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7
< 비의 요정들 >
6/21 금요일
오늘은 생 쉘리 드 오브락(Saint-chely-d’Aubrac )까지 7키로만 걷기로 한 날이다. 마침 11시까지 숙소에 있어도 된다고 해서 우린 풍성한 아침 식사를 하곤 달콤한 아침잠을 즐겼다. 우리 숙소 뒤에 있는 성당을 보고 길을 나서려는데 패트릭과 그의 엄마를 만났다. 여기서 또 만나다니 어찌나 반가운지! 패트릭은 여전히 촬영을 하느라 사진기를 들고 다녔고 그의 엄마는 컨디션이 많이 좋아진 듯 하다. 걷다가 만나면 유난히 더 반가운 듯 하다. 우린 인스타 주소를 받아 적었다. 반가움도 잠시 각자 갈길로 헤어졌다.
우린 점심까지 먹고 느긋하게 출발! 한참을 가다보니 비가 내린다. 얼른 우비를 꺼내야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 우비가 없는 거다. 언니야는 스패어로 갖고 있던 빨간 비닐로 된 우비를 빌려 주었다. 나는 빨간비닐, 언니야는 파란비닐로 된 우비를 둘러 쓰고 걸었다. 곧이어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비바람이 몰아쳤다. 내가 뒤집어쓴 우비는 길이가 짧아 바지가 다 젖는다. 우린 숲으로 들어가 발에는 비닐스패치( 이것도 언니야가 준비해 온 것임)로 감싸고 나는 우비가 짧아 깔개도되는 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정말 기가 막힌 몰골에 우린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비는 쏟아지고 아무도 없는 적막한 순례길이 마구 웃음이 나오면서 즐거워졌다. 그 비오는 거리를 흥에 겨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걸었다.
걷는 도중에 비가 오면 어쩌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막상 비바람이 몰아치니 우린 미친X처럼 잘도 걸어갔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걸으면 걸을 수록 토착지점이 계속 멀어지는 거다. 너무 즐겁게 걸어서일까? 지랄65가 또 발동이 걸렸다. 7키로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어야하는데, 이 넓은 들판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바람이 몰아치면 뒤집어쓴 비닐을 흔들어대니 아무소리도 안들린다. 나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 아~~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세월이 다하도록 변함없는 길~~"
드디어 눈 앞에 마을이 보인다. 마을이 보여도 보이는 거랑 가야할 거리는 늘 차이가 있다. 금방 닿을 듯 해도 생각보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건? 인내심뿐이다. 마침내 마을로 들어서는 경사로를 내려가는데 어떤 농부 한분이 건초 정리를 하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내가 "봉쥬르!" 하고 인사를 했다. 그는 다시 나를 보더니 웃음을 참으면서 자기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내가 좋다고 하니까 잠시 망설이더니 내가 원하지 않으면 안 찍어도 된다나. 이건 또 뭐야? 그정도야? ㅋㅋ 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며 포즈를 잡으려는데 이번엔 뒤에서 파란 비닐을 뒤집어쓴 언니야가 내려왔다. 그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면서 다 함께 찍자고 한다. 우린 셋이서도 찍고 둘이서도 찍었다. 아마 그날 저녁 그 아저씨는 친구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또 한번 신나게 웃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하니 걸은 거리가 토탈 16키로! 시간은 다섯시가 넘어간다. 부랴부랴 씻고 바로 저녁 먹으러 갔다. 숙소엔 우리 말고도 순례자가 열두명이 더 있었다. 아늑하고 환한 숙소엔 휴게실에서 게임을 하며 즐기는 순례자도 있다. 우리는 맛있는 수프와 메인 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프랑스 남부의 가정식은 정말 내 입에 잘 맞는다. 여기와서부터 나는 매일 엄청난 식사양을 소화해 낸다.
잘 먹었는데 앞에 앉아있던 한 프랑스인이 한국에서 오는 데 비행기로 얼마나 걸렸냐고 물었다. 나는 갈아타는 시간까지 열 네시간이 걸렸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랬더니 한국사람들은 이 먼 곳 까지 도대체 왜 오냐는 것이다. 질문이 자못 도전적이다. ‘그래서 뭐가 불만이지? ’ 내가 약간 기분이 상했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이유를 갖고 걷는다. 나는 가톨릭이고 그래서 걷고 있다. 단지 멀다는 이유로 왜 여기 왔는지 궁금하다면 왜 성 야곱은 이 먼곳까지 오셨을까? 그 이유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같다.”고 (아마도 눈을 내리깔고) 얘기해 주었다. 대체로 다들 친절한데 프랑스 사람들의 밑바닥에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한국인들이 못마땅한 느낌도 있는가 보다. 내가 좀 새침하게 말했는지 그냥 궁금했다며 옆사람과 얘기를 주고 받았다. 순간 아! 좀 더 친절하게 말할 걸 그랬나? 후회스러웠다. 낯선 곳에 가면 늘 긴장하는 건 나의 방어 기제다. 상대방이 먼저 부드럽고 친절하면 나는 약간 방어기제를 해제한다. 하지만 내가 먼저 친절하게 웃으면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늘 어색하고 겸연쩍다.
아이들이 다 분가를 해서 나가고 남편과 둘이 남았을 때, 아침이면 무표정한 남편의 얼굴이 너무 싫었다. 제발 좀 웃으라고, 날 좋아하지 않는거야? 좋은 사람을 보면 웃고 싶지 않냐며 따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 표정이 바로 내 표정이기도 하다는 걸. 이젠 남편이 웃던 안 웃던 먼저 웃어버린다. (아니, 웃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니 여전히 긴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언니야는 늘 먼저 친절하게 말걸고 웃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니야를 만나면 무장해제가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이끌어내고, 잘 토닥여주고, 사교적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바람도 잘 잡아서 울 남편은 그녀에게 '바람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런 언니야의 모습에 늘 감탄하고 부러워하지만,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낯선 곳에서 서툰 영어로 말을 걸자니 그동안 내가 화사한(?) 표정을 지었는 지도 모르겠다. 늘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할 때가 많다보니 본의 아니게 표정이 좋았겠지. 그러다가 처음으로 도전(?)을 받게 되자 그동안 해제되었던 나의 철벽 방어가 시동이 걸렸던 것이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통역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우린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불어로 얘기하고 웃는다. 그나마 나는 언니야가 있어 둘이서라도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시간이 흘러 아홉시가 넘으면 다들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침만 놓고 맛사지. 네명이 한방에서 자기 때문에 뜸을 뜰 수는 없겠다. 불을 켜놓을수가 없어 그림도 못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