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내 생각으로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 본문 중에서
2015년 7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소설!
하퍼 리의『앵무새 죽이기』, 그리고 그 후속작인『파수꾼』입니다.
사실『파수꾼』이 출간되면서『앵무새 죽이기』도 덩달아 재부각된 측면이 큰데요.
『파수꾼』을 읽어보기 전에 우선 이 책을 먼저 살펴보죠.
『앵무새 죽이기』는 원래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지금은 절판되고, 한 달 전에 열린책들에서 새로이 출간되었습니다.
최근에 엄청나게 마케팅을 하더군요. 건승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전 열린책들이라는 출판사를 좋아해요.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원래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즐겨봤는데,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세계문학은 커버가 이쁘더라고요. 게다가 양장이고요. 그래서 갈아탔습니다.
(저 열린책들 관계자 아니에요. 오히려 열린책들 페이스북 이벤트를 죽어라 신청하고 있는데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습니다...ㅠㅠ)
어렸을 적 이모네 집에서 처음 이 책을 보고는 '동물학대에 관한 책인가'라는 생각을 했던게 기억나네요.
왠지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제목이라 바로 책을 내려놓고 여태까지 말끔히 잊고 지냈는데, 최근에 이 책이 새로이 출간되어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바로 예구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썩 괜찮은 소설이었어요.
이야기로서의 재미도 있고, 시사하는 바도 크고, 시대의 문제 또한 날카롭게 짚어내었기에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 충분합니다.
작가 하퍼 리는 1960년에 이 책을 발표하고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죠.
(이 부분은 대충 3초만에 훑어보시면 됩니다.)
-「가디언」선정 <역사상 최고의 영미 소설 100선>
- <굿리즈닷컴> 선정 20세기 <독자에게 가장 사랑 받은 책> 1위
- <플레이닷컴> 선정 <영국인들이 꼽은 역사상 최고의 소설> 1위
-「타임」선정 <역사상 최고의 영미 문학 100선>
-「타임」선정 <역사상 최고의 청소년 소설 100선>
- 래드클리프 출판인 과정 선정 <최고의 소설 100선>
- 1961년 퓰리처상 수상
- 영국 사서들이 꼽은 <모두가 읽어야 할 책> 1위
-『뉴스위크』선정 <최고의 소설 100선>
-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최고의 소설 100선>
- BBC 빅 리드 선정 <역사상 최고의 소설 100선>
- <르네상스 러닝> 조사 <미국 고등학생들이 가장 널리 읽는 책> 1위
- 미국 『라이브러리 저널』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1위
기록들이 어마무시하죠?
하지만 문제는 이 책이 하퍼 리의 처녀작이었다는 겁니다.
일찍이 율곡 이이 선생님은 인생의 3대 불행을 '초년의 성공', '중년의 상처(喪妻)', '노년의 무전(無錢)'이라고 했습니다.
하퍼 리는 '초년의 성공'을 너무 크게 얻었어요.
그 어떤 작품을 써도 자신의 데뷔작을 뛰어넘기는 힘들 것이라는 하퍼 리의 두려움은 그녀로 하여금 급기야 절필을 선언하도록 만들었답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종차별과 각종 불합리한 요소가 가득한 1930년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군중심리에 묻혀 개인의 주관적 사고를 묵살해 버리는 사회상을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의 화자는 고작해야 여덟 살 남짓된 소녀인거에요.
보통 아이가 화자인 소설을 보면 분명 어린애인데 사고방식이나 말투가 어른같아 보여서 어색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스카웃은 진짜 애에요.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그냥 천방지축 애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애가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지니까 이야기가 진실성을 갖게 되고, 이는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기이한지를 잘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하게 되는거죠.
특히 주인공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는 이 소설에서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그려져요.
아까 이 소설에 대해서 나열되었던 엄청난 기록들 말고, 제 눈길을 끌었던 다른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AFI(American Film Institute)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웅에 이 소설의 등장인물 '애티커스 핀치'가 1위로 선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슈퍼맨, 배트맨도 제친 히어로라니... 애티커스 핀치가 소설 속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호기심이 생기시나요?
그의 삶의 방식과 태도, 인생관과 같은 것들을 보고 있자면 저 역시 그와 같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동시에 의지도 다잡게 되죠.
하지만 저는『앵무새 죽이기』가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는 책의 홍보문구에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재밌게 보셨나요?
저는 솔직히 별로 재미 없었어요.
왜냐하면『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의 남북전쟁을 주요소재로 다루고 미국인들의 삶을 다루는 소설이잖아요.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제게 그리 큰 감명을 주지는 못했어요.
미국인들은 자기네 역사이고, 자기네 삶이니까 당연히 감동하겠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미국 안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이듯, 『앵무새 죽이기』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60대에 이 책이 나왔다는 점, 미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 중의 하나를 건드렸다는 점, 그들의 사회상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점이 아무래도 미국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인들은 종종 자신에게 있어서 최고인 것이 전세계에서도 최고인 것 마냥 착각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 위의 회색글씨로 씌여진 찬사들이 터져나온 것이겠죠.
하지만 미국 안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까지 의미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앵무새 죽이기>는 훌륭한 소설이었지만, 올해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은 아니었어요.
(노파심에서 하는 소리지만 저 반미주의자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이 책의 위상이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분명히 훌륭한 소설이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에요.
아니, 오히려 여러분들께 적극적으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보통 좋은 책을 보면 두 종류가 있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주옥같은(발음주의) 문장이 있어서 모조리 다 밑줄을 긋고, 코멘트를 달고 싶은 책.
혹은 문장 한 마디, 한 마디가 와닿는다거나 하진 않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가슴을 치는 그 무엇인가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책.
『앵무새 죽이기』는 후자에 속하는 책입니다.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