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던 GR65

만 65세 할머니의 몸부림친 여행기 27

by 꿈돌

< 뜻밖의 경험 >

7/1 월요일

아침 먹고 일찍 길을 나선다. 오늘은 나바행스(Navarrenx 13km)로 가기 전에 포(Pau) 라는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두 정거장 가서 거기서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간다. 19세기에 귀족들이 즐겨찾던 휴양지로 성과 미술관등 유물들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란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그런 느낌. ㅋ 하얀 색의 건물들과 깨끗한 거리, 피레네 산맥도 바라다보이는 전망이 있는곳, 군데 군데 있는 고성과 성당들, 마을 중앙에 있는 꽤 넓은 예쁜 공원....ㅋ

아마 맨처음 여길 왔다면 예쁘다고 몇번이나 감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내눈은 투박한 돌들을 고여 만든 성당과 절벽을 깎아 그 위에 세워진 첨탑에 길들여졌고, 아니면 금칠과 보석까지 덧입혀진 너무나 럭셔리한 수많은 성당에 익숙해져 '으 음~~ '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아주 정교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느낌의 마르탱 성당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너무 귀족적이여서 일까, 아름답고 기품있지만 쉽게 다가서 지지않는 그런 느낌이다.


마을을 돌며 관광시켜주는 작은 기차를 탔다. 잘 정돈된 마을, -공원과 성당과 음식점들, 공공 장소들까지 소개를 해주었다. 깨끗한 작은 도시다. 우린 점심으로 그곳에서 켄터키 치킨을 먹었다. 프랑스에서는 처음 본다. 사실 서울에서 난 거의 안 먹는 메뉴지만, 오랜 만에 먹으니 그도 나쁘지 않다.


포를 나와 다시 기차를 타고 나바행스로 와서, 그곳의 성당과 마을을 둘러보며 우린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을을 둘러싼 성벽과 그 성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과 이끼들, 소박한 창의 덧문이 달린 오래된 집들, 제대 밑에 새겨진 조악한 부조들이 정감있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숨결과 손길로 만들어진 리얼 스토리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결국 나의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지만 너무 꾸미지 않은 투박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나의 취향이 컨트리 스타일인 게다.

어쨌든 나바행스의 숙소는 아담하고 깨끗한 집인데 욕실과 화장실을 옆방과 같이 쓴단다. 우리가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을 가려면 부녀가 누워 자는 침대를 바라보며 들어가 화장실을 가야한다는 거다. 화장실을 두 방이 공유 한다 길래 화장실을 가운데 두고 두방이 갈라져 있는줄 알았더니 우리 방엔 샤워실과 화장실이 아예 없는 거였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지만 화장실로 인한 해프닝은 기대한 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뒤편 마당에서 벌어진 저녁식사는 풍성하고 맛있었으며 주인장의 유머로 웃음꽃이 만발했다.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몇명 있어서 우린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첫번째 코스로 나온 따끈한 당근 수프가 아주 일품이었다.

메인 요리는 뷔페형식으로 각자 부엌으로 들어가 먹을 만큼 음식을 덜어오라는데, 서로 양보하느라 일어날 줄을 모른다. 그러자 한 사람이 제일 멀리서 온 사람이 첫번째로 가기로 하자는 거다. 한사람은 비행기로 두시간 걸려 왔단다. 또 다른 사람은 6시간, 그 다음 사람은 8시간 걸렸단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일어나서 말했다. “내가 첫번째로 나갈게. 나는 열네시간 걸렸거든.” 모두들 웃으며 먼저 가라고 길을 비켜주었다. 도미 비슷한 생선구이도 맛있고, 호박구이도 맛있었다. 특히 볶음밥이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두 공기는 족히 먹었다.

기분이 좋아진 언니야는 이 주인장에게 또 그림을 한장 주라는 것이다. 지난 번 오빠야에게 안 줘서 찝찝한 기분도 있고, 순명이라는 단어도 떠올라, '에라이~ 기분이다!' 마당 문 옆에 세워져있는 순례자 장식을 그린 그림을 주었다. 저녁 식탁에 모인 열명이나 되는 모든 사람들이 환호했고, 졸지에 모든 이의 주목을 받게 된 나는 어쩔 줄을 몰랐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주인장은 나의 그림을 자기 집에 장식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라나. 사람들이 다른 그림도 보여 달라하여 내가 손을 내 저으니, 언니야가 얼른 가서 가져 오란다. 으음..... 생전 안해본 짓이다. 나는 없는 듯이 있는 걸 좋아하고, 말하기보다는 듣는 걸 좋아하고, 나서기보다는 보면서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방으로 올라가 물감까지 가져와 다 보여주었다. 물감은 뭐냐, 이걸 들고 다니냐, 도대체 언제 그리냐 등등 질문도 많았다. 짧은 영어로 답하느라 애도 먹고 어색해서 혼났지만 생각만큼 나쁘진 않았다.


식후에 배도 부르고 해서 잠깐의 산책을 나와 언니야에게 말했다. 덕분에 한 번도 안 해 본 뜻밖의 경험을 여러 가지로 다해본다고 말이다.

나는 평생을 말로 주고 되로 받는 느낌으로 살았는데, 처음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느낌이다.

이제 칠월이 시작되었는데도 이곳은 밤바람이 서늘하다.