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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이 아닌데도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AI 창작물에 대한 딜레마

by 데어릿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의 창작 활동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미지, 글, 영상 등 여러 방면에서 AI는 활발히 활동하고 있죠. 그런 AI의 발전 속도에 비해 그 창작 활동의 규제에 대해서는 아직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저작권 관련 부분이 그렇죠.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는 2023년 12월 27일 AI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없는 인공지능 산출물에 대한 저작권 등록은 불가하다’고 AI 창작물에 대해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AI가 만든 창작의 결과물을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AI의 창작물이 저작물이 아니라는 것과 저작권을 침해했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분명 내가 AI에게 시켜서 그린 그림이 너무 멋진데 저작물로 등록도 못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그림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죠. 그래서 오늘은 저작물이 아니어도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깊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1.png Source: Pixabay


AI가 만든 창작물은 왜 저작물로 인정받기 어려울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AI가 창작물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 알아야 해요. 먼저 AI는 인간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수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안에 어떤 패턴과 특징이 있는지를 먼저 익힙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문장이나 그림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기억하는 게 아니라 수 많은 문장에서 단어들이 오는 순서, 문장의 구조와 같은 언어의 ‘문법적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이죠.


그리고 나서는 그 분해된 유기물을 그냥 다시 붙이는 게 아니라 기존에 학습된 규칙과 패턴, 그리고 사용자의 지시(프롬프트)에 따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합니다. AI가 분해한 유기물들이 수십억 개의 연결망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다가 사용자가 ‘이런 그림을 그려줘’ 같은 식으로 지시를 하면 그 유기물 조각들을 지금까지 없었던 방식으로 재조합하는 것이죠. 이런 과정은 마치 요리사가 재료를 받아 영양소, 분자 구조까지 파악해서 그 유기물들로 새로운 레시피의 요리를 창조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알 수 있듯 AI의 창작 활동은 인간처럼 어떤 의도나 감정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창작적 개입이 없는’ 세상에 존재하던 데이터들의 새로운 조합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규정하는 대로 AI가 만든 창작물은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2.png Source: Pixabay


저작물도 아닌데 저작권을 어떻게 침해하지?


AI가 만든 창작물이 저작물로 보호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 생성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결과물 안에 다른 사람의 ‘저작물’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기존 저작권을 침해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을 침해하는 요건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알아야 하죠.


우선 저작권 침해의 가장 큰 요건 두 가지는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의거성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의심을 받는 저작물이 기존 저작물을 보고 베끼거나 참고해서 만들었음을 입증하는 것이고, 실질적 유사성은 아이디어나 표현 방식이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저작권법으로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해당하지에 대해 입증하는 것이죠.

3.png 챗GPT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봤다.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결국은 거의 같은 이미지가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창작자의 ‘의도’는 저작권 침해 요건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는 명백히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달라는 의도가 있었고 B는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브리 스타일의 그림을 얻게 된 거죠. 만약 지브리 스타일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면 A와 B 모두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B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AI가 그 말을 듣고 그릴 때 기존 지브리 스타일에 ‘의거’해서 그렸고, 그 결과물이 지브리 스타일과 ‘실질적 유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봤 듯 AI의 창작 방식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이 선행되기 때문에 사용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원본 데이터에 의거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AI가 만든 창작물은 저작물로 인정을 받을 수는 없지만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이죠.



AI 창작물이 저작권 침해를 피해갈 수는 없을까?


AI가 만든 창작물이 무조건 저작권을 침해하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저작권 침해를 벗어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죠.


첫째, AI에게 “기존의 데이터를 참고하지 말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면 저작권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의 AI는 학습 데이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는 AI에게 ‘유’에서 ‘새로운 유’로 재창조 하는 기능은 있어도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능은 없기 때문이죠.


둘째, “인간이 만든 창작물도 저작권을 침해할 여지는 분명한데 왜 AI의 창작물에 대해서만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두 가지 관점에서 나눠서 설명할 수 있죠.


우선 인간과 AI는 처리하는 데이터 양 자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참고 데이터로 사용하지만 AI는 전 세계에 흩어진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해서 창작 활동을 하기에 기존에 저작권 보호를 받는 데이터에 의거할 여지가 훨씬 많죠.


또 다른 이유는 인간과 달리 AI가 어떻게 기존의 데이터를 분해하고 재조합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가 창작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기존의 데이터가 저작권이 만료된 퍼블릭 도메인이거나 AI 학습 사용이 허용된 데이터만 사용했다면 저작권 침해를 피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AI 창작물에 대해 저작권 침해 여지를 아예 없앨 수는 없는 것이죠.

4.png Source: Pixabay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미래


앞서 살펴본 내용만 보면 AI의 창작물은 저작권 침해 여지가 많은,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AI는 인간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촉발하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탐색하는 데 기여하는 조력자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하죠. AI가 인간이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조합들은 분명 인간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먼 훗날 AI가 자신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때 명확하게 “이런 데이터들을 참고해서 만들어봤어”라고 근거를 제시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인간이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것이 AI의 결과물에 ‘인간의 창작성’을 더했다고 인정되어 AI 생성물이 저작물로 인정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AI가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만큼 AI의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창의성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AI 학습 데이터와 결과물에 대해 법적, 제도적 논의 및 사회적 합의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이 글이 저작권 보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AI를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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