, 생계를 위해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그런데 열차가 고장 나서 뜻하지 않게 대전에 내리게 됐다. 살길이 막막해 찾은 성당에서 신부님이 선뜻 밀가루 2포대를 내주었다. 이를 먹지 않고 대전역 앞에 천막을 치고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성심당의 창업 스토리다.
성심당은 초대 창업주 때부터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소진한다’라는 원칙으로 남은 빵을 전쟁 고아나 노숙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는 착한 기업이라는 지역민들의 인정뿐 아니라, ‘절대 오래된 빵은 팔지 않는다’라는 신뢰가 쌓이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1990년대 말에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유행하면서 위기를 겪었고, 2005년에는 화재가 발생해서 1~3층이 전소되어 폐업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2세 경영인 임영진, 김미진 부부의 노력과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던 직원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성심당은 재기에 성공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 자산이 힘이 된 것이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KTX를 타고 이동하다가 이곳에서 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창립 60주년을 축하하며 이웃돕기의 공로로 교황 친필 사인이 적힌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성심당은 대전 원도심의 쇠퇴를 방어하는 대표적인 앵커스토어로 4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대표적인 빵집 중 하나로 태극당이 꼽힌다.
태극당은 1946년에 문을 열었는데 3대 경영인 신경철 전무이사는 어렸을 적부터 힙합과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20대 후반이던 2012년에 태극당의 카운터를 보기 시작했는데 매출이 ‘0원’인 날도 있었다. 태극당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 터에 2013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한 달 사이에 연달아 별세하면서, 그가 갑작스럽게 가게 운영을 맡게 됐다.
가게 문을 닫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삼 남매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태극당의 대부분 고객이 60세 이상으로 고령화됐다는 점이 한계였다.
과거의 전통을 살릴 부분은 살리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갔다. 보통 프랜차이즈 제과점들과 달리 태극당은 할아버지 때와 마찬가지로 40년 이상 일한 제빵사들이 빵을 만든다. 사람들이 태극당을 찾아오는 이유는 70년이 넘은 오래된 빵집에서 추억을 맛보기 위함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커피 맛은 젊은 층이 원하는 최상의 수준으로 높였다. 이를 위해 직접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리브랜딩을 하면서 가장 태극당스러운 것을 강조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태극당 포장지들에 선보였던 다양한 무궁화 패턴들을 연구하여 정립했다. 또 1950년대 한글 간판에서 착안해 한글 폰트 ‘태극당 1946체’도 만들었다.
동시에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젊은 고객에게 다가갔다. 20대 남성이 좋아하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브라운 브레스와 협업해 패션 제품을 공동 제작했다. 이탈리아 신발 브랜드 슈페르가와도 협업했다. 젊은 층에게 레트로로 뜨는 공간인 을지로의 독립 서점에도 입점하는 등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심당, 태극당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나라가 가난하고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에 선대가 창업했던 사업이 산업이 고도화되고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면서 폐업의 위기를 겪었지만, 회생해서 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3세 경영인이 기업에 축적된 차별화된 콘텐츠를 다양한 세대가 공유하게 하고,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창의적 파트너십을 진행해 탈물질주의 시대의 방식으로 경영해서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추억하고, 무엇을 살리고, 어떻게 변화시켜서 새로운 시대에 다가갈 것인가. 그것이 밀레니얼의 개척자로서 후대 경영자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조직이 아니다. 창의적 개인이 세상을 바꾼다."
2020년대를 주도할 미래 세대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