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8

by 꿈돌

< 배고픔과 그리움 >

6/22 토요일(Saint Come-d’Olt 16km)

오늘은 7키로를 건너뛰려고 아침에 버스를 타러갔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 길건너에 빵집이 있었다. 언니야는 정류장에 서 있고 난 길을 건너 베이커리로 갔다. 식료품 점도 겸하고 있어 과일을 몇 개 사고 작은 빵을 한 개 샀다. 계산을 하는데 젊은 아가씨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내가 깜짝 놀라며 어떻게 한국 말을 할 줄 아냐며 물으니, 한국에 가고 싶어 한국 드라마를 보며 말을 배우고 있단다. 한국말 너무 잘한다고 창찬해주며 꼭 한국에 오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빵집을 나와 다시 길을 건너 정류장에 서 있는데 그 아가씨가 빵집에서 나와 나를 향해 오는 게 아닌가. 그 아가씨는 나를 보더니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 작은 누런 봉투를 하나 쥐어주면서 여행 잘 하시라고 하고는 부리나케 가게로 뛰어갔다. 봉투에는 작은 빵이 두개 들어있었다. 아니 웬 빵이?

곧 버스가 와서 우린 정신 없이 행선지를 말하고는 차비를 내었다. 하루에 두번 오는 버스인지라 이 차를 놓치면 우린 꼼짝없이 전 구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그 아가씨가 맘에 걸린다. 한국에 오면 전화 하라고 전화번호라도 주고 올 걸 그랬나 하면서 말이다. ( 남편은 지금도 구굴지도를 보고 그 빵집을 알아내어 연락해보라고 성화다.)

버스에 탄 손님은 우리까지 여섯 명이었다. 우린 얼마 안가 우리가 내릴 도시 이름을 잘못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차비가 너무 비싸더라니, 부랴부랴 운전자에게 중간에 있는 다른 도시에 내려 달라고 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운전자에게 옆에 탄 젊은이 둘이 불어로 설명을 해대고 뭐라뭐라 얘기해대더니, 젊은이 왈, 이 버스는 그 도시로 안 간다는 거다!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보여주는데 버스는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발이 아파 조금밖에 걸을 수 없다하니 이젠 뒤에 앉은 여자까지 합세해 뭐라하며 떠들어 제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끄러! 조용히 해! 소리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정말 이처럼 다이나믹한 여행은 없을 듯 하다. 참나ㅋㅋ

우린 결국 중간 어디쯤인가에 내렸다. 지도를 보니 제대로 가려면 10키로를 다시 돌아가야 했다. 우째 이런 일이! 다행히 그냥 도로를 죽 따라 내려가다가 보면 우리의 루트인 GR65 랑 합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전 아스팔트의 내리막길을 한 4키로 정도 걸었을까? 비까지 맞으며 순례자의 행보를 만끽(?)했다. 결국엔 GR65를 만나 다시 숲길을 걸었고 그 숲에서 레스토랑을 만나 넓적시레한 빈대떡 같은 점심도 맛나게 사먹을 수 있었다. 아침을 7시면 먹는데 12시만 지나면 배에서 막 꿀꿀 소리가 나도록 배가 고프다. 생각해보면 늘 별로 배고프지도 않는 상태에서 밥을 먹은 것 같다. 끼니때마다 이리 배고파 보기도 처음인 듯.

마침내 우리의 숙소인 수도원에 도착했다. 수도원은 중세 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수녀님 두 분이 왔다 갔다 하시면서 관리하시는 듯하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삐걱대는 나무계단이 너무 멋져 해리포터의 계단을 상상하게 만든다.

수도원 중앙에 놓인 첨탑도 중앙에 자리 잡은 모양새가 무척 안정적이다. 저녁 식사시간보다 조금 일찍 내려와 응접실에 앉아 기다리며 서가에 놓인 앨범을 들쳐보았다. 어릴 때 보던 흑백 사진들을 두껍고 누런 종이에 네 귀를 끼어 넣은 앨범들이다. 응접실의 의자나 테이블 역시 아주 오래된 가구들로 거기 앉아 앨범을 보고 있으려니 시간여행이 따로 없다.


저녁 식사는 간이 하나도 없는 밥과 호박볶음이 나와 소금을 열라 쳐야했다. 그간 대부분의 식사가 내게는 좀 짠 편일 때가 많았는데 이번엔 너무 싱거웠다. 아마도 연세가 많은 수녀님들이 건강상의 문제로 그렇게 드시는 것 같다. 밥 먹는데 80세의 수녀님이 자기는 메르치(이태리 피렌체에 있는 오래된 가문)의 안젤라라며 소개를 했다. 언니야의 세례명도 안젤라라 했더니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어찌나 수다스럽고 방방 뜨는지 귀엽기도 했지만 밥을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급기야는 순례자의 노래가 적힌 메모지를 나눠주며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모두가 노래하게 만들었다. "울뜨레~야 울뜨레에 야~ " 어찌나 여러번 불렀는지 자다가도 부를 것 같다. (역시 이태리인이었다.) 식탁엔 수녀님 세분과 8명의 손님이 있었는데 모두 박수를 치며 노래 불렀다. 그 수녀님이 나를 보며 “너 리지외의 데레사 라고 했지? 리지외를 꼭 가봐야 한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야.” 하셨다.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갈 수 없지만 다음엔(?) 꼭 가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갈 수 있을는지......

방에 들어와 누우니 피곤이 밀려온다. 비를 하루 종일 맞아서 일까, 잠이 들면서 식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한 3년은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이 보드랍고 여린 큰 아들놈, 어려서 많이 아파 나의 기도 제목이었던 둘째놈, 둘째놈과 어릴 때 부터 친구였던 사랑스런 며느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 손녀 동윤이와 하윤이.....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와 46년간을 살아온 남편...... 연애할 때 나는 남편을 나의 '아데오다투스'라고 불렀다. '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다. 긴세월을 살아오며 원망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돌아보면 진정 가장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큰 수술 후 집에 누워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갑자기 홑이불로 나를 감싸더니, 벚꽃이 흐드러진 대공원에 데려다 준 적이 있다. 이불을 여며주고 평상에 앉힌 후 벚꽃을 보라는데, 오는 이 가는 이 다 쳐다보고, 몸은 아파 죽겠고, 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당시엔 내 감정에 치여 남편의 사랑을 읽을 수 없었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자니 그날의 벚꽃이 이제사 눈 앞에 자꾸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