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19

by 꿈돌

< 천사들 >

6/23 일요일 (Estaing 20km)

아침부터 우비를 입고 길을 나섰다. 아침엔 아직도 쌀쌀해서 긴팔에 얇은 잠바를 입어야했다. 여기 와서 긴팔을 안 샀으면 어쩔 뻔 했을까. 지금 하루도 안 빼고 매일 긴팔만 입고 있다. 저녁에 빨아 말려서 아침에 입는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7키로 떨어진 에스펠리온이라는 마을의 성당에서 열시 반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안젤라 수녀님 말씀이 롯강을 따라가면 거리를 6키로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하시기에 그럼 그리하자고 하며 길을 나섰다. 그 동네의 성당을 일찍 나와 구경하고 우린 롯강을 따라 잘 걸었다. 오랜만에 물을 보니 그도 참 좋았다.


그런데 열심히 이정표를 보며 산길로 들어선 게 잘못이었나 보다. 가도 가도 오르막만 있는 산길에 5.3키로 남았다더만 올라가서보면 7.3키로 남았단다. 또 한 1키로를 올라가서보면 8.3키로. 아니 무슨 놈의 길이 걸은 만큼 늘어나는가.

“진짜 이 길은 GR65가 아니라 지랄65야!” 투덜대며 끝없이 올라갔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는데 미사시간에 늦을까봐 보아미 언니야가 날아가는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꽤 경사가 있는 아스팔트였는데 어찌나 빨리 걸었는지 내 발바닥은 불이 났다. 이 또한 한 시간은 내려간 듯한데 '더는 못걷겠다 미사를 포기하자' 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앞서간 언니야는 보이지도 않는다.

산속의 아스팔트에는 드문드문 자동차가 지나갔다. 내 옆에 자동차가 두 대 정도 지나간 후에야 ‘저걸 세울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세울 용기가 있니?’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글쎄.....' 이러면서 또 한 15분 이상을 내려온 듯. 하지만 이젠 주저앉을 것 같다. 지나가는 차도 더 이상 없다. 나는 기도했다. ‘한 대만 더 보내주시면 제가 꼭 세우겠습니다. 제발 한 대만 더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제발!“ 그때 저 위에서 자동차 한 대가 내려오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몸으로 막아서면서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캬~너무 멋있지 않나!) "헬프 미 플리즈" 나의 애절한 표정에 늙으신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타라고 하셨다. 한명 더 있다고 하니 다 타라고. 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언니야가 보인다. ”언니야~ 타!“ 언니야까지 태운 차는 쏜살같이 달렸다. 우린 15분이나 일찍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례비를 드리려했지만 굳이 마다하며 가셨다. 까미노에선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들을 천사라고 부른다. 요소요소에 천사들를 배치해 순례자들을 도우신다.

우린 신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로 미사를 보았다. 돌바닥에서 느껴지는 찬기가 뜨거운 발바닥을 달래주는 듯하다. 천장과 기둥이 아치형이어서 일까? 미사하기 위해 성당에 들어오면 감싸 안아주는 것 같은 기운을 느낀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불어미사인데도 어찌나 감동적인지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며 미사를 드렸다.


기쁨이 넘쳐뛸 땐 뉘게 가슴 풀으리

슬픔이 북바칠 땐 뉘게 하소연 하리


파이프 오르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성가가 나온다. 목청을 드높여 눈물을 흘리며 한국말로 불러제꼈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 불러도 파이프 오르간 반주 에 다 묻혀 하늘로 올라가는구나.

우린 그 마을에서 점심을 사먹고 나머지 길을 걸었다. 원래 계획은 21키로 길을 중간에 잘라서 나머지는 차를 타던지 하려했는데 또 들어선 산길에선 우버 택시도, 히치하이킹도 할 수가 없어 그냥 끝까지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에스땅.

그 마을은 롯강을 건너는 다리 뒤에 펼쳐져있었는데, 이제까지의 고달픔을 다 갚고도 남을 만큼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보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이런 곳에 살면 아프지도 않을 것 같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린 숙소로 들어가 부랴부랴 씻고 밥을 먹으러 갔다. 저녁식사는 8명이 함께 했다. 40대 초, 중반된 여주인이 오가는 대화를 통역해 주었다. 식사 중간에 우리가 침을 배웠다는 얘기를 하자, 여주인이 자기 어깨가 몹시 아파 팔을 위로 들지 못한단다. 병원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라는데 자기는 몹시 고통스럽다면서 어떤 순례자가 침을 맞으면 효과적일 거라 했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일이 끝난 후에 우리 방을 노크해라, 그럼 와서 봐주겠다고 했다.

9시가 넘어서 그녀는 우리 방을 두드렸고 우리는 곧 나와 그녀를 치료했다. 하지만 한번으로 완전히 치료되기는 힘들 거란 말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그녀는 낫지 않으면 이멜 할 테니 다시 와서 자길 치료해 달랜다. 나는 웃음을 주고받으며 준비하고, 언니야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치료했다. 나는 피곤해 보이는 그녀에게, 일을 줄이고 자신의 몸을 돌보라는 신호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녀는 자기가 혼자 살고 있기에 혼자 모든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생각해보는 눈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아도, 먹고 사는 일엔 비껴가는 이가 없다.

그녀가 애처로웠다. 우리도 그녀에게 천사 였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침술이 효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으로 들어와서는 바로 뻗어 잤다. 핸드폰엔 4만보를 걸었다고 나온다. 장장 28키로. 제대로 순례길을 걸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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